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gs we build] 전주시 놀이터조성팀과의 인터뷰
[Things we build]에서는 Play Fund가 진행한 혹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프로젝트의 시작과 과정을 담은 아카이빙 콘텐츠일 수도 있고, 프로젝트 결과물을 담은 콘텐츠일 수도 있습니다. 프로젝트마다 Play Fund가 치열하게 고민했던 생각, 프로젝트로 만난 나름의 답, 풀리지 않은 숙제, 그리고 프로젝트를 확산하는 방법까지 다양한 상상과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2018년부터 C Program은 군산시, 전주시, 시흥시와 놀이환경진단사업을 추진해왔으며, 현재는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 안산시, 의왕시, 광주 북구의 놀이환경진단사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시민들과 함께 지역 내 공공 놀이터를 전수조사하고 진단 결과를 기반으로 지역 여건에 맞는 놀이환경 개선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놀이환경진단사업>은 지자체에게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C Program과 함께 진단사업을 추진하고, 사업 결과를 바탕으로 다양한 후속 작업을 진행 중인 '모범' 지자체, 전주시의 놀이터조성팀 담당자들을 만나봤습니다.
Q. 놀이터조성팀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
이진선 팀장님: 이름 그대로 놀이터를 만드는 업무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어요. 전주시는 더 많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밖에서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자연에서 뛰어놀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학교 안에 놀이 공간을 만드는 '학교 놀이환경개선사업'도 하고, 숲 놀이터도 만들고 놀이환경진단사업 결과에 따른 시범사업도 추진하고 통합 놀이터도 만들고 있어요.
Q. 평소에 아이와 놀이터를 자주 다니셨나요? 놀이터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으셨나요?
문수진 주무관님: 초등학교 1학년, 3학년 아들 2명을 키우고 있는데요.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부터 잘 만들어진 놀이터, 특히 아파트 놀이터를 메뚜기처럼 주말마다 돌아다녔어요. 그러면서 동네의 공공 어린이공원은 노후되어 있는데 새로운 아파트 놀이터들이 너무 좋다 보니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죠. 또래 나이대의 아이를 가진 직원들에게 우리 시의 어린이공원을 어떻게 하면 잘 만들지 공부하는 동아리를 만들자고 제안할 정도로 놀이터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놀이터조성팀에 오면서 놀이터를 업무로서 접하게 되었는데요. 예전에는 왜 특정 동네에 좋은 놀이터가 있는지 단순한 질투심을 느꼈다면, 지금은 제한된 예산을 어디에 투입할지 고민이 많아요. 아이들이 많은 곳에 놀이터가 있는 것도 중요하고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은 놀이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Q. 아이들에게 놀이터란 어떤 존재일까요?
이진선 팀장님: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성장하고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장소가 놀이터라고 생각해요. 나무가 울창하게 가꿔지려면 뿌리가 중요한 만큼, 놀이터가 놀이의 기반이 되는 '뿌리 역할'을 해주면 좋겠어요. 획일화된 놀이터와 달리, 모험력과 상상력을 키워줄 수 있는 숲 놀이터 같은 새로운 시도도 많지만, 숲 놀이터까지 아이들이 걸어서 오기엔 너무 멀잖아요. 그래서 집과 가까운 놀이터, 언제든 걸어가서 틈틈이 놀다가 갈 수 있는 '그늘 역할의 놀이터'들도 잘 조성하고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문수진 주무관님: 김명순 교수님 논문에서 "놀이는 무엇을 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며, 놀이는 그 자체로 문명화된 활동(civilizing activity)이고 미래를 위한 사회적 합의이다.(Lester & Russell, 2008)"라는 표현을 봤어요. 어른들은 쉬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공간적인 선택지가 다양한데 아이들은 쉬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잖아요. 놀이터는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서 안전하게 경험할 수 있는 작은 세계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 들어 놀이터를 만들 때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놀이터와 관련해서 어른들이 주도적으로 끌고 가는 방향이라 아쉬워요. 계속 전국에서 놀이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다 보면 놀이터가 아이들이 주체가 될 수 있는 활동 공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무가 울창하게 가꿔지려면 뿌리가 중요한 만큼 놀이터가 아이들 놀이의 기반이 되는 '뿌리 역할'을 해주면 좋겠어요.
놀이터는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서 안전하게 경험할 수 있는 작은 세계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어떻게 놀이환경진단사업을 참여하게 되셨나요?
