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작은 사치
"또 샀어?"
딸아이의 핀잔에 새로 산 도시락 통을 멋쩍게 선반 뒤로 밀어 넣는다.
초중고 내내 급식을 한 덕분에 딸아이 도시락을 싸는 날이라고 해봐야 일 년에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어쩌다 도시락을 싸는 날엔 전날부터 부산을 떨곤 했다. 수능 도시락을 쌀 땐 한 달 전부터 메뉴를 정하고 재료를 사다 모으고, 전 날 준비할 것, 수능 당일 날 준비할 음식을 나눠 굽고 볶고 삶고 더운밥을 담아 문을 닫는 식당 주인의 마음으로 마지막 도시락을 완성했다.
딸아이 도시락을 준비할 이유가 사라진 지금에도 나는 마트에 진열된 도시락 통만 보면 지나치지 못하고, 가끔은 혼자 도시락 통에 곱게 반찬과 밥을 담아 식사를 한다.
"그 애 최고 엽기 도시락이 뭐였는 줄 알아? 동그란 반찬통에 순대를 삥 두르고 가운데 번데기를 넣고 그 위에 케첩을 뿌린 반찬이었다니까."
대학교 구내식당에서 입담 좋은 과 동기 한마디에 주변에 있던 친구들은 웃음보가 터졌지만 나는 차마 웃을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내가 잠깐 집에 들른 오후, 식탁 위에 도시락통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스테인리스 반찬통을 여니 대충 굵게 썬 말라비틀어진 순대 몇 조각과 쌈장이 뒤섞여 있었다. 밥통에 담긴 며칠 지난 밥은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날 이후 동생은 학교에 도시락을 싸 가지 않았다.
엄마의 조울증과 우울증이 왔다 갔다 했던 내 유년 시절, 내 도시락은 유난히 인기가 없었다. 돈가스에 비엔나 소시지에 카레에 부추전에 찍어 먹을 간장 소스까지 정성스럽게 유리병에 담아 오던 반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괜히 주눅이 들었다. 반찬이 모자라 남은 국물에 밥을 비벼 먹는 날에도 내 반찬은 줄어들지 않고 끝까지 남았다. 내가 도시락이 된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루 종일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점심시간에 제일 먼저 동이 날 반찬을 만들어 달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도시락을 그대로 가져온 날에도 엄마는 이유도 묻지 않은 채 싱크대 개수대에 남은 반찬을 그대로 쏟아부었다. 그날 나는 쓰레기통에 처박힌 도시락 같았다.
외출할 때마다 딸아이의 이유식을 통에 담아다니 던 나에게 엄마는 유난스럽다고 했지만, 나는 그런 '유난'이 싫지 않았다. 유치원 소풍을 갔던 딸이 도시락을 남김없이 먹고 돌아오면 안도했고, 야간 자율학습 하던 딸이 식당 밥 대신 도시락이 먹고 싶다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시장으로 달려갔다.
수능이 끝나고, 햇살 좋은 오후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던 딸이 문득 쳐다본다.
"수능 끝나니 속 시원해?"
"당연하지. 근데 엄마 도시락이 가끔 그리워. 내 친구들도 그렇대."
그 말 한마디에 살랑 살랑 마음이 녹는다.
오늘도 나는 나를 위해 정성스럽게 도시락을 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