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imjae
스테인드글라스
유현숙
당신을 만나는 일은 혼자 걷는 일이지요 비우고 오래 기다리는 일이지요
밤 한 때 눈발이네요 콧등이 추운 창가에서 창을 열고
비우는 동안에, 기다리는 그 동안에, 나는 낡습니다
앙리 미쇼는 메스칼린을 먹었고 박정만은 두 달 동안 오백 병의 소주를 마셨고 기형도는 이십여 일 동안 백 병의 소주를 마셨지요* 김관식, 조지훈, 천상병, 조태일……, 생전의 그 이름들도 제 정신을 내려놓고서야 허무의 면목과 독대를 했는가요
의식도 무의식도 끄트머리는 모두 마지막 한 점에 닿는 것이겠지요
치마폭에 묻은 감즙의 얼룩이 다 바래어지고
내가 닳아 조용해지고 나면 먼저 닳아서 조용한 당신과 만날 수 있을는지요
언어가 유리조각 같이 날을 세우는 새벽, 그 때에는,
*전봉건-이승훈『대담시론』에서, 2011년 문학선社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