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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ㄱㅁ Jun 14. 2021

약도 많이 먹으면 살이 찌나요?

아무튼 고민은 혼자 싸매지 말고 말해야 돼



그럼 그렇지. 아무리 내가 크로플을 밥처럼 퍼먹었다고 해도 갑자기 살이 이렇게 불어나는 게 말이 안되지. 평소보다 아무리 음식을 절식하고 운동을 다니고, 하루에 꼬박꼬박 만보를 걸어도 살이 빠지지 않고 되려 느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바로 약! 내가 복용하고 있는 약 중엔 간혹 사람에 따라 부작용으로 살이 찌기도 한다고 한다.


나는 불안장애, 우울장애, 공황장애, 수면장애를 앓고있다. 언제부터 앓기 시작했는지 언제부터 발병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전문의에게 진단을 받은 건 31살 9월 가을이었다. 당장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아 조마조마하고 심장이 뛰는 건 불안장애였고,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지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건 공황장애였고, 밤마다 눈물이 나고 그 어떤 것도 즐겁지 않았단 건 우울장애였으며 잠을 자면서 하루에도 5, 6번씩 깨고 화장실을 들락날락 했던 것은 수면장애였다.


약을 먹기 시작한 지 9개월째다. 9개월 만에 나는 정확히 12킬로가 쪘다. 처음에는 정말 내가 많이 먹어서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 체질도 변한다고 하고, 기초대사량도 줄어든다고 해서 그런 줄만 알았다. 가끔 매일 입안에 털어 넣는 알록달록한 이 정체 모를 약들이 의심이 되긴 했지만, 선생님께 묻기는 싫었다. 내가 먹는 약 중에 살 찌는 약이 있냐고 물어보기가 겁이 났다. 체중에 예민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싫었고, 그 질문을 내뱉으면 선생님이 내 아픔을 의심할 것 같아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너무 슬프고 외롭고 아프다고, 당장 지구가 터져도 아쉽지 않을 만큼 이미 지칠대로 지쳤다면서 살이 찌는 건 싫어서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는 게 어딘가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이게 바로 죽고 싶어도 떡볶이는 먹고 싶은 그런 심정인가. 그리고 이제 겨우 괜찮아지고 있는데 내 말 때문에 약을 주지 않을까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걱정이 아닌가? 하지만 그런 걱정을 할만큼 나에게 약은 어느샌가 절실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6개월 사이에 10키로 이상이 찌는 건 일상이 변하는 일이었다. 속옷부터 바지까지 꽉 끼는 옷 때문에 숨이 차서 옷을 전부 새로 사야하는 건 기본이고, 이미 저질이었던 체력은 바닥이 되어 모든 일에 금새 지친다. 호르몬 분비의 불균형 때문인지 피부도 말썽, 없던 변비까지 생겨서 변비약까지 먹고 있다.


그래도 약 때문에 쪘다고 하니, 약만 끊으면 다시 살이 빠질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이 생겼달까. 얼른 약을 끊어야 하는 원동력까지 얻었달까. 인력으로 어찌하기 힘들 것 같아 다이어트도 포기하고 먹고 싶은대로 먹었더니 기분도 더 좋아져서 우울함이 덜해지고 처방받는 약도 줄어드는 순기능이 벌어졌다. 역시 선생님께 말하길 잘했어. 아무튼 혼자 버티는 것보단 고민은 나누는 게 방법이라는 걸 다시끔 깨달았다. 하마터면 또 살찌는 것도 나 때문이라고 오해해서 더 괴로워질 뻔 했다. 조만간 약을 끊으면 다시 내가 좋아하는 원피스를 입고 산책할 어느 여름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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