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생각은 많아지고, 내 에너지는 어디로 새었는지 피곤함만 몰려오는 날.
왠지 그런 날이면 평소보다 더 배가 고프고, 쇼핑해야 할 것들이 떠오르고, 아무 일도 아니었던 기억들이 속상했던 감정으로 둔갑하여 떠오른다.
그런데 사실 정말로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맛있는 음식 한 바가지가 아니라,
그저 깨끗한 밥에 심심한 반찬 한두 가지로 천천히 먹는 가장 평범한 식사 한 끼였다.
식욕 왕성하고 호기심 투성이인 초등학생 때 같은 반 한 친구가 "밥에 김치가 제일 맛있어."라며 무던하게 던진 한 마디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지.
그 친구는 이 진리를 그 어렸을 때부터 깨달았던 것일지, 다른 친구보다 성숙한 마음을 가진 친구였을지 모르는 것이지만 많이 큰 지금도 여전히 배워 나가고 있는 자세다.
괜히 예뻐 받고, 위로받고 싶어진 어린 마음이 부리는 투정이자, 착각이었던 것이다.
실상 맛있는 음식 한 바가지 놓인 레스토랑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고, 쇼핑한 물건은 당장 쓰지 않을 물건일지 모른다. 괜스레 서러운 마음도 나중에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논리로 지어낸 마음의 착각일 확률이 크다.
그럴 땐 그 친구가 얘기했던 밥과 김치처럼 가장 기본적인 밥상을 차려놓고, 평소보다 더 천천히 천천히 음미하며 먹는다.
잠도 충분히 자고, 마음의 그을음과 함께 방 청소도 구석구석 천천히 한다.
그래, 너무 바쁘게 이것저것 생각하고 챙기며 지내온 지친 마음이 보내는 신호에는
평소보다 의식해서 천천히 먹는 밥과 김치가 최고의 처방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