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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Mar 06. 2020

아빠, 우리 둘이서 여행 잘할 수 있을까요?

[에세이] 아빠와 딸의 네팔 여행기(1)

“여행은 이동도 여행이야.”


언제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언제 도착하냐며 투정 섞인 한숨을 쉬는 딸에게 아빠는 되레 명언을 날린다. 아빠와 딸은 히말라야 트레킹을 위해서 단둘이 비행기를 탔다. 네팔 수도인 카트만두까지 직항으로 8시간이 걸린다. 안전하게 이륙했다는 음성과 함께 맛있는 음식 냄새가 풍긴다. 기내식을 받은 아빠가 유학 중인 고모에게 갔던 20년 산 옛날이야기를 곁들인다.


“아빠 호주 갈 땐 비행기에서 시바스 리갈 줬는데.”

“어휴. 아빠, 그건 너무 옛날이잖아.”


딸은 양념처럼 한마디 거든다. 티격태격 나누는 대화는 평소와 같지만, 후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처럼 유독 달다.


그리고 시간이 멈춘 것 같다. 기내식을 먹었고 영화도 실컷 봤는데, 아직 절반도 가지 못했다. 변하는 구름 모양만 비행기가 움직이고 있음을 알려준다. 몸을 배배 꼬고 자세를 바르게 고쳐봐도 여전히 불편하다. 신호 오류로 위치 표시기는 작동하지 않고 아빠와 딸을 포함해 낮 비행기를 탄 승객들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화장실만 오간다. 어른들도 답답해서 몸을 꼼지락 움직이는데 아이들은 오죽했을까. 앞자리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답답함에 시선을 돌린 창 밖에서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했다. 비행기 아래를 빼곡히 채운 구름이 산호색으로 물든다. 힘든 비행의 보상이라는 듯 둥근 태양이 사방으로 주황색 아우라를 내뿜는다. 아빠와 딸의 얼굴에 해맑은 미소가 번진다. 아빠는 호기심 담은 큰 눈을 고정한 채 작게 난 창문을 뚫어지게 본다.


“지금쯤 어느 하늘에 떠 있을까?”


이동은 곧 여행이라는 아빠에게 신호를 모르는 위치 표시기는 다홍빛 낭만이 된다. 평소엔 오래 앉아있으며 허리가 아프다더니 오늘은 내색 없이 연신 싱글벙글하다. 딸은 이제야 본격적으로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기분이 든다. 아빠와 딸의 벅찬 설렘을 모르는 노을이 얄궂게 모습을 감춘다.


컴컴한 밤이 되어서야 카트만두 트리부반 공항에 도착했다. 아빠의 가이드로서 정신을 똑바로 차릴 시간이었다. 우선 비자 비용을 계산한다. 네팔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관광비자가 필요하다. 한국에서 미리 받을 수도 있지만, 대사관에 가야 해서 번거롭고 도착해서 받는 비자가 더 저렴하다. 게다가 인터넷으로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면 공항에서 보내는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다. 이미 입국에 필요한 순서와 공항 시설 위치까지 파악해둔 상태라서 환전까지 순조로웠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입국심사대엔 얼핏 보아도 수십 명이 기다리는데, 직원은 고작 세 명이었다. 줄을 줄어들 생각이 없고 중간에 앉아있던 직원이 자리를 비워서 거의 30분 넘게 기다렸다. 딸의 순서가 되자 최대한 양쪽 입꼬리를 올려 입국심사용 미소를 짓는다. 먼저 나간 아빠에겐 어떤 질문도 하지 않던 공항 직원이 유독 집요하게 묻는다.


“비행기 티켓을 보여줘.”

“여기에서 얼마나 있을 거야?”

“이름은 어떻게 읽어?”

“나이는?”

“한국에서 왔네?”

“비행기 티켓 좀 다시 보여줘.”


도착한 지 한 시간 반 만에 출국 심사를 모두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 너덜너덜해진 정신을 차릴 틈은 없다. 출구에서 택시를 외치며 아저씨들이 다가오고 길 건너엔 수 십 명의 사람들이 보인다. 다음 과제는 인파를 뚫고 한국에서 예약한 호텔 픽업 기사님 찾기다. 이름 적힌 종이를 얼굴 앞으로 내미는 픽업 기사님들의 뜨거운 시선을 애써 피하며 하나씩 글씨를 읽는다. 한 명, 두 명, 세 명, 차례대로 이름표를 지나치고 길게 늘어선 줄의 끝 무렵 영어로 적힌 이름을 찾았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으앗!’하고 소리를 지르자 주변 기사님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네팔의 도로는 퇴근 시간과 맞물려 주차장이 된 도로에 많은 차와 오토바이가 한 뼘 거리로 빼곡하다. 바퀴 달린 모든 것이 너나 할 것 없이 경적 소리로 제 위치를 알린다. 도로 옆 야시장엔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바닥엔 옷 가지들과 각종 생활 용품이 널브러져 있다. 멈춰 선 차에 멍하니 앉아있거나 도로에 바짝 붙어 선 이들의 까만 눈동자와 마주친다. 아무 감정 없는 눈빛에 솜털이 바짝 서는 기분을 느끼며 어리바리 여행자는 황급히 고개를 돌린다.


호텔 근처에 가게들은 밤 8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대부분 문을 닫았다. 작은 골목길엔 가로등이 없어서 어두웠고 알싸한 매연과 먼지가 뒤섞여 코를 찌른다. 낯선 감각에 주먹을 쥐고 바짝 힘을 준다. 4층 정도 높이의 낡고 오래된 건물에 간판이 오밀조밀 붙어있다. 강렬하게 내뿜는 빛이 한국의 뒷골목을 떠오르게 하지만, 낯설게 적힌 언어가 묘한 이질감을 만든다. 호텔 침대에 누운 아빠가 말한다.


“오늘은 안 씻고 그냥 잘래. 아빠는 내일 아침에 씻을 거야.”


아침 일찍 집을 떠나 비행기를 타고 밥 한 끼 먹었을 뿐인데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씻고 나와서 침대 맡에 덩그러니 앉아 입으로 큰 숨을 들이마시고 소리 나게 뱉는다. 귀에 맴돌던 경적 소리 대신 아빠의 코 고는 소리만 들린다. 잠든 아빠를 물끄러미 바라보니 긴장이 풀리고 졸음이 밀려온다. 꿈뻑이는 눈꺼풀이 무거운 이유는 피로일까? 아니면 여행에 대한 걱정일까? 우리는 여행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홀로 의문에 잠긴 네팔에서의 첫날밤이 저물어갔다.


+) 아빠의 말

딸이 직접 만든 아빠와의 네팔 여행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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