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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의 유혹

내가 잡은 줄이 강철이기를

by lqpa


탐심에 가득 찬 호랑이가 기도합니다.

"나에게도 동아줄을 내려주세요 “

기도에 응답한 하늘이 줄을 하나 내려주고 그것을

덥석 문 호랑이는 줄이 끊어져 추락합니다. (동화 <해님 달님> 중)





한국만큼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관계에 전력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요. 그만큼 나에게 '이로울 것으로 기대되는' 줄의 소유는 사람의 본능을 자극하기 충분합니다. 비교적 쉽게, 빨리, 많이 얻을 수 있는 힘을 빌릴 수 있으니까요.


그 끈이라는 것에 닿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명분은 학연, 지연, 혈연 3종 세트일 겁니다. 조직에서 어떤 영역을 장악하는 집단에 쉽게 진입할 수 있는 티켓을 가질 수 있다면, 갖고 태어났든 스스로 만들었든 3가지를 활용하고픈 마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며 이제는 능력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문제는 나를 천국으로 끌어줄 금줄 일지 호랑이를 추락시킨 썩은 줄일지 모른다는 겁니다.


조직을 이끄는 주요 부서가 있습니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다르지 않죠. 영향의 범위가 큰 부서의 장은 위로 올라갈 확률이 크기에 포부가 큰 직원들은 될 성 부른 부서 진입부터 경쟁합니다. 수년간 보고 들은 바로는 치열하다 못해 눈물겨운 물밑 작업입니다. 라인의 꽃은 여기서부터 핍니다. 힘을 가진 자는 조직을 이끌기 위해 뜻을 따라줄 적임자가 필요하죠. 사람이 모인 곳은 반드시 존재하는 현상이기에 '내 사람'을 찾는 행위가 곧 '라인' 형성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외부 혹은 제3의 힘이 리더를 밀어낼 때 엮였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억울할 수도 있으며, 본의가 아니어도 교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잘 나가는 부장 A, B가 있었습니다.

B는 잘 나가기만 하고, A는 잘 나가는데 성품과 실력까지 좋아 많은 추종자(저도 그들 중 한 명)를 거느린 직원들의 롤모델이었습니다. 둘은 조직의 3축(기획, 인사, 총무)이라 할 수 있는 주요 부서의 장을 맡고 있어 이변이 없는 한 임원으로 가는 열차 탑승이 확실했습니다. 이듬해 CEO가 바뀌며 모두 교체됐지만, 새로운 CEO는 머잖아 A를 다시 부릅니다.



A가 B에게 없는 라인을 가지고 있어서 일수도 있고, 남이 모르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만, CEO의 확신에 도장을 찍은 것은 처음도 끝도 A의 실력이 기본이었습니다. 핵심 부서를 이끌 역량은 누구의 라인이냐로 정의될 문제가 아니죠. 게다가 레이더를 돌려보니 많은 직원들이 따르는 품성까지 겸비한 사람이라면, 그의 결정을 확신했을 겁니다. 기대에 부흥하듯 A는 자신의 역할을 잘 해냈고 본부장으로 승진했습니다.



누구 백 믿고 까부냐는 얘기들 많이 합니다.

그 백이 특정인이면 발끈하고 때론 '내가 누군 줄 알아'하면서 상대를 잡아먹으려 할지 모르지만 그 백이 나의 '실력'과 '품성'이라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삼국지에 자주 등장하듯, 탐나는 사람은 아무리 적의 사람이어도 갖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죠. 전쟁터라면 충정이겠지만, 회사에서는 실력과 품성일 겁니다. 휘둘리지 않는 자신감. 사람들이 모를 것 같은데, 말하지 않아도 다 압니다. 소리 없이 퍼지는 내공이죠. 신통합니다. 10년 넘게 조직 생활을 하며 제가 가장 탐구하고 연구하고 싶은 부분일 정도로요.

임원 000의 조카

성인이 되기 전 맺은 짙은 우정의 고교 동창

힘들게 공부해서 들어간 하늘에 있는 대학

세상 어떤 귀신도 때려잡을 것 같은 바다 군대 등



무엇하나 마다할 이유는 없습니다.

모임을 즐기고 그들과 섞여 세상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렇게 쌓인 친분이 나를 끌고 밀어줘 나쁠 게 없습니다. 사람들이 비벼 내는 열은 독야청청보다 뜨겁습니다. 다만, 그들이 실력과 인성의 자리를 차지하게 내버려 두면 라인의 노예가 되어 방황할 수 있습니다. 어떤 라인의 '나'였다가 그것이 사라지면 '나'도 없게 됩니다. 힘찬 날갯짓을 하는 내 등을 밀어주는 정도면 딱 아름답습니다.

라인력으로 높이 올라가 천수 누리는 사람이 있다면 일반인은 범접할 수 없는 특화된 능력에 박수를 보내야 합니다. 그렇다고 언제든 한 방에 갈 수 있는 끈놀이를 추천할 일은 아닙니다.



승자 게임이므로 결과는 시원하게 받아들입니다.

실력과 품성을 가진 자는 사람들이 다가와 웃음이 난다는 위로와 힘으로 도닥입니다. 막강한 라인에 밀려 고배를 마셔도, 지속 가능한 조직이라면 두 가지를 갖춘 사람을 가만 두지 않습니다. 회사가 제대로 나아가려면 말이죠.



실력자는 금줄이 아니라 썩지 않는 강철 체인을 내놓습니다. 그 고리에 한 번 걸어보려 모인 사람들이 스스로 라인을 형성해 실력자를 창시자로 만듭니다. 품성은 향이 강해 중독됩니다. 한 번 맡으면 쉽게 끊지 못하고 떠나라 해도 금단 현상 때문에 다른 곳에 갈 수 없습니다. 직장 내에서는 그를 따르려는, 직장 밖은 그를 잡으려는 끊임없는 라인의 유혹이 계속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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