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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의진 Apr 11. 2021

글쓰기의 매력, 뜬금없는 힐링의 순간

  한글은 오묘하다. 다른 나라의 언어체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에, 상대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동일한 글이라도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유명한 노래의 가사처럼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어도 ‘남’이 되기도 하고, ‘어린이가 방에 들어간다.’를 띄어쓰기만 바꿔도 ‘어린이 가방에 들어간다.’로 완전히 다른 뜻이 될 수도 있다.


  명확성이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인지 교사였을 때는 잘 몰랐었다. 바람직한 방향이 맞다면 표현을 어떻게 하더라도 진심이 전달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장학사가 되고 보니 법률과 규정, 지침과 매뉴얼 등에 따라 관련 업무를 명확하고 정확하게 전달하고 수행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오해가 없도록 정제된 단어를 사용한 글을 써야 하는 것이다. 결국,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개인의 영혼은 없는 건조한 문장으로만 남게 되는 느낌이다.


  공무원은 공문으로 말한다고 한다. 공공기관이 생산한 공식적인 문서는 기안자의 이름이 명시되며, 결재를 받는 순간 다양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밖에서 보면 크게 의미 없어 보일수도 있겠지만, 문장과 단어를 고민하고 협의하고 수정하는 일을 반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을 쓰는 것이 일이고 글을 많이 쓰기도 하다보니, 글 솜씨가 늘어난 것 같기는 한데 전혀 티가 나지 않는 것 같다. 짧은 시간에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은 분명히 잘 하게 되었지만, 무엇인가 창의적인 일을 할 때는 큰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의 이야기, 나의 생각이 아닌 정답이 있는 정답을 찾아야 하는 글만 쓰다보니 가슴 속에 무엇인가 답답한 마음이 쌓이는 느낌이다. 하루종일 모니터 앞에서 문서만 보는 것이 일이라 글을 쓰는 것이 즐겁지 않을만도 한데, 누가 시키지도 않는 자발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그냥 소소한 일상과 떠오르는 생각들을 어딘가에 글로 기록하는 행위만으로도 즐거움이 솟아난다.


  일과 관계없는 나의 이야기를 쓰는 일은 부담이 없어서 좋다. 말 그대로 글을 쓰면서 힐링이 되는 느낌이 든다. 일기를 써야 인생이 풍성해진다고 인생의 선배님들이 말씀해 주셨던 이유가 여기에 있나보다. SNS로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SNS를 끊어내지 못하는 인간의 심리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SNS가 인생의 낭비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글로써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 것 같다.


  나는 왜 10~20대의 젊은 날, 새로운 만남으로 가득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와 생각들을 글로 남겨두지 못했을까. 뭐가 그리 바쁘다고 하루에 잠깐의 시간을 내어 몇 줄 글을 남겨놓는 것을 하지 못했을까. 너무나도 아쉽다. 모두가 부끄러워하는 허세글이라도 남아있다면 좋을텐데.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어딘가에 몇 줄이라도 끄적이게 된다.


  가끔씩이라도 글을 쓰고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읽어보면, 그 때 내가 했던 생각과 느낌이 새롭게 다가온다. 사진을 보고 그 때를 추억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든다. 부끄럽기도 하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지는 일이 많다. 자녀를 키우다보니, 아이들의 글을 볼 기회가 점점 많아진다. 아이들의 글에서 나의 여러 가지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돌봄과 훈육이 필요한 존재인 줄만 알았는데, 생각과 감정이 있는 인격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아이들의 글을 통해 깨닫고 반성하게 된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역시, 내가 어딘가에 쓴 글을 통해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만남과 만남이 이루어져 쓰게 되었다. 이른바 ‘한 장 글쓰기’를 예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공감이 된다. 나도 벌써 꼰대가 되어 버린 것일까. 일상에 지쳐 힘들어하는 후배들을 만나면 글을 써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가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아닌데, 주제 넘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였던 것 같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몇 줄의 글이라도 쓰면서 여유있게 풍성한 삶을 만들어 보라고. 나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해 본다. 펜, 아니 키보드에 손을 올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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