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 마음 맑음 Dec 29. 2023

다 포기하고 싶을 때

<다시 꿋꿋이 살아가는 법>, <너의 하늘을 보아> / 박노해

다시 꿋꿋이 살아가는 법

박노해


일단 꼬박꼬박 밥 먹고 힘내기

깨끗이 잘 차려입고 자주 웃기

슬프면 참지 말고 실컷 울기

햇살 좋은 나무 사이로 많이 걷기

고요에 잠겨 묵직한 책을 읽기

좋은 벗들과 좋은 말을 나누기

곧은 걸음으로 다시 새길을 나서기


<너의 하늘을 보아> / 박노해 / 느린걸음


출처 Unsplash


제목이 갖고 있는 무게감을 알지 못했다. 늦은 밤 혹은 이른 새벽, 이 제목을 키워드로 내 브런치 글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느새, 누군가 이 제목을 찾아 글을 읽고 간 사람이 또 있었는지 확인하게 되는 나를 보았다.


혼자서 생각에 잠겼다. '이 제목을 찾아서 들어오는 사람이라면 어떤 내용을 기대하고 글을 여는 걸까? 그 사람은 지금 무엇이 필요해서 이 제목을 찾아보았을까?'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이 글을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다.


몇년 전 힘들었을 때 큰 고민 없이 끄적였던 글이었고, 원래 내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말고 죽도록 힘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많이 달라졌고,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포기하고 싶을 때, 그럴 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조금이나마 마음이 쉬고 싶어서 이 글을 찾았을 텐데, 포기하지 말고 죽도록 더 힘내라는 말이 무책임하고 잔인하게 느껴졌다. 내 글을 읽고 마음이 불편했을 사람들에게 미안해졌다. 그리고 제목만 그대로 가져와서 글을 다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괜찮다.

쉬어가도 된다.

포기해도 된다.

내려놓아도 된다.

더 이상 단 한 걸음도 갈 수 없을 때, 내가 나에게 건넸던 말이다.


하찮은 위로가 아니라, 내려놓아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시작하기 위해 내려놓는 것 아니다. 다시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까지, 묵묵히 조용히 나를 기다려주면 된다.


출처 Unsplash


인생은 보통 우리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다. 아니, 안 될 때가 더 많다. 우리가 가장 불행하다고 느낄 때는 주변 사람들과 관계가 힘들어질 때인 것 같다. 사실 이 보다 더 큰 문제는 내가 나와의 관계가 틀어질 때이다.


죽고 싶지도 않고 살고 싶지도 않을 만큼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는 상태가 와서 슬픈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 무기력하고 힘이 없는 것은 알겠는데 그것 때문에 슬픈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좋아했었는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모를 때, 그때의 그 허무함이 나를 짙누르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상태가 아니라, 이미 너무 무기력에 빠져버린 나머지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상태, 혹은 그 무엇을 해도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는 무감각의 상태가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15년 이상 사회생활과 회사생활을 쉼 없이 달려왔다. 몇 번의 깊은 번아웃이 있었고, 수차례 슬럼프를 겪었으며, 20대 때는 체력으로 버티고, 30대는 악으로 깡으로 버텼지만, 점점 버티기가 힘들어졌다. 몇 년 전 번아웃이 왔을 때, 내 힘으로 더 이상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충분히 치유될 때까지 나를 기다려 주는 일 말고는...


회복하는 시간만 6개월이 넘게 걸렸다. 여기서 회복의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타인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나는 충분히 나를 기다려준 후에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조용히 귀 기울여주었다. 처음으로 내 마음이 나에게 건넨 말은 "괜찮아, 잘했어, 잘하고 있어, 앞으로도 잘할 거야"였다. 


아니, '잘 하지 못해도 괜찮아'. 이 말을 나에게 해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평생을 걸쳐 성장하고 있고, 아직 내가 발견하지 못한 나의 모습이 있기에, 지금의 내 모습이 평생 가지 않을 것이기에, 나를 그리고 세상을 탐색하고 알아갈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어야 한다. 때문에 지금 잘 하지 못해도 괜찮다. 


무기력하면 눈물이 날 힘도 없다. 눈물이 난 다는 의미는 무언가가 따스하게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는 의미다. 마음은 눈물로 나를 감싸주었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더 자주 더 가까이에서 마음 소리를 듣게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운동을 쉬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하루에 운동만 하더라도 최대한 빠지지 않고 했다. 바닥에 남은 에너지로 하루에 딱 한 가지 활동만 할 수 있다고 하면,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에너지를 운동하는데 우선으로 썼다. 운동이 나를 다시 살려줄 거라는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품고서.


그렇게 또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천천히 다시 내가 좋아하는 것이 생기고, 새롭게 하고 싶은 것들이 겼을 때쯤,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비로소 무기력이 내 몸과 마음에서 스르르 빠져나가며 마음에 생명력을 품고 싶은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삶의 목표와 목적이 없어도 된다. 내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도 된다. 눈물이 나는 나도, 자책하고 화가 나는 나도, 분노하고 원망하는 나도, 짜증 나고 우울한 나도, 모자라고 부족한 것 같은 나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어라. 그런 내 곁에 아무 말 없이 있어주어라. 충분히 다 털어내서 잡다하고 불필요한 것들이 나가떨어지고 가지치기가 되면, 혼자만의 시간에 마음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아라. 그 마음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들어 보아라.


내 심장 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한 시간에 잠시 쉬어가길 바란다. 마음에게 그 어떤 것도 묻지 않아도 된다. 먼저 마음이 말하고 싶을 때까지 그냥 옆에 있어주어라. 먼저 마음이 문을 열 때까지 그냥 들어주어라. 충분히 다 기다려준 후에, 마지막에 해주어라.


"여기까지 오느라 참 고생했다. 너의 있는 모습 그대로 고맙고 사랑한다."


출처 Unsplash



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느린 걸음


출처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