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를 읽으면서 시작한 나 자신에 관한 탐구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시작했다. 내 머리에 있는 건 과거의 기억뿐이기 때문에 머리 깊숙한 곳 어린 시절부터 나열해보기로 했다.
가장 오래된 좋아하는 것의 기억은 6살 때 보던 애니메이션 <로봇수사대 케이캅스>다. 26년이나 지나서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좋아했던 감정만은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포켓몬스터>가 한국에서 방영이 되었다. 열렬히 좋아했었다. 그리고 4학년 때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보고 그 후 해리포터에 빠져 살았다. 그 당시에는 ‘미스터포터’라는 웹사이트를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에서 열심히 활동했었다. 태국에서 국제학교에 다니면서는 케이팝과 밴드음악, 학교 음악 활동들에 심취해 있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착실한 학생답게 전공인 건축학에 빠져 살았다. 이제 30대의 나이에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현재 나에게 애정과 의미를 지닌 것은 무엇일까?
이때부터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물론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고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의구심도 든다.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어릴 때처럼 한 가지에 쉽게 빠져들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덕후를 부러워한다. 나도 무엇의 덕후라고 할 정도로 빠져드는 것이 확실하게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한 가지는 아니지만 어떤 행위든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 좋아한다. 점점 생각과 걱정은 많아지고 챙겨야 할 사람과 할 일도 많아진 나에게 ‘하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그 순간이 내가 좋아하는 걸 찾는 힌트였다. 하고 싶어서 해야만 하는 것, 그게 ‘좋아함’인 것 같다. 그렇게 많은 야근을 하면서 틈이 나면 하고 싶어지는 것들이 좋아하는 것 아닐까? 나에게 하고 싶은 욕구는 매우 중요한 바로미터가 되었다.
회사에서도 그랬다. 소형 건축사사무소 인턴을 하면서 바닥에 있는 노동인권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건축하는 일이 좋았다. 그러다 번아웃으로 잠깐 백수로 쉬면서 다양한 생각들을 해보았지만 결국 건축 실무를 좀 더 깊게 해보고 싶었다. 건축 공부도 더 하고 싶어서 학부를 했던 대학교에서 석사까지 하고 왔다. 그 후에는 꼰꼰 건축에서 현상과 건축 인허가 업무를 겪으면서도 1년 차에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하기 싫어졌다. 하고 싶은 욕구는 시들해져 갔고 건축 실무로는 충족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있었다.
직장에 대한 불만이야 나열하면 수백 가지 될 테지만 제일 큰 문제는 ‘창조’적인 행위가 적어서인 것이 문제였다. 내가 생각하는 창조적 행위가 건축 실무에서의 창조적 행위와 정의가 빗나가 있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건축 실무에서 겪은 건축은 학교에서 배우던 건축과는 많이 다르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건축은 회사의 건축과 다른 것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내가 ‘건축’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왜 문제가 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건축’을 좋아한 게 아니라 ‘건축’의 특정 부분을 좋아했던 것이다. 그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면 공간을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할지 기획하고 상상하며 건축물 안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사회적 문화나 행위를 만들고 이를 어떻게 공간적, 기능적으로 풀어나갈지까지 해결하는 것을 좋아했다. 아쉽게도 건축사사무소에서는 이런 업무는 하지 않았다.
나는 스무 살 때부터 건축 공부를 했다. 분명 나도 한때는 건축사 사무소에서 하는 일들이 재밌고 좋았었다. 하지만 나는 변했다. 그리고 변하고 있다. 영화 <소울>에서 나오는 ‘스파크’ 처럼 각자의 삶의 운명처럼 정해진 열정적인 일이 있을까? 애초에 평생 무엇을 운명처럼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갑갑하고 힘들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해왔던 이 일도 더 이상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책임감 때문에 하거나, 행위에 딸려오는 명예나 돈에 비중이 커져 이어오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래서 좋아하는 일이라고 영원히 좋아해야 한다는 내 생각의 틀을 깼다. 마치 대학교 진학할 때 진로를 정하면 평생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듯, 좋아하는 일이라는 게 평생 가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과 같다. 나는 좋아하는 것들이 시간에 따라 바뀌고, 바뀌면 바뀌는 대로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것은 갑자기 든 생각이 아니라 내가 평생 그렇게 해오고 있는 것에 더 가까웠다.
유치원 때는 케이캅스를, 초등학교 때는 포켓몬스터를, 10대 때는 해리포터와 음악을, 20대 때는 건축을 좋아했던 것과 같다. 그러면 과연 30대 때는 무엇을 좋아하면서 살아갈까? 그리고 나는 인생이 끝날 때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좋아하다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