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교과의 본질에 대한 도전을 받고 있는 체육 교과 이야기
2020.3.1.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체육 교과 수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장학사가 되었지만, 당분간은 개인적인 욕심과는 다른 일에 집중하게 되었다. 지난 육개월간 체육 업무를 하며 쌓으려고 했던 노하우는 잠시 접어두게 되었다. 모든 공무원이 마찬가지이겠지만, 자신이 맡은 일이 가장 큰 일이고 내가 제일 힘든 일을 하게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학과 동시에 몰아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학교폭력 사안을 처리해야 했기에 더 긴장된 마음으로 3월을 맞이하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3월 둘째 주로 등교개학이 연기되었고, 조금씩 연장되어 3월 한 달 동안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된 것이었다.
3월 한 달 교육청은 말 그대로 폭풍전야와 같았다. 온라인 개학을 준비하는 움직임, 등교개학 시 방역지침 마련 등 각종 논의를 위한 회의가 계속되었다. 일반적인 시민들, 학생, 학부모는 온라인 개학이라고 하면 화상회의 또는 인터넷 강의를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청의 입장에서는 온라인 개학 시 기존의 학교교육에 맞추어져 있는 모든 시스템의 부분부분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정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각자 자신의 업무영역에 대하여 미세한 문제들까지 고민하고, 학교의 입장 교사의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천할지 매일같이 고민하는 모습들이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고민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체육 교사들은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학교체육 정책은 '체육 교과 수업'과 '교과 수업 외 학교체육 프로그램'이라는 두 가지 큰 줄기를 가지고 있다. 이 둘은 서로 연계되어 있어 따로 분리하여 생각하기 어렵지만, 하나(교과 수업 외 학교체육 프로그램)가 완전히 중지된 시점에서 다른 하나(체육 교과 수업)만큼은 어떻게든 해야만 하는 비상 상황이었다. 체육 교사들은 혼란스러웠고, 누군가는 방향을 잡아주어야 하는 시점이었다.
이러한 고민들이 모여 서울특별시교육청, 학교체육진흥회가 협력하며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일을 하기 위한 논의에 참여하는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주어진 역량에 비하면 한 없이 큰 일이었지만, 체육 수업에 대한 논의를 하고 방향을 잡아가는 일을 하고 싶어 장학사가 되었기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었는데, 바로 그 일을 하게 되어 행복한 순간이기도 했다. 주 업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잠시나마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우리 부서장님께도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었다.
몇 차례 회의를 하면서 깊이있게 준비하면 좋았겠지만, 주어진 시간은 짧았고 밤낮없이 휴일도 없이 원격회의와 피드백이 진행되었다. 우리는 체육 교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례」와 「콘텐츠」라는 것에 동의하였고, 쓸만한 자료를 엄선하여 어떻게 교사들에게 전달할 것인가도 동시에 고민하기로 하였다.
먼저, 교육부가 제시한 원격수업의 큰 틀을 바탕으로 체육 교과 수업을 진행하는 모델이 필요했다. 체육 교과 원격수업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체육 교과 원격수업을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실제 사례를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교육부가 제시한 세 가지 수업 방식 중 두 가지, 「실시간 쌍방향 수업」와 「콘텐츠형 수업」 사례를 만들어 보기로 하였다.
또한, 가능하다면 수업 사례는 우리가 만들어 교사들에게 공유할 「콘텐츠」를 가지고 하는 수업이 좋겠다는 의견이 모였다. 콘텐츠를 빠른 시간 안에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 공유하기 위해서는 플랫폼과 디자인을 통일해야 했다. 교사들이 새롭게 사용방법을 배우지 않고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은 PPT(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 파일) 형식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PPT파일을 한 차시 분량으로 만들어 공유하면, 이를 학생들에게 직접 파일로 제공하여 콘텐츠 형태로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 즉 콘텐츠 수업이 가능해진다. 동시에, 쌍방향 수업 시 교사가 이를 활용하여 수업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행히 흔쾌히 참여해 준 선생님들이 계셨고, 2~3일 만에 두 개의 수업 사례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공개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GNrTFvNrdHo
https://www.youtube.com/watch?v=u3u7XYHUGHY
우리가 한 차시 분량의 모듈형 콘텐츠를 만들면서 고려했던 한 가지는, 이를 통하여 교사가 자신의 수업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한 콘텐츠를 직접 만들겠다는 동기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화려하고 멋진 디자인은 교사들에게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는 동기보다는, 자신의 콘텐츠에 대한 부끄러움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런 디자인도 없는 흰 바탕에 검정색 기본 폰트 글씨를 템플릿으로 정하고 내용에만 집중하여 만들기로 하였다. 온라인 개학 직전까지 네트워크를 총동원하여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하여 노력했는데, 젊고 역량 있는 많은 체육 교사들이 참여하여 짧은 기간 안에 수십 개의 '한 차시 모듈형 PPT' 콘텐츠가 모였다. 말 그대로 서울 체육 교사들의 역량을 볼 수 있었고, 서울 체육교육의 미래가 기대되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렇게 모인 콘텐츠는 두 가지 형태로 교사들에게 공유하기로 하였다. 첫 번째는 서울특별시교육청 관내의 모든 초중고에 공문으로 안내를 하는 것이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우리가 직접 개발하는 콘텐츠보다 중요한 일이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교사들에게 수업설계의 틀을 제시하여 이 틀에 자신이 구상하는 내용을 넣어 수업을 쉽게 설계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길라잡이」를 안내하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수업설계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찾기 쉽게 목록화하여 제공하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의견을 수렴해주었고, 온라인 체육수업 설계 길라잡이와 수업자료 목록이 공문으로 서울의 모든 학교에 안내되었다. 아무도 관심 없는 일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장학사가 된 이후로 가장 보람된 순간이었다.
