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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선생님은 면담을 하더니 몇 가지 진단 도구를 건네며 작성해오라고 하셨다. 이후 MRI, 로르샤흐 검사, 웩슬러 지능검사 등 다양한 검사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검사 결과가 나왔다.
진단명은 <적응 장애>.
나는 그렇게 <적응 장애> 진단을 받고 휴직에 들어갔다.
그런데 또 하나, 뜻밖의 결과가 있었다.
웩슬러 지능검사에서 내 수치가 평균보다 꽤 높은 편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사실 고등학생 시절에도 지능검사를 한 적 있었지만, OMR 카드를 밀려 쓰는 바람에 정확한 결과를 받지 못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 기회가 없었던 나는, 십수 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객관적인 수치를 마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사실이 나에게 그렇게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저 ‘아, 그렇구나’ 하는 정도. 약간의 흡족함은 있었지만,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몇 년을 더 고생했다.
여러 정신과 병원과 상담실을 수소문하며 내 문제의 본질을 찾고자 백방으로 돌아다녔다. <적응 장애>라는 진단이 나왔지만, 나는 ‘혹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아닐까?’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인터넷을 뒤지고 또 뒤지며, 그 분야의 전문가라고 알려진 사람을 찾아 멀리 2~3시간씩 걸려 찾아갔다. 그렇게 어렵게 면담을 받았지만, 결과는 실망이었다.
내 문제의 본질은, 내가 조금은 다르게 세상을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는 점이었다.
평균보다 예민하게, 때로는 깊게 생각하고 반응하는 나의 성향은 주변과 어긋날 때가 많았다.
어릴 땐 이유를 몰라 혼란스러웠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 이유를 찾지 못해 괴로웠다.
나무위키를 비롯한 여러 글에서는, 인지적 특성이 두드러진 사람들이 종종 겪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똑똑하면 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그 ‘다름’이 사회 속에서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
시기와 오해, 관계 속에서의 어긋남, 사회적 거리감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결국, 나는 오래 돌아서야 비로소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