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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ㄱㅁ Sep 01. 2021

32살에도 심쿵하는 포인트는 똑같네

네가 배고프잖아


그는 내 동아리 선배다. 우연히 알게된 선배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고민하다 카톡을 했다. 선배는 오랜만에 연락된 김에 얼굴이나 보자고 인사치레 같은 말을 건넸지만 난 진짜로 선배가 보고싶었다. 그래서 친한 다른 선배를 껴서 셋이 서촌에서 보기로 했다.


어느덧 33살이나 된 그는 여전히 소년미를 간직하고 있었다. 파란색 셔츠를 입고 웃는 선배는 처음 만났던 그 날처럼 머리는 살짝 헝러져 있었고 목소리는 낮았지만 건네는 말은 따뜻했다. 


한참을 늦은 나 때문에 결국 넘겨버린 점심시간. 가려던 식당은 이미 브레이크 타임이라 갈 수가 없어졌다. 2~3군데의 식당을 더 찾았지만 역시나 재료준비 시간이거나 이미 재료가 소진되어 일찍이 가게를 닫은 상태였다. 나 빼곤 둘다 늦은 아점을 먹어 배가 고프지 않다길래 먼저 카페나 가서 수다 먼저 떨기로 했다. 마침 선배가 찾아 놓은 카페로 향하는 길목에 내가 좋아하는 토스트 집이 있어 잠시 들리기로 했다. 배가 고프긴 했지만 좋아하는 동네인 서촌에서 오랜만에 함께하는 두 선배와 길을 걸으니 마냥 기분이 들떴다. 길은 이미 충분히 익숙하기에 굽이굽이 골목진 서촌을 구경하면서 발길 닿는 데로 걷는데 선배가 자꾸 지도를 보며 나를 이끈다. 가는 길은 내가 아니까 지도는 그만 봐도 된다는 내 말에 선배는 "이렇게 가면 돌아가게 돼. 너 배고프다고 했잖아"란다. 


맞다. 그의 주특기는 날카로운 얼굴로 태연하게 다정한 말을 건네는 거였지. 이래서 내가 그를 좋아했었지. 그 뒤로도 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내 심장을 뛰게 하는 말을 수시로 던졌다. "넌 여전히 밝고 잘 웃는다" "너는 항상 이렇게 친절하니?" "너랑 있으니까 심심할 틈이 없어" "네가 좋으면 나도 괜찮아" 이걸 해맑다고 해야 하는 건지, 요즘 말로 폭스(fox)인 건지. 안타깝게도 의도가 없으니 그저 친절하다고 표현할 수 밖에.


32살에도 나는 21살때와 같은 포인트에서 심쿵한다. 나이가 들면 이상형도 바뀐다던데 나는 왜 여전한가 모르겠다. 그래서 이렇게 연애를 못하고 있나 보다. 내 현실은 안타까웠지만, 큰 아픔을 겪은 뒤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그는 참 반갑고 안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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