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삶에게 건넨 말

<Dying Speech of an Old Philosopher>

by 내 마음 맑음

Dying Speech of an Old Philosopher

by Walter Savage Landor


I strove with none;

for none was worth my strife;

Nature I loved, and next to Nature, Art;

I warmed both hands before the fire of life;

It sinks, and I am ready to depart.




죽음을 앞둔 어느 노철학자의 말

월터 새비지 랜더(1775~1864)


나는 그 누구와도 싸우지 않았노라.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상대가 없었기에.

자연을 사랑했고, 자연 다음으로는 예술을 사랑했다.

나는 삶의 모닥불 앞에서 두 손을 쬐었다.

이제 그 불길 가라앉으니 나 떠날 준비가 되었노라.



<축복> / 장영희 / 비채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상대는 없다. 인생에서 싸울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짧은 인생, 싸워서 무엇하랴. 행복해할 시간도 너무나도 부족한걸 말이다. 세상도, 삶도, 자연도, 사람도, 그 무엇도 싸움의 대상이 아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예술을 향유하기에도 모자란 것을... 삶은 어느 추운 겨울날 모닥불 앞에 앉아 몸을 녹이고, 두 손에 불을 쬐며 잠시 쉬어 가는 곳. 불길이 사라지면 아무 미련 없이 떠나야 하는 곳. 가치 없는 싸움으로 아깝기 그지없는 삶을 낭비하기엔 세상에 머무르는 시간이 너무도 짧다.


음악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며, 계절의 변화를 사랑하며, 세상을 사랑하며, 사람을 사랑하며, 미련 없이 후회 없이 떠날 수 있는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다.


나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그런 삶을 살고 있니?"
"너는 지금 행복하니?"



인간에게 공평한 것 한 가지가 있다. 누군가는 '시간'이라고 한다. 아니, 시간은 공평하지 않다. 하루 24시간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그 시간의 무한함과 소중함을 알아 시간을 의미 있게 채워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시간에 대한 관점과 삶에 대한 태도가 다른데, 어떻게 24시간이 이 두 사람에게 같을 수가 있는가?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중요한 것을 깨달은 한 사람이, 내 삶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내가 사랑하는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최대한 시간을 확보하는 사람이 있다. 다른 한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내 모든 시간과 생각을 집중하는 사람이 있다. 내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는 사람과, 내 시간을 돈을 위해 모두 바치는 두 사람의 삶이 같다고 할 수 있을까? 내 자유를 위해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사람과, 돈을 벌기 위해 내 자유를 포기하는 삶이 같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시간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시간에 대한 관점과 정의가 삶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인간에게 공평한 것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죽음'이다.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평생 살 것처럼 착각하며 살고 있지만, 먼저 가고 나중에 가고 순서의 문제일 뿐, 모든 인간은 죽음을 절대 피할 수 없다.


나는 내 삶에서 뜨거운 생명력을 느끼고 싶을 때, 죽음을 생각한다.
나는 내 삶을 온전하게 충만하게 느끼고 싶을 때, 죽음을 상기한다.
죽음을 인지할 때, 비로소 시간의 무한함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죽음을 인지할 때, 비로소 삶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음만 잊고 사는 것이 아니다. 삶도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있다는 것, 이 삶을 느끼지 않고 산다.” (김범석 교수의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책에서)


지금 이 순간 내가 숨 쉬고 있다는 사실, 내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소중한 나의 남편과 딸이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사실, 이 세상에 유한한 것은 없으며 모든 생명은 무한하다는 사실, 언젠가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진다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는 사실… 나는 이 중요한 사실을 어느 순간 잊고 살지 않았나?...

삶이 보여주는 수많은 아름다움과 기적을 우리는 애써 보지 않고 살아가는 것 같다. 우리는 애써 힘들고 고통스러운 인생이라며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 같다. 내 눈, 내 다리, 내 팔, 내 심장, 그리고 내 숨… 이것을 그 어떤 부와 바꿀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건강과 그 어떤 명예와 바꿀 수 있을까?

내가 사는 이유는, 오늘 하루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기 위해 산다.

파란 하늘 멍하니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한 요즘, 바쁜 마음 잠깐 멈추고 오늘 하루 나를 돌아본다. 잠깐 멈춤이 진정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잠깐, 멈추어, 생각한다.

마지막 순간, 내 죽음의 순간을...

내가 숨을 거두기 직전 나는 누가 생각이 날까? 어떤 장면이 머리에 떠오를까? 살면서 무엇을 해서 후회하고, 무엇을 하지 못해 후회할까? 무슨 말을 한 것을 후회하고, 무슨 말을 하지 못해 후회할까? 마지막 순간, 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기쁨의 눈물일까? 미안함의 눈물일까? 후회의 눈물일까?

내가 눈 감는 마지막 순간, 내 눈물의 의미는 편안함이었으면 좋겠다. "그래, 내가 원하는 삶을 원 없이 잘 살았다. 사람과 자연과 예술을 충분히 사랑했고, 충분히 향유했고, 충분히 함께했고, 충분히 웃었고, 충분히 즐거웠다."라는 의미의 눈물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욕심이라는 것을...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의 헤어짐을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평생 나의 온 몸과 마음을 다해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 가장 행복해야 하는가?
답은, 바로, 여기,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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