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아바나에서 잊지 못할 나날들
피자 한 조각을 먹을 때면 떠오르는 아이들이 있다. 까미요 형제. 두 꼬마와 까미요 엄마는 사흘 동안 쿠바 아바나에서 완벽한 가이드가 되어주었다. 여행 경비가 바닥나서 공항 노숙까지 생각하고 있을 때, 까사 하루 숙박비로 이틀 동안 거처를 제공해 준 고마운 사람이 까미요 엄마였다. 아바나 시내를 함께 돌고 있던 둘째 날 점심 즈음이었다. 둘째 까미요는 엄마에게 피자를 사달라고 생떼를 썼다. 피자는 까미요 엄마 한 달 월급의 삼 분의 일 가격인 5쿡이었다. 만약 내게 돈이 있었다면 감사의 표시로 피자를 사 줄 수 있었을 텐데 그 당시 나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만약 까미요 엄마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아바나 공항에서 거지같은 몰골로 이틀을 지새웠을는지도 모른다. 까미요 엄마를 알게 된 것은 아바나에 갓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체 게바라가 살았다는 산타클라라 행 버스를 알아보고 있던 차에 장바구니를 들고 있던 그녀를 만났다. 쿠바 바라데로에서 카드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절망적인 상태로 터벅터벅 아바나 광장을 걷고 있었다. 무리를 해서 산타클라라로 갔다가 아바나 공항에서 노숙을 하는 것이 나을지 아바나에서 사흘을 보내는 것이 나을지 고민하다가 산타클라라행을 결심하고 있던 찰나였다. 인상이 서글서글해 보이는 그녀에게 물었다.
거리에서 만난 천사 덕에 공항 노숙은 면하다.
산타클라라에 가고 싶다고, 그랬더니 그녀는 터미널이 꽤 먼 곳에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내가 어쭙잖게 스페인어로 해대는 불평, 불만에 귀기울여주며 힘내라고 격려까지 해 주었다. 카드를 잃어버려서 정해진 돈으로 여행해야하는 내 처지는 누가 봐도 딱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집이 조금만 넓다면 나를 재워주고 싶다고 했고 나는 의자만 있다면 좁아도 상관없다며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난 그녀를 따라 그녀의 집에 갔다.
‘에이 좁으면 얼마나 좁겠어.’ 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집의 상황은 생각보다 열악했다. 부엌은 곰팡이가 잔뜩 끼어 있었고 아이들의 침대는 먼지로 뒤덮여 있었으며 책들로 가득해야 할 아이들의 책상은 거미줄로 뒤덮여 있었다. 아이들의 두 침대는 판자로 된 장판 위에서 겨우 무게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진 내 표정을 보며 이제 알겠냐고 허탈하게 웃었다. 나는 몇 초간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몇 초 후 까미요 형제가 들어왔고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하얀 얼굴의 아이들은 나를 외계인 바라보듯 바라보았다. 아이들 때문인지 이곳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 한 조각
그 날 아이들과 처음 만나 먹은 것은 길거리의 피자였다. 5쿡 피자의 십분의 일 가격인 10쿱(1달러=1쿡 =25쿱, 쿠바에는 쿱, 쿡 두 가지 화폐가 있다.) 까사 하루 숙박비인 25쿡보다 5쿡 많은 30쿡에 머물겠다는 결정을 내리자, 까미요 엄마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 손을 잡고 아바나 거리로 나섰다. 아바나의 밤거리는 정말 아름다웠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은 마리아치의 공연을 보며 환호하고 있었고 쿠바 사람들은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신이 난 아줌마는 값싸고 맛있는 모히토 가게를 안다며 아줌마 단골 가게로 나를 데리고 갔다. 모히토 한 잔에 얼굴이 벌게진 나를 보며 아이들은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셔터를 눌러댔다. 부끄러워하던 아이들은 모히토 한 잔에 토마토가 된 나를 보며 우스꽝스러운 광대를 보는 것 마냥 웃어댔다.
