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

너와 마시는 커피

by 기린엄마

"언니, 나 이제 커피 마신다."

소주도 곱창도 닭발도 다 먹는, 세상에 못 먹는 것 빼고 다 먹는 동생이 유일하게 안 먹는 것은 커피였다.

설날 친정집에 오면 무슨 핑계를 만들어서든 나와 단둘이 집에서 빠져나와 동생이 직행하는

곳은 시골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담벼락.

동생은 담벼락에 서서 줄담배를 피웠고 나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엉거주춤 서서 동생의 넋두리를 들었다.

남편 눈치를 살피느라 느긋하게 담배 한 대 피울 여유도 없이 쫓기듯 담배를 피우는 게 마음에 걸려

동생의 팔을 잡아끌고 해변가에 유일한 카페로 갔다.

그런데 하필 그날 카페는 문을 열지 않았다.

"다음에 아메리카노 사 줄게."

하지만 다음은 없었다.


동생의 장례를 치르고 온 다음 날, 혼자 카페에 갔다.

카페에 잘 가지 않던 내가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불쑥 처음 본 카페에 들어갔다.

"뭘로 주문하시겠어요?"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오지 않을 주인을 위해 주문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 다 식어 가는 동안 '만약에'로 시작하는 수없이 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떠다녔다.

그 수많은 '만약에' 중엔 '만약에 그날 카페에서 나와 동생이 함께 아메리카노를 마셨다면 지금 동생은 내 곁에 있을까?'였다.

술을 좋아하고 담배를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하던 동생이 한 뼘 되는 납골당 유리 속에 갇혀 있는 건 너무 가혹했다.

집에 가는 길 가게에 들러 사진 액자 두 개를 샀다. 동생과 내가 함께 찍은 오래전 빛바랜 사진을

액자에 끼워 넣어 책꽂이에 올려 두고 나니 동생을 집에 데려온 것 같았다.

신혼여행 때 빼고 외국 여행을 해 본 적이 없는 동생과 꼭 한 번 같이 해외여행을 가자고 약속했는데, 결국 동생은 혼자 멀리 떠났고, 나만 혼자 남았다.

동생이 떠난 후, 일 때문에 스웨덴에 갈 기회가 생겼다.

약속이 취소되고 시간이 비어 지하철을 타고 스톡홀름 시내를 돌아다니던 나는 스코그쉬르고가든이라는 이름에 이끌려 무작정 지하철에서 내렸다. 언덕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정원은 평화롭고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꽃과 풀들은 화사했다. 묘지라는 타이틀만 없었다면 수목원 정도로 생각했을 만큼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여기 누워 있는 사람들은 일 년 내내 자연과 친구 하며 자유롭게 거닐겠구나 생각하는 순간, 동생이 떠올랐다.

스웨덴을 떠나기 전날, 다시 묘지에 들러 이름 없는 사람들의 무덤에 들러 동생에게 쓴 편지와 강연비 대신 받은 촛대를 내려놓았다. 그날 나는 그곳에 동생을 놓고 왔다.

그때 이후 나는 내가 가는 외국의 도시마다 동생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남극 바다에서, 리스본의 성당에서, 핀란드의 호수에서, 파리의 공원에서, 브뤼허 운하에서 나는 동생과 함께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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