이진선 팀장님: 2015년부터 숲 놀이터를 조성하고 있는데, 숲 놀이터는 놀이성이 좋지만 아이들이 매일 찾아오기엔 위치적인 한계가 있어서 고민이 있었어요. 접근성이 좋은 동네 놀이터들을 아이들에게 돌려주려는 노력도 함께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군산시에서 놀이환경진단사업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연락이 닿아 진단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기존의 동네 놀이터가 재미없어서 안 오는지, 놀 시간이 없어서 안 오는지를 보려면 기초 자료가 필요했거든요. 전주시 놀이터 160개를 시민 조사원과 함께 진단하고 나니 지역 내 가장 놀이성이 떨어지는 놀이터가 어디인지 윤곽이 드러나서 지역 놀이 환경을 개선하는데 나침반 역할을 해주고 있어요. 민원 등에 따라 의사 결정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민간 전문가들과 함께 상의하며 결정할 수 있어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전주시 놀이터 160개를 시민 조사원과 함께 진단하고 나니 지역 내 가장 놀이성이 떨어지는 놀이터가 어디인지 윤곽이 드러나서 지역 놀이 환경을 개선하는데 나침반 역할을 해주고 있어요.
Q. 놀이환경진단사업을 하기 전, 후로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 무엇인가요?
이진선 팀장님: 전주시의 경우 160개 놀이터 중 13개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어린이 공원 안에 있는데요. 공원관리팀은 어린이공원뿐만 아니라 근린공원, 소공원, 주제공원을 모두 관리하다 보니 안전검사, 모래소독 등 기본적인 유지보수 이상으로 어린이공원에 신경을 쓰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이번에 진단사업을 통해 전주시 전체의 놀이터 환경을 조사하다 보니 만족도, 접근성, 놀이성 등 현황이 한눈에 다 나오고 그것을 지도에 표시까지 하다 보니 어떤 대상지를 먼저 개선할지 객관적으로 의사 결정하는데 도움이 많이 돼요. 올해 개선하고 있는 놀이터들도 진단 결과에 공원노후도, 아동인구수, 주거환경 등을 추가적으로 고려하여 선정했어요. 이처럼 우선순위를 정할 때 체계적으로, 객관적으로 의사 결정할 수 있는 기본 자료가 생긴 것이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데이터가 없었다면 꼭 그 놀이터를 리모델링해야 하는지 주체성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을 거예요.
우선순위를 정할 때 체계적으로, 객관적으로 의사 결정할 수 있는 기본 자료가 생긴 것이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데이터가 없었다면 꼭 그 놀이터를 리모델링해야 하는지 주체성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을 거예요.
Q. 아이들, 시민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는 간담회에서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이진선 팀장님: 간담회에서 어떤 여자분께서 원래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었고 어린이 놀이터도 그냥 지나치던 사람인데 이번에 시민 조사원으로서 놀이터를 경험하고 나니 어른으로서 미안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이 굉장히 제 마음을 울렸어요. 어린이 놀이터의 주인은 아이들인데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많이 사용하면서 주인보다 더 함부로 물건을 사용하는 손님처럼 너무 미안했다고 하셨거든요. '놀이터는 너희가 주인인데 함부로 써서 미안해'라고 생각하는 어른이 1명 늘어났다는 게 좋았어요. 앞으로 시민 조사원처럼 시민들이 놀이터에 대한 인식을 직접 느끼고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서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놀이터를 가꾸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놀이터는 너희가 주인인데 함부로 써서 미안해'라고 생각하는 어른이 1명 생겼다는 게 좋았어요.
문수진 주무관님: 간담회에서는 제가 한 아이의 엄마로서 평소에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많아서 공감했고요. 개인적으로는 이번 사업을 하면서 놀이터라는 단어가 행정에서 자주 쓰는 단어가 아닌데 주인공이 된 느낌을 받았어요. 놀이터보다는 어린이공원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고 근린공원에 들어가는 하나의 옵션일 뿐이었는데요. 진단 사업을 하면서 놀이 기구는 어떤 기능 때문에 들어가는지, 어떤 놀이 욕구를 만족시켜주면 좋을지 한 단계 깊이 고민하다 보니 이번 사업이 '놀이터'라는 엑스트라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준 계기가 된 것 같아 기뻤어요.
이번 사업을 하면서 놀이터라는 단어가 행정에서 자주 쓰는 단어가 아닌데, 엑스트라를 마치 주인공으로 만들어준 계기가 된 것 같아 기뻤어요.
Q. 놀이환경진단사업 결과로 어떤 개선 사업을 우선순위로 추진하고 계신가요?
이진선 팀장님: 먼저, C Program과 함께 '놀이성'이 떨어지는 놀이터 3개소를 특색이 있는 테마 놀이터로 바꾸는 환경개선사업을 추진하고 있고요. 놀이터가 어디에 있는지, 각각 놀이터에 가면 뭘 하고 놀 수 있는지 궁금하다는 의견이 있었던 터라 160개 전부는 아니지만 물놀이터, 생태놀이터 등 특색 있는 놀이터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놀이터 지도를 만들었어요. '놀이터'가 아이들 공간이라는 의미를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통일감 있는 표지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기에 전주시 놀이 정책 브랜드 '야호'의 브랜드 정체성을 적용한 간판개선사업을 추진 중이에요. 또한 간담회 때 '학원에 가야 하는데 놀이터에 시계가 없어서 불편하다'라고 했던 의견을 고려해 한국전기안전공사의 후원을 받아 세이브더칠드런 서부지부와 함께 13개 놀이터에 시계를 설치했어요.
