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de in x Apr 17. 2020

아빠랑 딸이 떠나는 여행은 원래 어려울까?

[에세이] 아빠와 딸의 네팔 여행기(6)

“어? 이상하다. 여기가 맞는데?”

“지도 잘 봐. 여기라고 나와? 더 가서 아니야? 아니면 저쪽이거나.”


지도 상 엔 분명히 우리가 선 이곳이 맞는데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서부터 시작한 걱정이 결국 현실이 되었다. 트레킹을 도와줄 가이드와 포터를 구하기 위해 여행사를 찾아갔다. 한국어로 상담이 가능한 곳이라 꼭 거기에 가야 하는데, 눈앞에는 생소한 음식점만 덩그러니 보인다. 예상치 못한 위기에 여행과 기분이 모두 꼬이기 시작한다.



아빠와의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가장 고민되는 부분은 가이드와 포터였다. 가이드는 길을 안내하고 숙소 예약, 식사, 안전에 대한 책임을 진다. 가이드는 네팔에서 정식으로 자격시험을 거쳐야 해서 대체로 믿을 수 있는 전문가이다. 포터는 짐을 대신 들어주는 직업이다. 짐의 무게가 가벼우면 걷기도 훨씬 편하고 온전히 히말라야를 즐길 수 있다. 가이드와 포터 중 필요에 따라 한 사람만 고용할 수도 있다. 트레킹은 아빠가 오랫동안 꿈꿔 온 여행이기에 모든 선택권을 넘겼다.


처음엔 3~4일 정도 간단하게 푼힐 코스를 걷기로 했다. 높이가 3,200m인 푼힐 전망대로 가는 길이며, 고산병 위험이 적고 기간이 짧아서 비교적 쉬운 코스로 알려져 있다. 찾아보니 홀로 트레킹 하는 사람도 많은 편이라서 가이드 없이 가는 방법을 골랐다.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아빠와 둘이서 오붓하게 걸으며 추억을 쌓고 싶었다.


그런데 여행의 키를 잡은 아빠가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렸다. 네팔로 떠나기 10일 전, 급하게 ABC 코스로 가길 원했다. ABC코스는 4,200m에 자리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길이다. 산을 오르는 트레커에게 전문 산악인이 등정을 시작하는 장소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산이 높은 만큼 고산병에 걸리기 쉽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빠의 나이와 엄마의 걱정을 생각해서 안전을 위한 가이드와 포터를 구하기로 했다.


포터와 가이드를 구하는 방법은 간략하게 두 가지다. 한국에서 미리 여행사를 통하거나 네팔 포카라에서 한 집 걸러 한 집 꼴로 있는 여행사에 직접 가서 구할 수 있다. 급하게 여러 곳을 알아보던 중 갑작스러운 눈사태로 ABC 코스가 폐쇄되었다. 가이드는 어떤 방식으로 구할지 고민하기 전에 트레킹 가능 여부조차 미지수였다. 일단 예약하지 않고 현지에서 상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래도 영어가 서툰 아빠가 상담받을 수 있도록 한국어가 가능한 여행사를 미리 조사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포카라까지 왔는데, 이젠 여행사가 사라졌다.


“그럼, 여기 여행사 많은데 아무 데나 들어가 봐. 저기 좋아 보이네.”

“원래 한국어 가능한 곳으로 알아본 거라니까요?”

“아니 뭐… 가격만 알아보는 거지. 저기 입간판에 적힌 게 가격인가?”


틀어진 계획에 당황해서 머리가 하얘졌고 아빠는 여행사가 보일 때마다 재촉했다. 어쩔 수 없이 바로 앞 가게에 들어가 멍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거리며 정말 가격만 물었다. 아빠가 이번엔 희망 사항을 넌지시 전달한다.


“한국인 가이드는 없대? 한국어 가능한 사람으로 좀 알아봐.”

“아빠, 지금 가이드도 어떻게 구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한국어 되는 사람을 어떻게 구해요?”



일 보 후퇴. 일단 숙소로 돌아왔다. 숨을 고르고 차분히 한국에서 준비했던 코스와 꼭 물어야 할 질문들을 다시 정리했다. ABC 코스 대신 5박 6일로 푼힐 코스와 전망이 좋기로 소문난 오스트레일리아 캠프 코스를 합칠 생각이었다. 아까 길에서 물어본 가격과 비교해 예산을 다시 계산하고, 인터넷 검색으로 한국어 상담이 가능하다는 다른 여행사를 어렵사리 찾았다.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처럼 비장하게 여행사로 출발했다.