우리가 만든 한 차시 모듈 형식의 「콘텐츠」는 파일의 용량이 크기 때문에 공문으로 공유하기는 어려웠다. 바로 이 부분에서 학교체육진흥회에서 큰 역할을 해 주셨다. 학교체육진흥회 홈페이지는 학교체육의 중심이 되는 일종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학교체육진흥회에서는 홈페이지에 「온라인 학습자료」 메뉴를 추가해 주셨고, 지속적인 피드백을 통하여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작업을 하였다. 서울의 모든 학교에 공문으로 안내되는 순간에는 우리가 만든 수십여 개의 콘텐츠 뿐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이 공간을 통해서 공유가 활성화되면서 보다 양질의 자료들이 자연스럽게 축적되기를 바라기도 하였다.
https://cspep.or.kr/front/board/boardContentsListPage.do?board_id=36
2주 정도의 짧은 시간, 그것도 본업 외의 일이었지만, 정말 즐겁게 일을 하는 시간이었다. 공문이 안내되고 학교체육진흥회를 통해 타시도에도 안내가 되면서, 많은 교사들로부터 다양한 피드백을 받았다. 그동안은 몰랐던 서울의 수도 없이 많은 역량 있는 체육 교사들을 만났고, 전국의 체육 교사들과도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동안의 장학사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를 모두 잊을 수 있을 만큼의 즐거운 순간이었다.
교사 시절 교육청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체계적인 지원도 좋지만, 비록 미흡하더라도 「적절한 순간」에 지원이 있으면 더욱 좋겠다는 것이었다. 일단, 말 그대로 비상상황에서 현장의 교사들에게 최소한의 필요한 지원은 하였지만, 다음 단계의 지원 역시 적절한 타이밍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다음 단계에 필요한 것은 「실제로 교사들이 원격수업을 하면서 겪은 시행착오의 공유」라는 의견을 모았고 이를 위한 방법은 무엇이 좋을지 고민하기로 하였다. 부족하나마 이렇게 온라인 개학이 왔고, 체육 교과 원격수업은 시작되었다.
온라인 개학을 준비하는 혼돈의 시간을 마치고 원격수업을 시작한 교사들의 입장에서 궁금한 것은 무엇이고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원격수업이 시작되고 1~2주가 지난 시점에서, 교사들이 가장 궁금한 것은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은 맞는지에 대한 피드백, 다른 교사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우리는 체육 교사가 실제로 원격수업을 하면서 겪은 시행착오를 공유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했다. 수업을 통째로 녹화하여 보여주자는 것이 첫번째 의견이었다. 하지만, 실시간 쌍방향 수업이 아닌 콘텐츠형 수업, 과제형 수업이 주를 이루고 있어 수업을 녹화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차선책은 교사들이 자신의 수업을 설명하는 영상을 모으는 것이었다. 다른 교사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수업을 찾고 또 찾았다. 일면식도 없는 선생님들께 연락을 드렸고, 대부분 흔쾌히 동참해주셨다. 서울특별시교육청 차원에서 선생님들을 체계적으로 조직하는 일도 잘 지원해 주셨다. 교사들에게 자신의 수업을 10분 정도의 분량으로 부담없이 설명하는 영상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을 하였고,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수업사례 영상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제 문제는 서울의 체육 선생님들의 수업을 어떻게 공유하고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의 기술적 수단이었다. 결론은 유튜브. 브랜드나 디자인을 고민할 시간은 없고... 지극히 관에서 만든 느낌이 나는 「체ON」(체육수업 온라인)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의 체육교육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교사들의 수업을 공유하였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njsA3adWBqb3UIYSGobMOg
교사들은 자신의 수업을 자랑하는 방식이 아닌, 시행착오를 공유하고 정보를 나누는 방식의 수업사례 영상을 만들어 제공해 주셨다. 다른 교사들의 수업 사례를 통하여 원격수업의 자신감을 얻고 도전하게 되었다는 교사들의 피드백은 교육청 존재의 이유를 느끼게 해 주어 보람된 순간이었다. 학교 현장에서 더 이상 수업을 하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 체육 교과 원격수업이 어떤 방식으로 뻗어나갈지 궁금한 순간이기도 하였다. 학교현장의 원격수업은 시행착오를 통하여 정착하게 되었고, 6월의 등교개학과 연계하여 설계된 수업들이 하나하나 진행되었다.
교사로서 수업 이야기를 하러 여기저기 다니면서 느꼈던 가장 아쉬웠던 점은 서울의 역량 있는 교사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알려진 교사가 많지 않다고 해서 역량 있는 교사들이 없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내가 경험한 서울의 훌륭한 선생님들이 얼마나 많은데... 짧은 몇 주의 시간 동안, 서울의 수많은 교사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수업연구를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었는지 체험할 수 있었다. 서울 체육교육의 미래가 기대되는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고, 동시에 나는 이제 더 이상 수업을 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서울의 체육교육, 대한민국의 체육교육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