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감정조절 중

아이들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by 청아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삶이 흘러가기를 바랍니다. 혼자의 삶에선 성공과 실패를 하더라도 자신만 챙기면 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없습니다. 그러나 혼자의 삶이 아닌 누군가와의 같이 가는 삶에서는 다릅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감정을 조절하면서 살아갑니다. 감정 조절은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고 긍정적인 감정을 유지하려고 하거나 긍정적인 감정을 유지하는 데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일 가까운 가족에게도 적용을 해야 하지만 우리는 참으로 잘하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나의 마지노선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으면 불편한 사안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아이를 키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요? 독박 육아로 인하여 나를 너무 막 대해서 일까요? 요즘 나의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아 큰일입니다.

아이들이 엄마 껌딱지인 요즘 번갈아가며 엄마의 영혼을 깎아먹고 있습니다. 아직 말을 하지 못하고 옹알이로만 살고 있는데 자신들의 의사 표현을 확실히 하기 시작했습니다. 좋다, 싫다 하는 표현을 구분합니다. 특히 둘째가 엄마에게 보챕니다.

“엄마, 뭐해?”

“엄마, 나 이거 가지고 놀고 싶어.”

“엄마, 안아줘.”

“엄마, 배고파요.”

“엄마, 찝찝해요.”

거의 울음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말이죠. 요즘은 밥 먹는 시간을 내기가 힘이 듭니다. 낮잠을 많이 자지 않고 내가 먹고 싶을 때는 아이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놓아야 하는데 혼자서는 역부족입니다. 어쩔 수 없이 대충 아이들의 컨디션을 보고 할 때가 많아졌습니다. 이때는 아이들의 우는 소리를 음악소리, 라디오 소리처럼 들린다라고 스스로 세뇌를 한 후 덤덤히 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어쩔 땐 아이들이 다리에 하나씩 매달려 있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엄마, 밥 좀 먹을게.” “엄마, 커피 한잔 잠깐 마실게.” 등을 하며 철판을 깔아야 합니다. 꼭 둘째는 이럴 때 더욱 소리 높여 울어댑니다. 그리고 꼭 말썽을 피우기도 합니다. 처음엔 조용히 타이르다 지쳐버립니다.

결국 엄마인 나는 못 참고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릅니다. 말도 못 하는 아이가 엄마 마음을 알 턱이 없을 것이고, 일단은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어떻게든 취해야 하기 때문에 그 간극이 커지기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위험한 물건을 만지거나 뜨거운 냄비 등을 만지려고 할 때 제지를 하는데 그것이 아이들에게는 장난감을 빼앗긴 기분인가 봅니다. 아무리 해도 해결이 나지 않을 때 아이는 어떻게든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별별 행동들을 하더군요.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귀신같이 행동을 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들어 눕는데 이런 건 어떻게 아는 걸까요?

하루 종일 마른 눈물과 함께 입에서는 징징대는 소리를 냅니다. “엄마, 엄마, 엄마~~~~~~~~~~” 이 소리를 계속 듣다 보면 인내심에 한계를 느낍니다.

내가 너무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고 그저 보챈다고만 생각했을까요. 아이들은 아이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서로 일방통행입니다. 결국 폭발하는 사람은 엄마 쪽인 나입니다. 보채는 아이는 화내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호기심에 놀다 이리저리 부딪히며 하나씩 알아가는 중인데 그 사이에 늘어가는 울음소리에 의연해지고 아이들이 왜 그럴까 궁금한 것이 아니라 그만 좀 울어댔으면 하는 생각들이 지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내게 감정 쓰레기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그렇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조금만 넘어지고 떨어지고 부딪히며 울게 되면 화가 먼저 앞서고 우는 아이에게 “그러니까 엄마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짜증 섞인 말이 나갑니다. 요즘 이 말을 자주하는 것 같아요.


하루는 둘째가 종일 엄마 뒤를 쫓아다니며 울어댑니다. 엄마 눈에는 그냥 우는 것처럼 보입니다. 꼭 사람 골탕 먹이는 말썽꾸러기로만 보입니다. 징징 짜는 소리에 결국 화내며 엉덩이 맴매를 3대를 때렸습니다. 아이는 더 크게 울어대고 엄마는 머리를 쥐어뜯었습니다. 30분을 실랑이하다 서로를 안고 한 템포 쉬어갔습니다. 또 하루는 남편이 퇴근하고 저녁 준비를 같이 하고 있는 와중에 곁에 와서 보챕니다.

징징대는 아이 때문에 인상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냥 신경 안 쓰면 되잖아. 왜 그렇게 힘들어해?”

“하루 종일 아이들이 우는 소리를 듣고 있어 봐. 괜찮은지. 그리고 아이가 우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써?”

남편은 그저 예민하게 군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그에게는 아이들이 곁에 가서 매달리지 않으니 모릅니다. 이게 얼마나 지치고 힘든지 말이죠. 아이들은 놀다가도 엄마 옆에 와서 잠시 앉아있다 다시 놀이를 합니다. 엄마가 무슨 충전기도 아닌데 말이죠.

아빠에게 한번 가보라고 해도 가지 않습니다. 잠시 간다고 하더라도 정말 잠시일 뿐입니다. 어쩔 땐 아빠에게 가다가도 엄마에게 돌아오는 일도 부지기수입니다. 왜 아빠에게는 잘 가지 않는 걸까요?

그렇게 저는 지쳐가고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화내는 일이 조금씩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편 마음이 누그러지고 나서 생각해보니 오히려 내가 아이들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이용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아이의 상태를 살피는 것보다 ‘제발 울지 마라.’ 이것만 생각하고 대했던 것 같습니다.


우연히 보게 된 책 제목 하나가 떠오릅니다.

<감정조절 못하는 부모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

정서 전염 현상은 다른 사람의 정서를 관찰하고 그와 유사한 정서를 느끼는 경향성을 말하는데, 정서 전염이 가장 긍정적으로 잘된 형태가 공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정서를 관찰하고 모방하며 직접적으로 그와 가장 유사한 형태로 반응한다. 따라서 부모가 아이들에게 주는 정서적 씨앗이 과연 무엇이냐에 따라 아이들이 평생 가지는 정서적 능력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부모가 감정에 대해 배워야 하는 첫째 이유다. (프롤로그 중)

특히 이제 세상에 나와 새로운 것을 접하고 배워가고 있는 어린아이들에게는 부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1990년대를 살아온 우리는 제대로 감정을 배우고 자라지 못했죠. 먹고살기 바쁜 부모 밑에서 어떻게 하면 빨리 헤쳐나갈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죠. IMF를 겪은 학창 시절에는 취업이 최우선시되기도 했었고요. 그런 우리가 부모 세대보다는 더나아가 자신의 감정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고민하게 되는 부모가 된 것이, 아니 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엄마는 조금씩 자신의 감정과 함께 아이들의 감정들을 배워가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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