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짐을 지고 오르막길을 오른다. 등에 메고, 두 손에 들고, 머리에도 무거운 짐을 이고 간다. 내 짐이 너무 버거워서 길을 갈 때 다른 곳을 쳐다볼 여유가 없다. 내 몸에 진 무게 때문에 힘들어하면서 꾸역꾸역 길을 간다. 힐끗 주변을 살피며 혹시나 누군가 내 짐을 같이 들어줄 사람이 없는지 나를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이렇게 내 짐이 무거울 때는 신과 타인의 도움을 때로는 갈망하며 때로는 원망하며, 외롭고 버겁게 길을 간다.
오랜만에 근처 산에 다녀왔다. 더 이상 새롭게 보이지 않았던 산이 다시 새롭게 보이면서 내 마음을 감싸준다. 전에는 이 산을 오르면서 바라는 마음을 냈었다. 내가 더 행복했으면, 더 건강했으면, 더 탁월했으면, 더 많이 가졌으면... 혹여 나무가 내 소원을 들어줄까, 바람이 내 마음을 알아줄까, 산은 고요했지만 내 마음은 시끄러웠다.
늘 오르던 같은 산이었지만, 어제는 내 마음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제는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마음이 더 깊고 단단한 사람이 되겠다는 바람만 남았을 뿐, 산을 마주하는 내 마음은 가볍고 평온했다.
욕심, 욕구, 욕망, 좋고 싫음, 옳고 그름, 맞고 틀림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니 길이 가볍다. 괴로움을 놓으면 비로소 주변이 보인다. 달라진 자연의 색깔이 보이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귀를 간지럽히고, 나뭇잎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이 나를 따뜻하게 감싸준다.
사랑하는 사람의 짐이 보이지 않는다면, 아직은 내 짐이 무겁다는 의미이다. 이미 내가 이고 지고 가는 짐이 너무 많으면 타인의 짐을 도울 여력 따위는 남아 있지 않다. 내 마음이 가벼워야 타인의 마음도 살필 수 있고, 내 짐이 가벼워야 타인의 짐도 도울 수 있는 여분이 생긴다. 내 짐이 무거우면 다른 사람의 짐이 무겁다는 것을 알 수도 없고, 설령 상대가 짐이 무거워 괴로워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해도, 내 짐이 무거워서 도와줄 여력이 없다. 내 짐이 가벼우면 타인을 도우라고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돕는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타인을 돕는다고 하면서 내가 괴로워하면서 돕는다면 이는 내 인생을 불행하게 하는 또 다른 무거운 짐이 된다. 나를 이롭게 하는 길이 곧 타인을 이롭게 하는 길이고, 타인을 이롭게 하는 길이 곧 나를 이롭게 하는 길이다. 그 경계선을 지혜롭게 잘 알아, 나를 지키고 주변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나간다. 걸음마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