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글라이딩을 위해 아빠를 무수히 협박하고 설득했는데 한 방에 수포로 돌아가게 생겼다. 야외와 연결된 호텔 복도로 나오니 온통 회색이다. 어제는 또렷하게 보이던 산이 오늘은 안갯속에 가려져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팅팅 부은 눈을 이리저리 돌려봐도 앞 건물만 간신히 보인다. 드라이아이스 나오는 무대 같아서 슬픈 발라드 가수가 등장해 지금 심경을 대변한 노래라도 불러줄 기세다.
네팔 포카라는 스위스 인터라켄, 터키의 패티예와 함께 패러글라이딩 3대 명소로 꼽힌다. 가격도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저렴한 편이라 처음 도전하기에 적합하다. 원래 활동적인 경험을 좋아하는데 세계 3대 명소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빠, 패러글라이딩할 거죠?”
“…. 그거 위험한 거 아니야…?”
“아니에요! 사람들 엄청 많이 뛰는데!”
직접적으로 싫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아빠는 은근히 대답을 피했다. 아빠에게 열 번쯤 더 묻고 나서야 같이 하기로 약속을 받았다. 아홉 시로 정했던 픽업 시간이 열 시 반으로 바뀌었고 불안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잠시 호텔 주변을 산책하고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로 몸을 녹인다. 산 위는 여전히 안개가 자욱하지만 숙소 근처는 서서히 안개가 걷힌다.
패러글라이딩 장소인 사랑코트는 포카라 시내에서 지프를 타고 40분 정도 걸린다. 네팔의 도로는 언제나 상상 그 이상을 경험할 수 있다. 네팔 사람들은 비포장도로를 전속력으로 달려서, 차 내부 손잡이를 잡아도 몸 전체가 흔들린다. 멀리서 보면 흥에 겨워 춤추는 것처럼 사람들과 이리저리 어깨를 부딪치고 위아래로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산 중턱에서 기다리던 직원은 앉을자리가 부족해서 차 뒷 문에 걸린 스페어타이어에 매달려 이동한다.
산 정상은 말썽쟁이 날씨 탓에 뛰지 못한 사람들로 붐빈다. 주차장도 만석이고 화장실은 줄을 서서 기다린다. 가이드를 따라 희뿌연 연기 속으로 들어간다. 올라오는 내내 미소만 짓던 과묵한 가이드가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말한다.
“우리에게 시간은 많아. 천천히 기다려 보자.”
저절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눈앞의 안개가 여기 있는 사람들쯤은 전부 잡아먹을 만큼 거대해서 싸울 의지가 사라졌을까? 어찌할 방법이 없는 일에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가이드의 말처럼 기다려서 패러글라이딩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취소되더라도 크게 속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더는 지체할 수 없는지 앞에 있던 누군가가 회색 안갯속으로 몸을 던진다. 가이드가 손바닥을 아래로 누르며 진정하라는 손짓을 한다.
“점점 안개가 산을 타고 올라오고 있어. 조금만 더 기다리자. 천천히. 시간은 많아”
잠시 후, 하얗게 막혔던 벽에 틈이 생기고 그 사이로 총천연색이 비집고 새어 나온다. 마음 졸이던 사람들이 앞다투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대부분은 몇 발자국 걷지 않아서 바람을 타고 달리지만, 어떤 사람은 앞으로 고꾸라져 그와 연결된 패러글라이딩이 펄럭이다가 중심을 잃은 채 사람들을 덮친다. 긴 행렬은 계속 이어지고, 줄줄이 소시지처럼 날개를 펼치고 떠난다. 아빠와 딸도 안전벨트가 될 끈을 입고 헬멧을 쓴다. 차례가 점차 다가오고 가이드는 우리가 뛸 패러글라이딩을 펼쳐 정리한다. 약간의 긴장과 기대감에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 떨려요?”
“아니 뭐, 다들 동네 뒷산 내려가듯이 뛰니까 별거 아닌 것 같아.”
가이드가 오라며 손짓한다. 아빠보다 먼저 뛰게 되었다.
“뛰라는 말을 멈출 때까지 앉으면 안 돼.”
후- 심호흡을 하고 섰다. 하나, 둘, 셋, 발을 굴렀다. 몇 발자국 뛰지 않았는데 금세 몸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보이지 않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더니 곧 발끝에 아무것도 닿지 않는다. 떠 있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공허한 촉감과 뻥 뚫린 풍경이 상쾌하다. 몸이 점점 더 멀리 앞으로 나아간다. 끝이 보이지 않는 큰 강이 흐르고 듬성듬성 있는 지붕이 초록 산등성이에 알알이 박혀있다. 땅과 하늘 사이를 자유롭게 오르내리며 공중에 발을 휘적휘적 저어 본다. 가이드가 몸을 뱅그르르 돌리니 반대편에 눈 덮인 산이 눈동자에 맺힌다. 청량한 날씨와 선선한 바람을 따라 내면의 무거운 짐이 날아가고, 마음이 푸른 하늘에 뜬 하얀 구름처럼 가볍다. 가만히 앉아서 최대한 눈을 크게 뜨고 활짝 웃으면 그만이다. 연신 감탄사를 연발한다.
“와-“
출발부터 가이드는 작은 액션 카메라를 손에 쥐여 주었다. 도착까지 영상과 사진을 쉴 새 없이 찍는다. 햇빛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면서 가이드 아저씨가 인사를 하라고 시키면 손을 흔들고 브이, 하트, 만세까지 갖은 재롱을 부릴 만큼 즐거웠다.
점점 강 가까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큰 곡선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아 땅을 밟고 섰다.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뛰라는 가이드의 말에 전속력으로 달린다. 바람에 날린 패러글라이딩에 휩쓸려 넘어지지 않고 착지까지 안전하고 완벽하다. 놀이기구라면 당장 다시 타기 위해 줄을 기다릴 텐데. 매일 패러글라이딩만 하고 싶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빠를 기다렸다. 내려오는 모습을 찍기 위해 휴대전화를 들지만, 번번이 허탕이다. 한참 기다리고 나서야 드디어긴 끈에 대롱대롱 매달린 아빠가도착했다. 정신없이 가방을 챙기더니 바람맞은 코를 푼다. 위험하거나 무섭지 않고 경치를 보면서 편안하게 내려왔단다. 딸이 출발하고 한 번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본 결과, 다른 사람들보다 긴 시간 동안 멀리 날아갔다고 말한다. 날씨가 나아져서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좋은 가이드를 만났으니 행운이라고 결론짓는다.
“하하, 사진 잘 옮겨야 해. 그래야 인증할 수 있지. 앞으로 10년은 술자리에서 자랑해야 해.”
처음 해보는 패러글라이딩에 망설이던 아빠였다. 막상 해보니 나쁘지 않은 순간이었나 보다. 소감을 듣는 딸은 홀가분하다.
날씨처럼 간사한 게 사람 마음이라고 옛날 사람들이 말했던가. 패러글라이딩 전 날 밤엔 여행을 어떻게 이어갈지 막막했다. 여행은 예상만큼 녹록지 않았고 아빠와의 거리는 멀어졌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며 욕심을 내려놓으니 여행의 명확한 의미가 보였다. 의지 밖의 문제는 어디서나 찾아오고 우리의 시간은 어차피 흘러간다. 아빠와 추억을 남기러 왔으니 계획이 조금 틀어지거나 완벽히 이루지 않아도 괜찮다. 가이드 말처럼 천천히, 패러글라이딩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아빠와 딸은 각자의 두려움을 하늘에 버리고 더 멀리 날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