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지나간 세월을 아쉬워하며 젊음을 소중히 해야 한다고 하지만,
늙는 것도 그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늙게 되면 우선 신체 나이가 들어 쉽게 피곤해지고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지며, 많은 것을 잊어버리거나 생각과 행동이 느려진다.
이런 것들은 전혀 좋은 게 아니기에, 우리는 늙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럼에도 살면서 분명히 있었을 매 고비고비를 넘겨 꿋꿋하게 살아낸 노인은 존경받아야 할 존재다.
이제 막 지나온 나의 20대만 하더라도 전쟁을 겪은 노인의 20대와 비교할 순 없지만 또 다른 어려움과 고난의 시간이었으니.
짧지만 길다고 하는 삶, 무너지지 않고 자신만의 탑을 쌓아 올린 노인에게는 그만큼 배울 것도 많다.
대학생 때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기 위해 노인복지시설에서 컴퓨터 교실 보조 선생님으로 봉사를 한 적이 있다. 학생처럼 매시간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빽빽하게 짜인 스케줄에 한번, 결석도 거의 없이 만석으로 매 수업을 채우고 있는 세월이 지긋하신 학생분들의 열정에 또 한 번 놀랐다.
나는 컴퓨터 교실 뒷자리에 앉아서 같이 강의를 듣고, 실습시간에 내용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학생분들께 도움을 주는 일을 했다. 시력이 많이 안 좋아서 잘 안 보이는 학생에게 어떤 것을 클릭해야 하는지, 순서를 잊어버린 학생에게 힌트를 주면서 실습을 끝마칠 수 있도록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나름대로 바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생각나는 것이, 나는 분명 봉사를 하러 간 건데 오히려 내가 노인분들께 치유를 받고 왔다.
친구에게 수업 끝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며 수업 시작 전부터 신이 나있는 할아버지, 눈이 안 좋아 돋보기를 몇 겹을 껴 가면서 버튼을 클릭하려는 엄청난 열정, 진도가 느린 친구를 놀리는 장난기 있는 학생까지.
초중고 학생의 순수함과 열정이 똑같이 느껴지는 교실이었다.
그런 순수함과 열정이 한편으로는 귀엽게도 느껴져서 가르치다가 나도 모르게 빵 터져버린 어이없는 기억도 있다.
왠지 모르게 항상 불안하고 흔들려서 힘들었던 대학생 시절,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때의 나의 테라피스트는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이었다.
잘 안 보이는 눈으로 어떻게 그렇게 긴 글을 매번 블로그에 써 내려가는지, 거기에 추가로 수업에서 배운 움직이는 디자인 효과로 화룡점정. 창의력과 창조력이 넘치는 활기찬 수업이었다.
얼마 전 일본의 고서점(古書店) 거리, 진보초(神保町)에 다녀왔다.
여러 서점들을 둘러보다가 '쇼와에 배우는 삶을 꿋꿋이 살아가는 힌트'라는 문구에 끌려 책 한 권을 사들고나왔다.
이츠키 히로유키(五木寛之)의 《마음의 산책: 心の散歩》이라는 책이었는데, 1932년 쇼와 7년에 태어난 작가가 쇼와 시대를 보내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있었던 소소한 에피소드와 사색이 담긴 에세이집이다.
우선 90살이 넘은 현재까지도 이렇게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는 것에 놀라웠다.
소소하고 사소한 것들이 수다를 떨듯 자연스럽게 쓰였지만, 내가 가진 것들에 새삼 감사해지고 과거와 지금의 문화를 비교하면서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주는 지혜가 담겨있었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 열정이 느껴지는 일을 노인이 되어서도 계속하고 싶어졌다.
인생에 언젠가 회사는 퇴직하고, 은퇴의 시기가 오겠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숙성된 나의 지혜로 새로운 맛을 낼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