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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Oct 17. 2024

돌을 사랑한 남자 - 9. 데이트

“오빠, 일찍 왔네요. 저도 늦진 않았죠?”

“그럼. 늦어도 괜찮아. 다 이해할 수 있어.”

“정말요? 고마워요. 연극 보러 가요.”

“응.”     


선호는 연우와 나란히 걸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손가락이 언뜻언뜻 부딪히는 것에 놀라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전 연애에서는 어떻게든 여자 친구 손을 잡지 못해 안달이었는데 지금 연우에게는 그러면 안 될 것만 같았다. 혹시라도 연우가 놀라서 충격을 받고 다시는 자신과 만나지 말자고 할까 봐 가슴 졸이며 심호흡했다. 결국 걷는 내내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얼어있는 채로 극장에 도착했다.      


연극은 생각보다 재밌었다. 연우가 안목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우는 주최 측에서 준비한 이벤트에도 당첨되어서 다른 연극의 초대권을 선물로 받았다. 그렇게 두 번째 데이트 약속을 자연스럽게 잡게 되었다. 선호는 정말 날아갈 듯이 기뻤다. 이제야 진짜 사랑을 처음 해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바로 진짜 행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연우와 레스토랑에서 식사했다. 선호는 연우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르고 골랐다. 레스토랑 안에서는 슈만의 헌정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때 연우가 선호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선호 오빠. 저 다 들었어요.”

“뭐?”

“돌을 사랑했다면서요.”

“아, 그걸. 어떻게 알았어.”

“우연히 동호회 식구들이 수군대는 걸 엿들었어요.”

“...”

“많이 아팠군요.”

“아...”


선호의 볼을 타고 눈물이 한두 방울씩 흘러내렸다. 자신의 치부가 까발려졌다는 생각이 두려움이 엄습해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오빠, 괜찮아요. 저는 오빠를 비난하려고 그런 게 아니에요. 사실 저도 많이 아팠어요. 오빠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저는 어릴 적 부모님 두 분이 이혼하셨어요. 그래서 줄곧 외롭게 자랐어요. 그래서 철 모르던 어린 시절, 사랑인 줄 알았던 남자에게 강하게 매달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집착이라고 찰거머리 취급만 받았죠. 그렇게 폐인이 되어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었어요. 오빠랑 참 비슷하죠?”


선호는 너무 놀라서 할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에 빠진 여자가 자신과 비슷한 상처가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렇게 사랑이 느껴졌나, 더 친밀했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연우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오빠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오빠가 꼭 나 같아서. 상처받고 웅크려있던, 세상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했던 그 어린 날의 나가, 꼭 오빠와 똑 닮은 것 같아서 마음이 참 아렸어요. 나를 안아주듯이 오빠를 꼭 안아주고 싶었어요.”


선호는 눈물을 멈추고 말을 이었다.


“나는 나만 그런 감정을 느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연우야, 정말 고마워. 난 용기를 내기가 두려웠는데 이렇게 먼저 손 내밀어주어서….”

“괜찮아요. 전 오빠가 많이 좋아요. 오빠는 어때요?”

“나도 많이 좋아. 아니. 그러니깐…. 정말 말도 못 할 만큼 벅차도록 좋아.”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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