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아빠와 딸의 네팔 여행기 : 프롤로그
“아빠는 여행 가고 싶은 곳 없어요? 해외여행!”
한참 뜸을 들이던 아빠가 대답했다.
“글쎄… 뭐… 딱히…….”
길게 늘어진 말꼬리와 마주치지 못하는 눈. 거짓말이 틀림없다. 우리가 대화를 나눈 장소이자 우리 집 거실의 풍경은 언제나 똑같다. 아빠는 퇴근 후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신다. 일일드라마가 끝나면 지구촌 방방곡곡을 여행한다는 교양 프로그램과 한국의 숨은 비경을 찾아 떠나는 또 다른 여행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텔레비전 대신 각자 휴대전화만 보는 자식들에게 말을 건네신다.
“저기 가봤다고 했었나? 진짜 저래?”
“이야, 저기 봐. 엄청나다. 하하하.”
그러다가 잠이 쏟아지면 꾸벅꾸벅 졸다가 주무시러 방으로 가시는 게 아빠의 저녁 일상이다. 엄마 말로는 일요일 아침마다 국내외 명산을 담은 방송을 즐겨 보신다는데 이래도 정말 떠나고 싶은 곳이 없을까? 아님 어린 딸은 모를 무게가 아빠를 떠나지 못하게 할까?
시간을 과거로 돌려서 딸의 나이와 같은 스물다섯의 아빠를 상상한다. 젊은 시절 아빠 사진은 대부분 산이 배경이다. 바위에 올라가 한껏 멋 부린 포즈를 취하거나 무릎까지 눈이 쌓인 설산에 서 있는 앳된 아빠를 사진으로 볼 때마다 신기하다. 아빠에겐 마음 맞는 친구들과 우리나라 구석구석 다니며 등산과 암벽 등반을 연습하는 일이 취미였고 일상이었다. 심지어 지리산 노고단 가는 길에서 생애 처음 등산한 엄마를 만나 결혼했으니, 아빠의 젊음은 한여름 산처럼 푸르렀다.
산을 사랑한 아빠 덕분에 갓난아이 때부터 조기교육으로 등산을 배웠다. 7살 때 설악산 흔들바위에 겁 없이 올라갔고, 주말이면 서울 근교의 불암산, 북한산부터 해남 땅끝마을까지 가지 않은 산이 없었다. 가파른 절벽을 오르는 길에서 잡아주던 아빠의 손은 항상 크고 든든했다. 초등학생이 되자 암벽등반을 배우기 시작했다. 사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직접 올라가는 날 보다 아빠가 등 뒤에서 캥거루처럼 감싸 앉고 밀어준 날이 더 많았다.
그래서 한국의 원정대가 히말라야 등정에 성공했다는 뉴스에 얼마나 기뻐했는지, 아빠도 예전에 히말라야에 가보는 게 꿈이라는 말을, 머리로는 정확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기억한다. 집안 사정상 어렸을 때부터 돈을 벌어야 했고 가정을 이룬 후엔 아빠이기 때문에 ‘언젠가’라는 단어로 꿈을 줄곤 미뤄야 했다. 이제 함께 산을 오르던 친구들은 삐거덕거리는 몸을 고치러 병원신세를 지는 나이가 되었다. 아빠의 젊음을 돌려줄 수 없지만 꿈은 돌려줄 수 있지 않을까? 쑥스러워 우물쭈물하며 부모님께 말했다.
“아빠랑 네팔에 갈까 하는데…… 히말라야 트레킹을 해보려고…….”
마침 여행을 목적으로 모아둔 돈이 있었다. 대학교 졸업 전 돈을 모아 어딘가로 떠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참이었다. 막상 돈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가고 싶은 장소가 없었다. 여행지를 찾다가 그만두길 반복하던 중 아빠의 저녁 모습이 눈에 밟혔다.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아빠랑 단둘이 네팔로 떠날 수 있을까? 앞으로 취업해서 번 돈으로 아빠를 보내 드릴 수 있어도 같이 갈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우리에게 아직 무수한 시간이 남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이제 훌쩍 커버린 딸이 아빠의 손을 잡고 오래된 꿈을 이루자며 히말라야 산맥을 품은 나라, 네팔로 향한다.
아빠와 딸의 네팔 여행기를 영상으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