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꽤 괜찮은 심리상담 프로그램이 있어서 참여한 적이 있다.
전문상담가에게 10회 정도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서 '이 복지는 무조건 누려야 해'하는 심정으로 신청을 했다. 딱히 상담하고 싶은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상담을 시작하고 나니 내가 그동안 감추고 싶어 했던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최대한 에둘러서 말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10회기의 심리상담을 하려면 나에 대한 정보를 솔직하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족관계, 양육환경, 학창 시절 등등.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나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아주 어릴 적 아버지의 부재, 그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 물질적인 형편 못지않게 정서적으로 불안했던 날들과 크고 작은 상처들에 대해. 태연한 척 이야기했지만 나에겐 오랫동안 감춰왔던 것들이었다. 사람들이 내가 아버지가 없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게, 혹시라도 가난한 티가 날까 봐 꽁꽁 감추고 감추다 보니 그게 어느샌가 수치심으로 자라났다. 이런 이야기를 먼저 입 밖으로 꺼낸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고 이제는 어느 정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그렇게 불행하게만 살았던 것은 아니에요, 이 정도 어려움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등의 말로 혹시 모를 동정 어린 시선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고 했다.
상담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쭉 다 듣고는 몇 마디의 말씀만, 그러나 그 마음이 다 느껴지도록 정확하게 말씀해 주셨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환경에서 나고 자란 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므로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OO 씨 정말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참 대단한 분이시네요. 그래도 이렇게 잘 살아오셨잖아요."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말이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아, 누군가에게 마음을 담아 이런 말을 들어본 게 처음이구나.'
누군가 나에게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니까 그렇게 숨기고 살 필요가 없다고, 살아내느라 참 고생이 많았다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겨도 된다고 정확하게 말해주는 게 처음이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이거였구나.'
그 말은 마음속에 살아있다가 순간순간 나를 일으켜 세웠다. 왠지 모르게 내 존재가 부끄럽고 위축되는 것 같을 때, 그 말이 다시 내 고개를 들게 했다. '창피해할 필요 없어.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대단하잖아.' 문득문득 내 안에서도 그런 말들이 흘러나왔다. 스스로를 가둬왔던 단단한 껍질을 깨고 애써 둘러메고 있던 짐을 조금씩 내려놓는 느낌이었다.
내가 어떤 말을 듣고 싶은지, 내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어떤 공감과 위로를 원하는지 나조차 모를 때 정확하게 그 말을 언어로 들어보는 경험은 꽤나 큰 힘이 된다. "공감에는 정확한 과녁이 있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작가인 정혜신 선생님의 이 말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때의 경험을 떠올려본다. 정확하게 내 마음의 과녁을 맞혔던 그 말을. 그리고 이제는 내가 정말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무엇인지, 내가 가장 먼저 알고 나에게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