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고 치사한 먹고사니즘
새로 입사한 팀장과 사소한 말다툼이 있던 날이다. 끊이지 않는 야근을 더는 버티기 힘들었고, 실무는 나 몰라라 하는 팀장도 얄미웠고, 이런저런 핑계로 계속 자신의 업무를 떠넘기는 행동에도 지쳤을 무렵이었다. 욱! 하는 마음에 호기롭게 싸움을 걸었지만, 을은 나였다. 뒤탈이 걱정돼 먼저 화해의 손길을 건네며 점심을 청했다.
서로 아까는 미안했다며 꽤 훈훈한 사과로 시작된 대화. 팀장은 요즘 새로운 팀원을 찾고 있으니 조금만 버티면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희망찬 미래를 제시했다. 근데 당황스럽게도 그 대가가 함께 일하고 있는 팀원의 해고였다.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부서원 2명을 자르고 새로운 2명을 뽑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팀장이 입사한 지 겨우 3주째 되는 날의 일이었다.
우두머리가 바뀌면 조직도 변하는 법이다. 하지만 이토록 쉽게 사람을 자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것도 이제 겨우 사회생활 시작한 지 1~2년된 신입들을. 아직 꾀도 부릴 줄 몰라서 시키면시키는대로 고된 노동을 묵묵히 수행해온 미련스러운 동료이자 동생들이었다. 따져 물을 말들이 많았지만, 삼키고 또 삼키며 겨우 “정규직은 회사라도 함부로 자를 수 없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런데 웬걸, “회사가 그 정도도 모를까. 그래서 지금 하는 일과 무관한 부서로 발령 낼 거야. 알아서 나가라는 뜻이지” 한다.
화도 났지만 불안했다. ‘너도 계속 삐딱하게 굴면 자를 수 있어’라는 협박으로도 들렸으니까. 그렇게 때려치우고 싶었던 직장이었는데 막상 잘릴 생각을 하니 본능적으로 경고등이 깜박였다. 아아, 어찌하랴. 나에게는 생계인 것을. 그날부터 나는 굴러 들어온 상사의 눈치를 보며 출퇴근하기 시작했다.
팀장은 친한 후배, 아는 선배, 함께 일했던 지인을 총동원해 몰래 이력서를 받았고, 면접을 진행했다. 틈틈이 내가 공범이라도 되는 듯 지원자들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며 “이 사람은 어떠니?” 의견을 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곤 잘 모르겠다며 그 상황을 회피하는 것뿐이었다. 동료들을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 이 상황을 어찌할 수 없다는 무력감, 부당한 것을 외면하고 있다는 굴욕감이 매일 나를 짓눌렀다. 동료들의 얼굴조차 보기 미안한 날이면 점심도 굶고 혼자 카페로 향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그리고 한달, 두달이 흘렀다.
결국 두 사람은 회사를 떠났다. 부서발령을 통보받은 지 이틀 만에 그들은 부랴부랴 짐을 챙겨 나갔다. 떠나기 전날 우리는 모두 모여 펑펑 눈물을 흘렸다. 억울하고 슬프고 괴로워서 다 함께 울었다. 더럽고 치사해서 당장 사표를 내던지고 싶었지만, 손톱 밑 가시처럼 3으로 시작하는 내 나이가 자꾸 거슬렸다. 닳고 닳아 부딪힐 때마다 아픈 무릎에 임시방편으로 통증주사를 맞고 출근하는 늙은 엄마와 그보다 더 늙은 아빠가 자꾸 맘에 걸렸다. 시발 비용으로 쌓인 다음 달 카드값도,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통장 잔고도, 매년 치솟는 실업률도, 신입보다 더 취업이 안 된다는 경력단절도 모두 다 돌부리처럼 발밑에 걸렸다.
나름 불의에 저항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놈의 먹고사니즘에 붙들린 후부터는 소신이나 신념도 형편에 맞춰 꺼냈다 접었다 한다. 그동안 내가 배고픈 소크라테스 행세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배를 곯기도 전에 입에 밥을 떠 먹여주는 부모님 덕택이었음을 깨닫는다.
주 5일, 평일 출퇴근하는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의 삶.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하나 없는데도 사는 게 이토록 버겁다니. 밤마다 서럽고 아침마다 괴롭다. 돈이냐, 자유냐? 밥이냐, 가치냐? 현실이냐, 꿈이냐? 고민하다가도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해 부끄럽게 잠이 든다. 매일 잘도 잔다.
* 이 글은 매거진 <나이이즘>에 실린 에세이를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