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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재 Sep 30. 2024

봄밤

-simjae


봄 밤               



며칠 동안 황사바람이 몰아쳤다 

이제 막 새 순을 피우던 쑥 잎도 눈을 뜰 수 없다

누렇게 마른 잔디 밑으로 얼굴을 묻는다     


시市 청사 대리석 계단에는

엊그제와 똑 같은 포즈의 한 젊은 남자가

수은등 불빛에 온 시신경을 모으며 책을 읽는다  

상암동 철거민들의 생존권 보상에 대한 붉은 목소리로 

그는 늦은 봄밤을 끝까지 읽고 있다

소리 없는 저 아픈 독서는 언제쯤 끝이 날까

그 옆 화단에는 요정 같은 이국종 프리뮬러가 

태연하게 웃고 있다

아직도 걷어내지 못한 추위를 무겁게 걸치고

오늘도 나는 봄과 겨울 사이에 서서 그들을 지켜본다 

칼칼한 모래 바람이 사납게 일고

내 안에도 한 뼘의 사막이 생긴다

고철 같은 기억들 철거된 자리에 녹슨 상처 하나 

삐죽삐죽 솟고 있다     


봄이 또 그렇게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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