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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용상 May 14. 2024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면 보이나니

대학원 한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가장 좋아하신다는 구절을 공유해 주신 적이 있다.

조선시대 문인 유한준의 문장으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지금도 생각해 보면 나는 알고 싶었고 알고 난 뒤 보이는 것들을 갈망했지, 먼저 사랑할 생각에는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하는 사랑은 나에게는 참 어려웠다.


저 문장을 반대로 말해봐도 언제나 그대로 와닿는다.

전과 달라지고 싶다면 새로운 관점으로 봐야 하고, 새로운 관점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이해하고 알아야 하지만, 우선 사랑해야 할 것이다.


사랑하기 위해서 가슴을 열어젖힌다는 것은 상처받거나 실패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받아들이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기에 그렇게 어려웠던 것이 아닐까. 물건이나 개념, 목표를 사랑하기는 쉽지만 나와 타인과 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아직도 어렵다. 스스로 주는 상처, 타인이 주는 상처에는 왜 그렇게 예민한 걸까 머리로 이해해 보려고 하지만 역시 가장 아픈 사랑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었다.


도쿄역 주변의 코쿄가이엔 공원


사람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고 싶어서 혼자만의 시간을 더 가져보기로 했다.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들, 세상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소식들과 소리들... 생동하는 것들에서 잠시 빠져나와 멈춰있는 평화로운 시간이 우리에게 그토록 가장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잠시 주위를 바라보니 사랑하고 싶은 것들이 우리 주변에는 참 많았다. 오래된 역사가 깃든 건물과 문화, 누군가의 섬세한 미의식으로 탄생한 화려한 인테리어의 건물들,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가족들과 친구들, 흘러나오는 나의 취향을 저격한 카페의 배경음악.


건강검진을 위해 방문한 도쿄역이었지만 산들산들 바람을 맞으며 여유를 부려 걸어 다닌 토요일 오후, 이제 조금은 더 나와 타인을 사랑할 수 있게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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