Q. 개선 사업을 추진하시면서 놀이터에서 어떤 풍경을 상상하셨는지 궁금해요.
이진선 팀장님: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얻은 게 정말 많아요. 앞으로 놀이터들을 어떻게 개선해가면 좋을지 안내해주는 나침반 같은 기초 자료를 만들었으니까요. 이와 별개로, 어떤 놀이터 풍경을 상상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서 떠오른 기억이 있어요. 전주시에서는 숲 놀이터를 만들면 오픈하기 전에 아이들을 초대해서 놀 때 다칠 부분이 없는지 점검하는 '놀이 관찰'을 하는데요. 하루는 두더지굴이 있는 놀이터의 놀이 관찰을 하고 있었어요. 아이들이 무서워하다가도 신나서 마구 뛰어다니며 놀더라고요. 그러다 한 아이가 갑자기 저에게 와서 "선생님, 이거 너무 재밌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재밌어도 되는 거예요?"라고 항의(?!)를 했어요. 양쪽 볼이 빨개져서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너무 재밌다고 항의하는 걸 보니 황당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이번 개선사업에서도 누군가 땀을 뻘뻘 흘리며 와서 이 놀이터 너무 재밌다고 항의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누군가 땀을 뻘뻘 흘리며 와서 이 놀이터 너무 재밌다고 항의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Q. 어떤 결과가 나오면 가장 뿌듯할까요?
문수진 주무관님: 많은 사람들이 같이 노력해서 머리를 맞대어 만든 만큼, 아이들은 무조건 좋아할 거라고 기대해요. 개인적으로 하나 더 바라자면, 이번에 효문 공원을 개선하면서 고스톱도 치고 담배도 태우시면서 공원을 자주 이용하시던 어르신들을 설득하느라 어려움이 있었는데요. 그분들이 나중에 공사가 끝나고 공원을 열었을 때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며 같이 웃고,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고 아이들과 같이 어울리면서 바라봐주시는 그런 놀이터 풍경을 보면 좋겠어요.
Q. 다른 지자체에게 놀이터 환경진단 프로젝트를 추천하시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진선 팀장님: 몇몇 지자체에서 연락이 왔었어요. 환경진단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했는지, 누구와 했는지 등 자세한 이야기를 궁금해하시더라고요. 환경진단의 필요성을 깨달았다는 것 자체가 그 지자체가 아동에 대한 놀 권리를 지속적으로 고민했었다는 의미라고 생각해요. 하나의 놀이터를 바꾸는 게 아니라 지역 전체의 놀이환경을 진단하고 앞으로 어떻게 바꿀지 기초 자료로 삼기 위한 것일 테니까요. 이처럼 놀이환경진단사업은 지역 내 놀이터들을 제대로,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이자 '시민 조사원'이라는 형태로 시민들의 인식 변화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놀이를 신경 쓰는 지자체라면 한 번쯤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수진 주무관님: 우리가 공부하기 전에 책상을 깨끗이 정리하고 분류하고 계획을 짜며 시작하는 것처럼 준비 작업을 하지 않고 놀이터를 개선한다고 하면 어떤 게 문제일지, 무엇을 중심으로 볼지, 무엇을 신경 써서 개선할지 굉장히 막연할 거예요. 진단사업을 하면 놀이터 환경에 대해 접근성, 놀이성 등 여러 요소들을 체계적으로 체크하다 보니 이런 것들을 신경 써야 하는구나라는 게 눈에 보이고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하거든요. 무엇을 우선 개선할지,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체계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만큼 다른 지자체들도 꼭 진단을 먼저 해보시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놀이를 신경 쓰는 지자체라면 한 번쯤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공부하기 전에 책상을 깨끗이 정리하고 분류하고 계획을 짜며 시작하는 것처럼 준비 작업을 하지 않고 놀이터를 개선한다고 하면 어떤 게 문제일지, 무엇을 중심으로 볼지, 무엇을 신경 써서 개선할지 굉장히 막연할 거예요. 무엇을 우선 개선할지,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체계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만큼 다른 지자체들도 꼭 진단을 먼저 해보시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글: C Program Play Fund 김정민 매니저
인터뷰: 전주시 놀이터조성팀 이진선 팀장님, 문수진 주무관님, C Program Play Fund 신혜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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