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자율성을 회복하자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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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있다 보면 '왜 해야 하는지', '무슨 목적을 위해 하는지'조차 모른 채 관행처럼 반복되는 업무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단지 “원래 하던 일이니까”라는 이유로 별다른 의미 없이 처리하다 보면, 점차 업무 피로도는 높아지고 아이들과 수업에 쏟아야 할 에너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처음부터 그렇게 하기를 원했던 건 아닙니다. 시간과 체력은 한정돼 있고, 주어진 일은 끝이 없으니까요.


특히 큰 학교에 근무할 때는 이런 점이 더 힘들게 다가왔습니다. 업무 지시가 내려오면 무조건 그에 따라 움직여야 하고, 자율적으로 판단하거나 제안할 여지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면 ‘직장인으로서의 자율성’이 무너지는 기분이었고, 교사로서의 자존감도 낮아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업무의 주 담당자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 일은 정말 필요한가?”, “지금 방식이 가장 효과적인가?”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불필요한 절차를 줄이고, 단순화하고, 보다 효율적인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제가 다문화 교육 업무를 맡았을 때 ‘사제 동행 프로그램’ 운영 방식이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예산이 집행되는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부분까지 담당자 혼자서 모든 걸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학급별로 계획서와 보고서를 자율적으로 작성하도록 제안했고, 전체 프로그램 운영은 각 학급 교사에게 자율권을 주는 방향으로 바꾸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업무 부담이 줄어들었고, 프로그램의 질도 높아졌습니다.


수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과서에 제시된 내용이라고 해서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학급, 우리 아이들에게 맞지 않다고 판단된다면 과감히 생략하거나 다른 활동으로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국가수준 성취기준에 도달하는 것을 전제로 말이죠.


예를 들어, 도덕 교과서에서는 유리병에 유리구슬, 콩, 모래를 차례로 넣으며 ‘시간 관리’의 우선순위를 설명하는 활동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활동이 비인간적이고, 지나치게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효율적인 기계가 아닌, 고유한 개성과 감정을 지닌 사람을 길러내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그 수업에서는 시범 실험만 간단히 소개하고, 각자의 시간 개념에 대해 더 깊이 이야기 나누는 활동으로 대체했습니다.


물론, 담임 교사로서 학급을 운영하다 보면 늘 쉽지만은 않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이 학부모나 학생의 기대와 다를 수도 있고, 서로의 가치관이 충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순간일수록 더욱더 심사숙고하고, 다각도로 바라보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신문이나 책을 통해 다양한 관점과 문제 상황에 대한 글을 읽고, 사고력과 판단력을 키우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은 단지 나를 위한 준비가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더 넓고 깊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한 토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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