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국

그 쓸쓸함에 대하여

by 기린엄마

주인이 자리를 비운 집 곳곳에 빈 컵라면 용기들이 나뒹굴었다.

삶의 온기가 빠져나간 자리를 인스턴트 음식들이 고스란히 채우고 있었다.

끼니를 챙겨야 할 자식이 떠난 집에서 어쩌면 봉지 라면을 끓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일요일 아침이면 엄마는 라면을 끓였다.

엄마가 끓인 라면은 항상 국물이 흥건해 라면이라기보다 국에 가까웠다. 전날 메뉴가 무엇이었는지에 따라 라면의 건더기도 맛도 그때 그때 달랐다. 김치가 들어가는 것은 기본이고, 종종 전날 끓인 국이 새로운 메뉴로 탈바꿈했다.

구운 생선 토막에서 떨어져 나온 생선 가시가 면에 딸려 나와 볼멘소리를 하면 엄마의 새된 소리가 허공을 날았다.


나의 유년 시절, 우리 집엔 텔레비전 광고에 나온 새로운 라면이며 3분 요리들이

떨어지는 날이 없었다. 또래 아이 중에 라면을 마다하는 아이는 꽤 드물었는데

내가 그중에 한 명이었다.

나는 라면보다 엄마가 만들어주는 감자 샐러드가 더 좋았다. 삶은 감자와 오이와 당근과 사과를 깍둑 썰어 마요네즈에 버무린 샐러드였는데 엄마의 우울증이 깊어지면서부터 감자샐러드를 맛볼 수 있는 날은 많지 않았다.

엄마의 마음의 병이 짙어지면서 음식은 점점 단순해졌다.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메뉴들은 점점 사라졌고 간단하고 빨리 만들어낼 수 있는 인스턴트 음식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항상 예민하고 뭔가에 날이 서 있거나 화가 나 있는 엄마 앞에서 뭐가 먹고 싶다고 말하기보다 괜찮다고 말하는 날이 더 많았다.

무기력한 엄마가 이불을 박차고 나와 만들 수 있는 음식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도 직감적으로 알았다.

한밤에 라면 광고를 보면서도 라면의 유혹을 느껴본 적은 없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도 라면을 먹었던 기억은 많지 않다.


비 오는 쌀쌀한 오후, 딸아이가 파를 송송 썰고 계란을 넣은 라면을 끓여 왔다.

매콤한 국물이 혀끝에 닿자 따뜻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갔다. 라면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나 새삼 놀라며 허겁지겁 한 그릇을 비웠다.

나에게 라면 냄새는 내 유년시절 쓸쓸한 기억들을 떠오르게 한다.

그 기억들을 지우려 어쩌면 스스로 라면을 거부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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