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imjae
비 젖은 벽암록
유현숙
비 보다 먼저 바람이 불었다
영화관에 들러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또 한 편의 영화를 더 봤다
영화를 보고나오니 대낮 도심이 비에 젖고 있다
내 생일은 올해도 이렇다
여든 다섯 노모로부터 걱정하는 전화가 왔다
일면식도 없는 시인이 첫 시집을 부쳐왔다
벽암을 찾아 나선다 했다
먼 북쪽 전설의 큰 바다 북명에라도 닿으면
이끼 덮인 바위 틈새에 손 넣어 푸른 말 새겨진 바윗장 하나 집어 낼 수 있을까
북명 같은 벽암 같은 곤의 날갯짓 같은 어록을 받아들 수 있을까
일면식도 없는 시인이 일면식도 없는 시인에게 엽서를 쓴다
첫 시집을 잘 받았다는 첫 엽서를 쓴다
불이의 정토는 넓고 아득하여 나고 감이 고요할까
내가 이 칠월을 버리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