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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이 Nov 16. 2019

나는 무과금 사업가

“내가 이런 사업 아이디어를 생각했는데 어떤 것 같아?”

“오, 괜찮은데요. 한 번 해보세요.”

“근데 사업은 너무 어려운 거잖아. 주위에 사업하다가 안 됐다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렇죠. 요즘 경기도 너무 안 좋기도 하고요.”     


뭔가를 처음 해보려고 하면 왜 어렵게 느껴지는 걸까. 내가 잘 모르는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은 아닐까. 창업이 어렵다고 느끼는 것도 내가 창업을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 아닐까.      


최근 몇 주 동안 캐릭터를 1 레벨부터 성장시키는 롤플레잉 게임을 해봤다. 이 게임을 하면서 창업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게임마다 세부적인 것은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비슷하다고 가정해보자.

     

캐릭터가 강해지고 레벨이 오르려면 좋은 장비를 맞추고 많은 몬스터를 제거해야 한다. 강한 몬스터를 제거할수록 보상이 경험치와 보상이 더 크다. 하지만 레벨이 올라갈수록 1 레벨을 올리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그렇게 레벨을 올리다 보면 캐릭터 성장에 도움이 되는 콘텐츠가 개방된다.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는 어떤 장비가 내 전투력을 올리는데 도움이 되는지, 어떤 몬스터가 어떤 보상을 주는지 그 외에 다른 정보에 알 수 없다. 하나씩 확인하며 캐릭터를 키워야 한다. 게임을 하다 보면 어떤 캐릭터는 다른 캐릭터들보다 성장이 빠르다.     

 

유료 아이템 구입 = 풍부한 초기 자본     


게임사도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곳이다. 게임을 만든 이유도 결국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유저들이 캐릭터를 더 빨리 성장시킬 수 있는 유료 아이템을 결제하도록 게임 시스템을 만들었다.      

자금 사정에 여유가 있고 캐릭터를 더 빨리 성장시키고 싶은 유저들은 유료 아이템을 구매한다. 이 유료 아이템을 통해 캐릭터를 더 빨리 성장시킨다. 게임사는 수익 창출을 위해 유료 아이템을 구매하는 유저가 유료 아이템을 구매하지 않는 유저보다 더 빨리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도록 게임을 구축했다.     


물론 같은 아이템을 구매했더라도 그 아이템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 아이템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더라도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아이템을 구매했을 때 이전보다는 아이템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       


창업도 이와 비슷하다. 풍부한 초기 자본을 지닌 사람은 일단 돈을 들여서 사업을 진행해본다. 들인 돈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처음에는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더라도 돈을 사용한 것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돈을 쓰지 못하는 사람보다 훨씬 빠른 시간 내에 깨닫게 될 수 있다.   

  

마케팅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풍부한 초기 자본을 가진 사람은 자기가 직접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마케팅을 진행하기보다 마케팅을 진행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채용해서 마케팅을 진행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초기 자본이 풍부하지 않은 사람은 혼자서 일일이 마케팅을 진행해야 한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그 사람이 마케팅 전문가가 아닐 때다. 하나하나 많은 시간을 들여서 마케팅을 진행해야 한다. 이러면 마케팅이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하는지 알게 될 때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시간도 자원이다. 돈이라는 자원은 초기 자본이 풍부한 사람보다 훨씬 덜 낭비했지만, 시간이라는 자원을 훨씬 더 낭비하게 된 모양새다.      


하지만 꾸준히 조금씩 나아가서 나중에는 초기 자본이 풍부한 사람을 앞지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초기에 유료 아이템을 많이 구매해서 가끔 게임을 하는 유저보다 유료 아이템을 구매하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많은 시간을 들여 게임을 하면서 앞서 가는 유저처럼 말이다.     


게임도 조기 교육?     


게임을 시작할 때, 그 게임을 오래 해서 잘 아는 지인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지인이 게임을 어떻게 진행해야 캐릭터를 더 빨리 성장시킬 수 있는지 방법을 알려줄 수 있다. 지인이 자신이 실행해온 방법 중에서 어떤 방법이 효율적인지 아닌지 알고 있다. 지인이 기꺼이 그 방법을 알려준다면 혼자 게임을 진행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다.     


게임을 오랜 시간 동안 진행해온 지인이 현실에서 창업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부모님일 확률이 가장 높다. 오랜 시간 사업을 해온 부모는 자식에게 돈을 바라보는 관점, 돈을 벌 수 있는 방법, 사람을 대하는 방법 등 사업을 하면서 겪었던 경험들을 직·간접적으로 알려준다.      


현재 사업을 하는 친구가 있다. 나는 가끔 그 친구의 사무실 한쪽 공간에서 내 일을 할 때가 있다. 물론 공짜로 쓴다. 그 친구는 직장 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아버지께서 사업을 하시던 업계의 일을 새로 시작했다. 자주 보지는 못 하지만 가끔 보면 조금씩 그 친구의 사업 관련 이야기를 듣는다.     

