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
이 일은 2021년 4월 초에 일어난 일이다. 글로벌 본부 3팀 팀장 김 소장이 나를 불렀다. 대충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4월부터 시작하는 ‘베트남 국제 현상’에 내가 초기 멤버로 들어간다고 했다. 솔직히 이 말을 들었을 때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나는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하던 아파트 프로젝트가 나를 힘들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현상 프로젝트에서 고생하더라도 일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김 소장은 진심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사람 좋게 나에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오히려 기뻐하는 내 속마음을 김 소장을 알았을까? 김 소장은 항상 내가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생각하는 것 같다.
‘베트남 국제 현상’에 투입되고 보니 나는 초반부터 참여하는 네 명의 코어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글로벌 본부에는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사람이 세 명이 있었는데 먼저 나와 동기 S가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말레이시아에서 온 에 과장님이었다. 일단 이렇게 3명은 작년 12월에 진행한 ‘베트남 국제 현상’ 서류 전형에도 참여했었다. 에 과장님이 프로젝트의 PM을 맡아 문서를 준비하고 나와 S는 번역하는 일을 했었는데 다행히도 1차 서류 심사를 통과하고 본격적인 현상에 참여하는 15팀에 들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멤버는 2팀에서 나랑 가장 친한 용 대리님이었다. 이렇게 4명은 4월부터 베트남 프로젝트에 들어가기로 윗선에서 정리가 되었다. 물론 다른 본부에서 지원 온 두 명의 사원분들과 대리님 한 분이 있었고 거기에 외부에서 초청한 디자이너도 있었다. 그래도 글로벌 본부에서 진행하는 현상인 만큼 본부의 네 명이 여러 방면에서 주축이 되는 코어 멤버라고 할 수 있었다. 4월부터 우리는 매일 밤 막차가 끊기기 전까지 야근하면서 현상을 차근차근 진행해갔다.
두 달 동안 해야 하는 현상이었고 바쁜 일정 때문에 회사 밖 생활은 모두 올스톱 되어버렸다. 집에 가면 씻고 잠자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당연히 사이드 프로젝트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글로벌 본부에서 진행하는 역대 가장 큰 규모의 국제 현상이기 때문이었다. 현상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꽤 큰 규모였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지어질 공공 오피스 건물과 마스터플랜을 계획하는 현상이었는데, ‘과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의 국제성 또한 컸다. 같이 경쟁에 참여한 회사들은 일본의 니켄 세케이 독일의 gmp 외에도 호주, 프랑스, 베트남의 건축사 사무소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내 건축 인생에 이렇게 큰 프로젝트는 없을 것이기에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행히 멤버 구성이 좋았다. 이전 프로젝트처럼 삐그덕거리던 멤버 구성이 아닌 이미 합을 어느 정도 맞춰 본 경험이 있었고 서로 존중하며 소통할 수 있는 멤버 구성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든든하게 믿고 의지할 수 있었다. 사실 다른 멤버들은 어땠는지 모르겠다. 일단 S는 1팀에서 진행하던 다른 프로젝트 때문에 초반에 왔다 갔다 해야 하는 힘든 상황이었고, 용 대리님은 스스로 현상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여정이었을 것이다. 에 과장님은 개인적인 판단으로 현상을 꽤 즐기는 것 같았다. 물론 PM을 담당했기 때문에 부담감에 스트레스는 크셨겠지만 맡은 프로젝트를 책임감 있게 이끌었다.
생각보다 두 달은 꽤 긴 시간이었고 글로벌 본부의 몇몇 직원들은 최대한 ‘베트남 국제 현상’에 억지로라도 참여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척 야근을 하기도 했다. 모두 “베트남이 고생이다”라며 말했고 웃기게도 나는 이 상황에 오히려 잘 되었다며 현상 참여를 좋아하고 있었다. 아마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한 코어 멤버들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역시 같이 일하는 사람이 중요하다. 비록 몸은 피곤하겠지만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하며 4월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