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한 날을 돌아보며

by bbj

지금까지 쓴 글 일곱 편을 처음부터 다 읽어보았다. 읽으면서 알게된 건, 나의 식물 키우기 역사는 몇 년 전에 바뀐 ‘새 직업의 여정’과 같았다.


이직 후에 덜컥 선물받은 난초들과, 그뒤 이발하듯 싹둑 잘라도 다시 돋아나는 강인한 다육이들은 이직과 함께 동거를 시작했기에 내겐 입사동기와 같다. 이후 테이블야자, 마리안느, 율마, 스킨답서스, 화이트 스타, 몬스테라 등등과도 만났다. 씨앗부터 틔워 키운 허브 로즈마리와 라벤더도.


식물과 현재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이 닮았을까.

겉보기에, 그렇다, 정적이다 매우.


이전까지는 중고교 교사로 일하며 하루종일 많은 이들을 만났고 수업하고 학생지도하며 앉은 것보다 서 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그런 역동적인 삶을 사랑했다, 꽤 치열하게.


일터를 바꾸고 나서, 갑자기 하루종일 정적인 연구를 해야 했던 생활이 좋은 점도 있지만 낯설기도 어렵기도 했다. 이전 생활과의 변화 폭이 컸던 탓이다.

내 교육활동에 대해 즉각 학생들의 반응과 피드백을 받았던 그 이전과 달리, 대학에서의 강의와 연구, 논문쓰기란 매일의 행위에 대한 결과적인 반응이나 피드백이 참으로 느린(없을 때가 더 많은) 긴 호흡의 생활이었던 것이다.

그때 마침 식물을 만나 함께 있게 된 건 운명적이다.


우선 가장 많이 배운 건 ‘꾸준함’의 미덕이다. 그들은 멈춘듯 해도, 단 한번도 멈추지 않는다. 전진만 있지 후퇴는 없다. 멈춘듯한 나날 같아도 안 가고 있는 게 아니다. 나도 그동안 선학들이 쌓아 놓은 무거운 학문을 이고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중이었다.


때로는 오래 그 자리에 머문 듯, 오히려 후퇴하는 듯 보여도 그게 아니었던 나날들. 그런 날들이 펼쳐질 거라는 걸 아무도 예고해준 적 없었다.

그런 내가 만일 초록이들을 키우지 않았다면, 어디에서 그걸 배우고 위안을 얻을 수 있었을까. 기어이 배우긴 했겠지만 안정을 얻기까지 꽤 오래 걸리지 않았을까. 누군가가 보내준 식스승이 아닌가 한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기운이 너무 저조하고 고민되는 일이 연이어 겹쳤을 때, 사람이나 단체에서 큰 상처나 좌절을 겪었을 때 식물들도 아프고 더러 죽기도 했다는 것이다. 누렇게 비틀어진 잎을 보며 마치 내 상태 같아서 많이 슬펐고 후회했다. 나 하나 돌보기도 버거워 그들에게 물을 주고, 상태를 살피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져 그랬었다.

그러나 내가 의지하는 것처럼 그들도 나를 의지했던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야 그걸 깨닫기도 했다.


여러 시간들을 넘어 지금도 그렇게 함께 살아간다. 살아내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은 없지만, 키우는 분들의 마음을 아주 조금 이해할 것만 같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은 저마다의 온기와 생기가 있고, 그것이 종을 넘어 어깨를 내어주기도 한다는 것을.


살아 있는 게 ‘그냥’ 되는 건 아니다. 그건 있을 수 없다. 지속과 유지도 에너지가 많이 드는 법이다.

그래서 가만히 있다고 해서 발전이 없다거나, 아무 노력없이 생을 이어간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참으로 복잡하고 정교한 것이 살아있음이다. 그럼에도,

생을 받은 순간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그걸 지킬 의무와 능력을 같이 받는다. 나도 당신도, 식물도, 이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도 그런 면에서 같다.


그렇기에 서로에게 기대거나 손을 맞잡을 수 있고, 이미 그러하다. 숨쉬듯 당연하게.


보이지 않아도 모두의 사이에 촘촘하게, 살아있는 것들끼리의 연대와 그 힘은 분명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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