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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Mar 13. 2020

아빠, 카트만두 아침 시장은 어떤 분위기였어요?

[에세이] 아빠와 딸의 네팔 여행기(2)

"아빠, 들어갈까? 말까?"

"마음대로 해. 들어가 보든가. 저거 먹고 싶은 거야?"

“으… 어떡하지? 괜찮을까?”


아빠와 딸은 카트만두의 작은 빵 가게 앞에 서있다. 세 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두 명의 아저씨가 선 채로 빵을 먹고 있다. 갓 튀겨서 먹음직스러운 빵이 창가에 가지런히 놓여있고 고소한 기름 냄새가 발길을 붙잡는다. 그런데 쉽사리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주저한다. 조금 전 구경한 시장의 기세에 단단히 눌렸기 때문이다.


네팔 카트만두의 첫날 아침, 아싼 시장을 구경했다.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을 보니 아침은 카트만두나 서울이나 바쁜 모양이다. 이곳에선 살아있지 않은 것조차 역동적인 생명력을 뿜어낸다. 멀찍이 떨어져 네팔의 아침 풍경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카트만두 아침 시장은 뜨겁지만 따뜻하지 않고, 익숙하지만 다가갈 수 없다.



입구부터 붐비는 인파에 앞으로 떠밀려 걷는다.  돗자리에서 고무줄 바지를 파는 노점상이 제일 먼저 보인다. 이곳 사람들에겐 이미 가격이 정해져 있는지 가격표를 찾을 수 없다. 어떤 청년이 나무로 만든 전통 바구니(도코)에 싱싱한 과일이 가득 담은 채 옆을 지나간다. 몇몇 아주머니들은 길바닥에 불을 피우고 즉석에서 튀긴 빵을 밀크티에 찍어 먹는다. 자기들끼리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는지 별안간 웃음을 터뜨린다.


시장 내부에 있는 가게들도 범상치 않다. 역사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오래된 건축물에 네팔 최신 유행 스타일 옷들이 촘촘하게 걸려있다. 전통 문양이 섬세하게 새겨진 나무 기둥은 먼지가 쌓여 연회색을 띠고, 이웃한 건물의 2층 창문은 빛 한 줄기 들어갈 틈 없는 벽이 되었다. 아무렇게 뒤엉킨 전깃줄이 건물을 전봇대 삼아 매달렸고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구름 모양으로 뭉친다.


여러 갈레의 길이 합쳐지는 작은 광장에는 향을 피우는 탑이 있다.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사람들 사이로 자전거 인력거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오토바이가 떠들썩하게 경적을 울리고 유유히 골목길을 빠져나간다. 물건을 느라 큰 소리가 오가니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자욱한 먼지와 매연 위로 짙은 향 냄새가 덧대진다. 탑 주변을 둘러싸고 바닥에 앉은 상인들은 과일과 배추, 무, 두부 등의 식재료를 팔고 있다. 한국의 재래시장에서 볼 법한 친근한 물건이다.


아침 9시가 되자 경직된 표정의 아주머니가 호루라기를 분다. 그녀는 검정 모자, 무전기가 들어있는 조끼, 주머니 달린 조거 팬츠를 입고 위풍당당하게 시장 골목을 거닌다.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상인들이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어느 가게 주인은 빗자루로 떨어진 배춧잎을 쓸어 모은다. 지나가는 행인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자연스러움에 모래먼지가 안면을 강타하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소란스럽고 격렬한 움직임과 달리 화내거나 윽박지르는 사람은 찾을 수 없다. 치열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주어진 일을 할 뿐이다.


바글바글한 사람을 피해 들어간 한적한 골목길에 작은 빵집이 있다. 그 순간 시장에서 네팔 사람들이 아침으로 즐겨 먹던 빵이 떠올랐다. 음식에 대한 호기심과 현지의 낯선 분위기 사이에 망설이다가 용기를 냈다. 소심하게 웃으면서 세모난 빵과 둥근 고리 모양 빵을 가리킨다. 먼저 계시던 손님의 강력 추천으로 네팔식 앙금도 살짝 맛본다. 투명한 녹색 빛의 앙금은 고소하고 달콤하다. 붕어빵처럼 종이봉투에 담긴 빵을 받고 30루피를 냈다. 우리나라 돈으로 300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다시 한번 놀란다.



삼각형 모양의 빵엔 매운 카레가 들어있고, 둥근 고리 모양 빵은 생김새처럼 설탕 묻은 도넛과 비슷하다. 한 입 베어 물은 아빠가 매콤한 맛이 나서 좋다며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먹으면서도 휴대전화를 만지더니 열띤 목소리로 시장에서 찍은 사진을 자랑한다.


“이야, 시장 정말 엄청나더라.”

“오우, 이거 봐. 자전거랑 바구니에 과일 싣고 파는 거. TV에서, 막 다큐멘터리에서만 보던 건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시장 구경은 쇼핑을 좋아하는 아빠를 위해  딸이 치밀하게 준비한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과 국내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전통 시장은 빠지지 않고 다녔다. 일단 계획 없이 돌아다니다가 유명하다는 음식을 먹고 제철인 과일과 특산물을 가득 실어 집으로 돌아왔다. 반드시 사지 않더라도 새롭고 다양한 물건 구경을 즐긴다. 자라면서 수십 년간 지켜본 아빠의 한결같고 확고한 취향이다. 네팔 전통 시장을 찾기 위해 여러 사이트를 오가며 정보를 찾아보고 시간대도 일부러 맞춰 준비했다. 아빠가 말한 교육방송 다큐멘터리 영상은 이미 출발 전에 확인했다.


딸의 치열한 두뇌싸움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더 즐거워하는 모습에 어깨가 으쓱하다. 자꾸만 자랑하고 싶은 어린 마음이 샘솟는다. 눈을 찡긋하며 대답하고 시장에서 사 온 빵을 입 속으로 집어넣는다.


“아빠, 제가 다 알고 준비한 거라니까요?”


+아빠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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