도착한 여행사엔 영어가 가능한 직원들만 있었다. 영어 실력이 뛰어나지 않지만, 절실한 마음에 불가능은 없다. 중간에서 번역가 역할을 한다. 직원이 영어로 하면 해석해서 아빠에게 전달하고 아빠의 질문을 직원에게 전달한다. 30분 넘게 반복하다가 조심스럽게 한국인 가이드가 있는지 물었다. 갑자기 직원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 한 통 하니 한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 한국어에 아주 능숙한 사장님이 도착했다.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사장님은 같은 이야기를 한국어로 전부 처음부터 다시 하고 아빠는 마치 처음 듣는 내용인 것처럼 질문한다. 이번엔 투명인간 상태로 가만히 앉아 빨리 감기 없는 시간을 고스란히 견뎌냈다. 마침내 푼힐과 오스트레일리아 캠프를 가는 코스로 결정하고 현지 가이드의 일정도 확정되었다. 사장님이 오는 사이에 직원에게 영어로 흥정하며 페러글라이딩까지 예약했으니 정말 최선을 다했다.


한참 만에 거리로 나왔다. 집중하면 입술을 깨무는 습관이 있다. 건조한 상태로 말을 너무 많이 한 탓에 입술이 말라 비틀고 부르텄다. 가이드를 구해서 신난 아빠는 옆에서 계속 말을 거는데, 긴장이 풀리고 모든 정신을 쏟은 탓에 피곤이 몰려왔다. 숙소 침대에 쭈그려 누워 눈을 감았다. 아빠는 심심했는지 창문 밖 풍경을 보더니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말소리는 지긋지긋해서 그만 듣고 싶은데, 눈 뜰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하루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오는 비행기를 탔고 새로운 숙소에 체크인했으며 가이드와 포터를 구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카트만두 식당에서 크게 실망한 후 쉽게 저녁 메뉴를 정하지 못하는 아빠로 인해 포카라 거리를 한참이나 걸었다. 음식을 주문하고 택시를 타는 사소한 순간들 역시 가이드로서 딸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저녁을 먹은 후 숙소로 돌아온 아빠가 저녁 8시에 잠들 준비를 하며 눕길래 물었다.



“벌써 자요?”

“너는 아까 잤잖아.”


서운하다. 아니면 서러운가. 바짝 마른 마음이 갈라진 입술처럼 따갑다. 아빠랑 단둘이 여행하면 원래 이렇게 힘든 걸까? 배가 고픈지, 음식은 입에 맞는지 눈치 보고 표정을 하나하나 살피는 게 어려웠다. 숙소가 달라질 때마다 불만인 듯 아닌 듯 내뱉는 평가에 마음이 불편하다. 아무리 열심히 안내해도 무뚝뚝한 반응을 보이는 순간엔 맥이 풀린다. 아빠는 왜 여행을 위한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 걸까?


딸의 하루 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빠가 자는 동안 트레킹 일정을 확실히 정하지 못해 미뤄둔 숙소 예약을 해야 했다. 아빠는 아주 깨끗하고 편한 숙소를 원하는데, 도저히 계획한 예산 안에서 기대를 충족시킬 장소를 찾을 수 없었다. 아빠의 오랜 꿈을 완벽하게 이뤄주고 싶은 욕심만 넘치고 여행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아빠의 시간을 책임진다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일 줄이야. 한없이 모자란 주제에 누구의 꿈을 대신 이뤄주려 했을까? 스스로가 한심해서 견딜 수 없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아까 잤다'는 말이 이 정도로 서운한 말은 아니다. 아빠라면 준비한 대로 풀리지 않은 속상함을 먼저 알아주길 바랐다. 가족이니까 딸의 시무룩한 표정을 보고 같이 고민해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빠는 딸의 말하지 않은 섭섭함과 고민을 모른다. 여행이 피곤해서 일찍 자고 싶었을 뿐이다. 별 거 아닌 말에 짜증을 내고 예민하게 구는 영락없는 철부지가 되었다. 잔뜩 화가 난 채 씩씩거리며 잠든 아빠의 얼굴을 바라본다.


포카라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밤은 살을 에는 추위가 몰려왔다.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고 방 안에서 하얀 입김이 나온다. 한기가 마음속을 비집고 뾰족한 고드름을 만든다.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처연하게 떨어지길 기다린다. 떨어지면 산산조각 부서질 연약한 존재인 주제에. 머리가 복잡하다. 여행은 버겁고 엄마가 보고 싶다.


+) 아빠의 말

우여곡절 많았던 네팔 여행 영상



이전 06화 '아빠'라는 이름 뒤에 어떤 모습이 가려져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