까미요 형제와 처음 먹은 음식은 피자 한 조각이었다. 종이 몇 겹에 둘러싸인 뜨끈뜨끈한 피자 한 조각을 후후 불어가며 우리는 거리에서 피자를 오물거리며 먹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콜라 한 캔으로 점심을 때웠던 내가 먹은 그 날의 첫 끼니이기도 했다. 까미요 엄마는 나를 위해 이틀간 직장에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녀와 까미요 형제는 이틀 간 세상에서 제일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주었다. 돈이 없어서 헤밍웨이의 생가에도 못 갈 뻔 했는데 까미요 엄마의 재치로 나는 쿠바인과 똑같은 가격에 헤밍웨이의 생가에 들어간 몇 안 되는 외국인이 될 수 있었다. 둘째 까미요가 피자가 먹고 싶다고 졸라대던 날은 우리가 만난 지 이틀째에 접어들던 날이었다. 잠시 목을 축이기 위해 들어갔던 식당에서 우리 옆 테이블 가족은 피자와 파스타를 한가득 시켜서 맛있게 먹고 있었다. 까미요는 떼를 썼지만 까미요 엄마는 돈이 없다고 힘없이 말했다. 그 때 카드를 잃어버린 나 자신이 정말 한심하게 느껴졌다. 수중에 있는 얼마 남지 않은 돈은 쿠바를 나갈 때 25쿡, 관광지 입장료로 써야 하기에 선뜻 5쿡을 꺼내놓지 못했다.
잊지 못할 그 밤, 카사블랑카에서의 달리기 경주.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나는 두 꼬마와 함께 배를 타고 카사블랑카로 가기로 했다. 까미요 엄마는 무거운 몸을 가누지 못하고 헉헉 댔고 밤에 대포 사격을 하는 카사블랑카에 가자고 조르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까미요는 우리 셋이서 가자고 제안했다. 어둑어둑해진 일곱 시 무렵이었기에 나는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까미요는 겁내지 말라고 나를 위로해주기까지 했다. 까미요는 쿠바 사탕이라며 배에서 파는 사탕을 사서 내 입에 넣어주기도 했다. 배를 타고 카사블랑카에 도착한 우리는 어둠을 뚫고 달리기 경주를 하기도 했다. 아홉시 사격 쇼는 꼭 봐야 한다며 까미요 형제는 지루한 두 시간동안 학교에서 배운 이야기를 하나 둘 풀어놓았다. 가지고 있는 돈을 다 꺼내서 콜라 한 캔을 사와서 한 모금씩 돌아가며 마시기도 했다. 셋이서 나누어 먹은 콜라는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먹었던 달콤했던 콜라만큼이나 달콤했다. 사격 쇼가 끝나고 나서 아바나로 다시 돌아올 때 어찌나 무서웠던지 벌벌 떨자 꼬마 까미요는 손을 잡아주기까지 했다. 정말 나이만 조금 더 많았다면 남자친구 삼고 싶을 정도였다.
꿈같았던 사흘, 아디오스 아바나.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난 아름다운 까미요네 가족 덕분에 쿠바에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음 다음 날 새벽 비행기를 타야만 했고 다음 날 아침 꼬마들과 눈물의 작별인사를 해야만 했다. 쿠바의 마지막 밤은 혼자 공항에서 보내야 했다. 사흘간 공항노숙을 할 뻔 했던 나는 친절한 까미요네 가족 덕분에 환상적인 이틀을 보낼 수 있었다. 공항으로 떠나는 날, 까미요 엄마는 내게 집 주소가 적힌 종이를 주었다. 혹시 쿠바에 다시 오거나 쿠바에 놀러오는 사람이 있으면 이 집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나는 언제 잡을지 모르는 희망의 동아줄을 기대하며 절실한 마음으로 건넨 종이 한 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비행기를 놓칠 뻔 했던 아찔한 순간에 깜빡하고 종이를 아바나 공항에 두고 온 것이다. 새벽 여섯시 비행기라 아바나 공항에서 밤을 꼬박 지새우던 나는 탑승수속을 밟고 나서 다섯 시부터 여섯시까지 깜빡 졸았다. 벤치에서 웅크린 채로 졸다가 눈을 떴을 때 시계는 여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깜짝 놀란 나는 공항 안 대기실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비행기를 향해 질주했다. 다행히 비행기는 아직 뜨지 않았던 상태였고 무사히 쿠바를 떠날 수 있었지만 대신 까미요 엄마가 건넨 종이가 든 작은 가방을 아바나에 두고 오고 말았다. 최고의 사흘을 보내준 고마운 가족이었는데 나는 고마움을 갚지 못했다. 다만 가끔씩 들려오는 쿠바 소식을 접할 때, 피자 한 조각을 먹으며 사무치게 미안해 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