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문득 자신이 돌멩이를 사랑했던 옛 기억을 되살리고 피식 웃었다. 돌멩이를 사랑하다니... 돌멩이는 자신에게 아무 유익도 아무런 혜택도 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돌멩이는 자신을 행복하게 했다. 자신을 기쁘게 했다. 그저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비록 사람들은 자신을 손가락질했지만... 처음 느낀 행복과 해방감이었다. 그런 생각에 미치자 선호는 알 것 같았다. 의사의 말씀대로 자신은 이전 연애에서 한 번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사랑이란 게 무엇인지 몰랐다. 사랑한 체하고 사랑이라고 짐짓 꾸며댔지만, 그토록 욕망하던 것을 잃고야 깨달았다. 사랑은 그런 게 아니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필요를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이 그녀들을 떠나게 한 거란 것을 깨달았다. 사랑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냥 존재만으로 귀한 것,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귀하고 행복한 것, 그게 사랑이었다. 돌멩이에 대한 사랑이 치유의 시작이었다면 연우에 대한 사랑은 이제 본격적인 치유로의 돌입이었다.
선호는 어떻게 해야 사랑하는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노심초사했다. 머릿속에서 연우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렇게 또다시 일주일을 기다리며 밤잠을 설치는데 문자가 왔다.
“선호 오빠, 뭐 하나 부탁드려도 될까요?”
연우에게서 온 문자였다. 부탁이라니. 선호는 속으로 쾌재를 부렸다. 연우의 부탁이라면 우주에서 별을 따달라고 하더라도 하는 시늉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문자에 답장을 보냈다.
“무슨 부탁?”
“제가 연극을 보고 싶은데 같이 보러 갈 사람이 없어서요. 혹시 같이 갈 수 있나요?”
“연극? 나 연극 보는 거 좋아해. 무슨 연극이야? 내가 예매할게.”
그렇게 선호는 연우와 함께 연극을 보기로 약속하게 되었다. 연우도 자신에게 마음이 있었던 건가. 선호는 설레는 마음이 더욱 증폭되기 시작했다. 연우와의 데이트를 위해서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당장 시내로 달려 나가 그날 입을 옷을 사서 돌아왔다. 거울을 보며 다시 입어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감정의 고저를 오갔다. 자신이 아무래도 단단히 미친 것 같았다.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사랑에 완전히 미쳐버렸다.
드디어 그날이 되었다. 혜화역 1번 출구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선호는 제시간보다 30분 먼저 가서 기다렸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옷매무새를 만지고 코털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렇게 초조하게 기다리니 저 멀리 연우가 보였다. 연우가 분홍색 체크무늬 투피스에 분홍색 구두를 신고 검은색 체크무늬 가방을 들고 또각또각 걸어오고 있었다. 마치 분홍색 나비가 날아오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긴 웨이브 머리를 흩날리며 치맛자락을 나풀나풀 흔들며 자신에게 걸어오는 모습을 보며 예식장의 버진로드를 상상했다. 선호는 완전히 심장이 멎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