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행운, 아니 속임수

우연히 빈 화분에 싹튼 명아주

by bbj
원래 식물 이야기 8회로 마감하려 했는데, 브런치의 아는 지인이 말하길 8회로는 마감 처리가 안된다길래 이번주 2화 더 적어보겠습니다…


사진 속 노란 화분에 이년 정도 라벤더 키웠다가 시들어서 죽고, 빈 자리가 아쉬워서 그냥 빈 화분을 창가에 남겨놨었다.


창문을 계속 열어 둬서 그런지, 언제부턴가 잡초 씨앗이 날아와서 노란화분에서 쑥쑥 크는 것이다.

이름 모를 식물이지만 기특하고 안쓰러워서, 말라가지만 않게끔 물주고 키웠는데 금세 창문 세로 길이만큼 키가 컸다. 잭과 콩나무의 콩나무처럼 쑥쑥.


어어 이것봐라 싶었던 어느 날, 문득 혹시 독초는 아닐까 계속 동거해도 안전한가 불안해졌다. 네이버 렌즈로 검색해보니 ‘흰명아주‘라고 나온다. 그동안 이름도 안 궁금해서 내버려두다 반년만에 처음 검색해 보았다.


검색결과가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잎을 식용이나 약초로도 쓴다는데 아니 왜, 갑자기 내 연구실로 날아와서 이리 컸을까 싶다. 생명이란 대단하다 싶었다.


신기해서 sns에 올렸더니 한 친구가 꽃말을 검색해 보라 했다. 너에게 갑자기 찾아온 식물이니 좋은 뜻이 아니겠냐며.


serendipity같은 예쁜 뜻을 기대하고 검색해봤더니 세상에 웬걸, 속임수였다. 명아주의 꽃말은 속임수! 그만큼 여기저기서 잘 자라는 질긴 습성이 반영된 꽃말이었던 것이다.

지천으로 흔한 식물 5위 안에 든다고 한다. 그러나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것이, 조상들이 보릿고개나 한창 굶주릴 때 구황작물이기도 했단다. 조선시대 시조나 가사에 보면 ‘너무 굶주렸는데 다 먹어버려서 명아주조차 먹을 수 없다, 찾을 수 없다’는 구절이 있긴 했다.


그땐 그냥 그런 게 있나보다 무심히 넘기던 식물이었는데, 어느 날 이리 찾아와서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내가 바로 그 명아주다, 하면서.


저렇게 키다리처럼 무럭무럭 자라서 내심 1미터를 넘기면 어쩌지 걱정했건만, 무더위와 습도를 이기지 못하고 여름된 지 한달여 만에 죽고 말았다. 경험상 저리 잎과 줄기가 여리여리한 식물들은 습도가 높은 여름에 특히 취약하다. 통풍이라도 시켜주면 좋았겠지만, 그리 섬세하게까지 돌보지는 못해서 이미 있는 식물들 통풍도 거의 안 시키는 판이었다. 객식구인 명아주에게는 어림없었다.


씨앗으로 공기 중에 떠돌다, 허브가 가고 비어있던 그 자리를 찾아 온 명아주는 내 연구실에서 겨울부터 한 여름까지 반 년 동안 자기 생명을 불살라내고 갔다. 둥지를 훔치는 뻐꾸기처럼 능글맞게 구황작물처럼 강인하게. 참 엉뚱하지만 잊을 수 없는, 재미난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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