 

“돈 나갈 곳은 많은데 돈이 모자라서 스트레스가 너무 많다.”

“어휴, 어떡하냐.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일단 돈의 규모가 크지 않은 곳부터 처리했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하는 게 스트레스를 덜 받을 거래.”

“그 이유가 뭔데?”

“그렇게 작은 곳부터 처리해야 더 많은 곳에 돈을 줄 수가 있어. 그러면 큰 액수만 남은 소수 업체에서만 나한테 연락을 할 거니까 내가 전화를 받을 횟수와 사정을 설명해야 하는 횟수가 줄어드는 거지.”   

  

이 말을 들으면서 하나 깨달았다. ‘아, 저렇게 생각해야 하는구나’라고. 전화를 받고 상황 설명을 할 시간을 줄여서 다른 일에 더 시간을 쏟을 수 있으니 말이다.   

  

또 다른 일도 있었다.     


“하청 업체에서 내 말 안 듣고 다른 업체에 가서 내 욕 하고 다녀서 엄청 싸웠다. 이제 그 업체에 일 안 주려고. 나중에 이 얘기를 아버지한테 했더니 엄청 혼났어.”

“왜? 싸워서?”

“응. 아버지가 그러는데 계속 같이 일할 사람하고는 어느 정도 그러는 게 맞대. 잘못된 부분은 고쳐서 같이 일을 해야 하니까. 하지만 쳐낼 사람한테는 그러는 게 아니래. 괜히 말만 생기고 나중에 피곤해진다고.”

“아, 일리 있는 말씀이다.”   

  

나와 친구가 나눈 대화 내용 말고도 친구는 훨씬 많은 조언을 아버지한테 들었을 거다. 사업의 멘토가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내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클 것 같았다.

     

내가 이런 게임을 많이 해봤어     


돈을 쓰지 않고도 다른 사람들보다 캐릭터를 효율적으로 성장시키는 사람이 있다. 처음 시작한 게임과 비슷한 게임을 많이 해본 사람들이 그렇다. 스토리가 다른 것 빼고는 큰 틀에서 게임이 거의 다 비슷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캐릭터를 효율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지 알고 있다. 

    

그 사람들도 비슷한 종류의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많은 실수를 했을 거다. 능력치를 잘못 올리는 등의 실수 말이다. 이런 경우 캐릭터를 처음부터 다시 키우기도 한다.   

   

사업을 잘 구축해나가는 방법을 찾는 것도 이와 같다. 많은 실수와 성공의 경험이 쌓이면서 성공시킬 수 있는 방법을 더 빨리 찾을 수 있는 거라고.     


또 이런 유저들 중에는 게임 커뮤니티에 자신의 경험을 공략처럼 올리는 유저들이 많다. 그 공략이 맞는지 틀린지는 실행해봐야 알겠지만 처음 게임을 하는 유저들은 다른 유저의 공략을 참고하기도 한다.      


창업을 하기 위해서 책과 영상 등 관련 콘텐츠를 찾아보는 것도 다른 유저들의 공략을 참고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많은 콘텐츠 중에는 내에게 적합한 것도 한두 가지쯤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운도 적절한 시기에     


운이 좋은 유저는 레벨이 높지 않을 때 얻을 수 있는 아이템보다 훨씬 좋은 아이템을 얻기도 한다. 물론 이 운도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여야 나에게 올 확률이 높다. 몬스터를 1만 마리 제거하는 것과 100마리를 제거하는 것. 둘 중 어떤 경우가 더 좋은 아이템을 얻게 될 확률이 높을까.     


게다가 시기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내가 20 레벨일 때 보통 40 레벨 캐릭터가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을 얻게 되면 운이 좋은 거다. 그런데 60 레벨일 때 40 레벨 캐릭터가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을 얻게 되면 그냥 쓸모없는 아이템이 나온 것과 같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사업을 구축해가는 과정에서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서 직원들과 거래처에 줄 돈이 없을 때 1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했을 때와 사업이 안정기에 접어들어서 자본금 200억 원의 기업을 구축했을 때 1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투자자가 나타난 경우에 느낌이 어떻게 다를까. 자본금이 200억 원인 기업은 1억 원의 투자에 별 가치를 못 느끼지 않을까. 결국 운도 시기적절해야 한다.     

초기 자본과 경험이 부족하고조기 교육도 못 받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초기 자본과 경험이 부족하고 사업 관련해서 조기 교육도 받지 못했을 거다. 결국 대부분 사람들은 한정적인 자원 내에서 최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금 사정이 좋은 사람이라면 고가의 강의를 찾아다니면서 배우거나 직원을 채용하는 것이 훨씬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다른 사람들의 많은 공략 방법을 보면서 나에게 적합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자본과 경험이 부족하고 사업에 관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무과금 유저처럼 한정된 자원을 갖고 최대한 노력하면서 사업을 구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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