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향한 모순적이면서도 이기적인 내 사랑
밥을 푸려 그릇을 꺼내 들었는데 그릇에 고춧가루가! “엄마는 설거지를 도대체 어떻게 한거야? 왜 자꾸 설거지 더럽게 해.” 갖은 인상을 다 쓴 채 짜증을 낸다. “미안미안. 깨끗이 했는데 왜 자꾸 그러지?” 서른도 넘은 딸내미가 혹여나 밥이라도 안 먹는다고 행패를 부릴까, 착한 우리 엄마는 내 손에 들린 그릇을 가지고 싱크대로 가 급하게 그릇을 닦는다. 입을 댓발 내밀고 식탁에 앉았는데 불고기 사이에 머리카락 하나가 엉켜있다. 왜 꼭 이런 건 내 눈에만 띄는 걸까. “하아. 여기 머리카락 있잖아. 요즘 음식에서 머리카락 자주 나온다고.” 식탁에 젓가락을 탁 내리꽂으며 성깔을 부린다. “머리카락? 어디 있지?” 엄마가 불고기를 한참 들여다본다. “나이 드니까 이제 머리카락도 안 보이네. 우리 딸이 안 골라주면 머리카락도 그냥 먹겠어.” 엄마가 어서 밥을 먹으라고 흰 쌀밥 위에 불고기를 올려준다.
작년에 어깨 수술을 한 엄마는 그 뒤로 손에 힘이 잘 안 들어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설거지하는 것도 더 힘이 들고, 힘주어 박박 닦았다고 생각했는데도 다시 보면 지저분한 경우가 더러 있다고. 나이 드니까 머리카락도 잘 빠지는 데다가 노안 때문에 눈도 잘 안 보여서 요리할 때 머리카락이 떨어져도 잘 모른단다. 반찬에서 고작 머리카락 하나 나왔다고 심통이 단단히 난 딸에게 엄마는 야단 한마디, 싫은 소리 한마디 안하고 뭐가 그리 죄스러운지 침대에 걸터앉아 변명을 한다. 그 와중에도 엄마 아프다는 소리에는 왜 울화가 치미는지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아프면 병원을 가야지 왜 안가고 그러고 있냐"며 개똥 같은 말이나 내뱉는다. 친구나 친구 부모님이 아프다고 할 때는 호들갑을 떨면서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걱정해주고, 어느 병원이 더 나은지 살갑게 잘도 찾아보면서 왜 내 부모 아플 때는 화부터 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하루는 엄마가 발목에 파스를 붙이고 있길래 봤더니, 이미 한참 전에 접질렸던 발목이란다. 버럭 화를 내면서 지금까지 부어있을 정도로 심각했는데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냐고 채근했더니 “네가 이렇게 화를 내니까 안 말했지. 다 나았어. 괜찮아.”라며 자리를 옮긴다.
머리가 아찔했다. 올해 31살인 나는 요즘 ‘나이 들어서 온몸이 아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절반은 사실이다. 뻐근하고 쑤셨던 허리는 이제 구부리기가 무서울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다. 땅에 떨어진 물건 하나 주울 때도 이제는 허리 숙이기가 겁이 나 무릎을 굽혀 줍는다. 이번 주에는 자면서 두 다리 모두 번갈아 쥐가 나 종아리에 알이 단단히 배겼다. 직업병인지 스마트폰 때문인지 손목이랑 엄지손가락은 하도 저릿저릿해서 일하다가도 수십 번 손을 주물러야 한다. 갑자기 눈에 생긴 알레르기 때문에 여름이면 수시로 안약도 넣어야 하고, 목디스크 때문인지 두통도 심해 진통제도 자주 먹는다. 퇴근만 하고 오면 온몸이 아프다고 칭얼대며 차려준 저녁 먹는 것 빼곤 누워서 몸 하나 꼼짝하지 않는다. 평생 자식 생각뿐인 엄마는 매일 내 방으로 무거운 고주파 마사지기를 들고 들어와 하기 싫다는 나를 어르고 달래며 허리 마사지까지 해주고서야 잠을 잔다.
내 몸 아플 때는 손가락에 피 한 방울만 맺혀도 호들갑을 떨며 엄마한테 달려간다. 내가 아프면 나보다 더 앓는 엄마니까. 엄마는 발목이 띵띵 부어도, 어깨에 인대가 끊어지고도 괜찮다며 참고 본다. 나는 엄마에게 어떤 딸일까 생각하니 마음이 참담하다. 나이가 들어 몸이 아프다는 말, 나이가 들어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달고 살면서도 정작 나이 들어가는 엄마의 몸을 헤아려 본 적이 없다.
지금이라도 반성하며 매일 저녁 설거지는 내가 하겠노라 선언이라도 하면 좋으려만, 솔직히 지킬 자신도 없다. 변명이라면 변명이겠지만,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내내 컴퓨터 앞에서 씨름하다 퇴근해 집에 오면 늦은 저녁이다. 굶으면 굶었지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은 게 사실이다. 늙어가는 엄마를 보며 가슴 찢어진다 소리치면서도, 피로한 현실 앞에서 내 사랑은 이토록 모순적이고 이기적이다. 그래도 앞으론 그릇에 남아 있는 고춧가루 정도는 직접 닦아내겠다고. 반찬에 뒤엉켜 있는 머리카락 정도는 조용히 집어 올리겠다고 다짐한다.
* 이 글은 매거진 <나이이즘>에 실린 에세이를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