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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Mar 27. 2020

아빠, 우리의 여행이 예상대로 흘러갈까요?

[에세이] 아빠와 딸의 네팔 여행기(4)

“우와”

“와, 전부 다 보이네.”


여행이 어떻게 예상한 대로만 흘러갈까? 택시를 타고 스와얌부나트 사원으로 향하는 언덕에 들어서자 카트만두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상상 못 한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고 아빠와 딸이 동시에 감탄사가 터뜨린다. 기사 아저씨가 솔직한 반응을 보고 작게 소리 내서 웃더니 목적지를 간단하게 소개한다. 스와얌부나트 사원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사원이며 많은 원숭이를 볼 수 있어서 한국에서는 '원숭이 사원'으로 불린다.


기사님이 환하게 웃으며 입구에서 5분만 걸어가면 된다고 했는데, 언덕 꼭대기에 있다는 건 쏙 빼고 말씀하셨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의 개수에 놀라고 가파른 경사에 한 번 더 놀란다. 계단을 올라갈수록 작은 불상과 돌 탑이 많아진다. 명물이라는 원숭이는 정작 두세 마리뿐이고 제 할 일 하느라 인간에겐 관심이 없다.



사원의 꼭대기에 오르자 전보다 훨씬 넓게 펼쳐진 카트만두가 보인다. 중앙에 있는 거대한 순백의 탑에 오색 깃발이 걸려 나부낀다. 울타리를 빙 둘러 에워싼 많은 관광객이 풍경을 바라보거나 인증샷을 남긴다. 이곳의 필수 코스라는 탑돌이를 하고 사진을 몇 장 찍고 내려오니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아직까진 모든 게 순조롭다. 딸의 여행 목표는 아빠의 실패 없는 여행이었다. 아빠에게 한정된 시간 동안 제일 유명한 곳을 보여주고 가장 맛있다는 식당에 가고 싶었다. 미리 준비한 덕분에 세계 최초의 불교 사원도 보고 계획에 큰 문제없이 카트만두를 둘러보았다.


“우리 숙소 들어오는 길에 거기, 괜찮아 보이지 않아?”


저녁 먹기 전 아빠가 무난한 여행에 금 가는 소리를 한다. 저녁은 처음으로 네팔 전통 음식으로 먹을 계획이었다. 향신료가 아빠 입맛에 안 맞을까 봐 한국어 위주로 꼼꼼하게 후기를 읽고 지도 위에 식당을 한가득 표시해왔다. 그런데 복잡한 관광지에 피곤한 아빠에게 숙소에서 약 3분 거리의 낯선 식당이 눈에 띈 것이다.


“아빠 여기 주변 식당 중엔 제가 찾았던 식당이 없어요. 괜찮아요?

내가 안 정했어요. 나중에 다른 말하기 없기!”

“그래…. 일단 앞에 가서 보고…. 뭐… 아님 다른 데 가고….”


아빠 말처럼 가게 외관은 나쁘지 않았다. 문 앞에 놓인 메뉴판을 펼치기 무섭게 주인아저씨가 밖으로 나와 들어오라고 친절하게 웃으며 손짓한다. 홀린 듯 가게 내부에 들어서자 노란 벽 위로 A4용지 크기의 헬로키티 액자 세 개가 손님을 맞이한다. 우리가 첫 손님인 듯 가게 천장의 조명을 켜고 자주색 식탁보가 깔린 자리에 안내해준다. 인테리어에 공들인 흔적을 보자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일단 음식을 주문했다. 네팔의 가정식 백반인 ‘달밧’과 만두 ‘모모’, 네팔과 지형적으로 가까운 인도의 ‘탄두리 치킨’도 시켰다. 아빠를 위해 주문한 맥주가 거의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주문한 음식이 나오지 않는다. 주인집 아들처럼 생긴 웨이터만 식탁 주변을 서성인다. 사용한 휴지를 가져가고 조명을 만지작거리는 그의 행동에 마음이 불편하고 어색하다.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일단 생김새는 합격이다. 배고픔과 기다림에 지친 아빠의 눈빛이 경계심으로 바뀌며 조심스럽게 맛을 본다. 처음에 만두 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거릴 땐 조금 짜지만 나쁘지 않았다. ‘달밧’에 나온 커리를 하나씩 먹어볼수록 점점 강한 짠맛이 느껴진다. 결정타는 마지막으로 나온 '탄두리 치킨'이다. 닭이 소금으로 목욕한 듯 속살까지 입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짰다. 우리의 첫 네팔 음식 도전은 처참히 실패했다.


도저히 맛있어 보이게 찍을 수 없는 조명이었습니다.

어이없는 음식의 맛에 자꾸 웃음이 나왔다. 애초부터 한식 마니아면서 말로는 못 먹는 향신료 없이 다 좋아한다고 자신하던 아빠였다. 게다가 직접 고른 식당이라서 먹기 싫은 표정으로 억지로 음식을 입에 넣는다. 장난기가 발동해서 얄미운 표정으로 아빠를 놀리기 시작한다.


“아빠가 골랐으니까 뭐라고 하기 없어요!

저는 여기 리뷰 없는 식당이라고 미리 말했는데. 맛있는 식당도 알아놨는데~”

“아니야~ 아빠가 골랐으니까 더 말하는 거지! 짜! 짜도 너무 짜.”

“그럼 이거 먹고 앞으로 네팔 음식 안 먹겠다고 하기 없어요.”

“어…. 근데 네팔 음식은 원래 이렇게 짠 거야?”

“저도 처음 먹는데 어떻게 알아요?!”


숙소에서도 한참 동안 둘이 함께 깔깔거리며 웃었다. 엄마와 통화하며 일름보처럼 아빠가 고른 식당 음식이 엄청나게 짰다고 나불거린다. 옆에 있던 아빠가 억울한 듯 외관은 좋아 보였다고 변명한다.


계획적인 딸의 유일한 변수는 즉흥적인 아빠다. 자유로운 성격에 맞춰 여유로운 일정을 준비했는데, 함께 다니다 보면 그마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빠진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아빠가 옳았다. 한국으로 돌아가 네팔을 떠올리면 오래되고 유명한 사원이 아니라 한바탕 웃고 떠들던 저녁이 먼저 떠오를 테니까. 아빠와의 여행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더 즐거웠다.


+) 아빠의 말

장난꾸러기 딸에 대한 아빠의 실제 반응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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