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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Jan 31. 2024

시어머니는 솜씨 좋은 아들이 불안하다

내 자식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래도 예쁘게 봐 달라.

상견례란 무릇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가기 마련이다. 상견례의 미덕에 충실해야 한다는 강박이라도 있었던 걸까. 우리 엄마는 나의 부족함을 한정식집 반찬처럼 하나하나 성실하게 나르고 있었다. 얘가 학교 다니고 회사 다니면서 지 몸 하나 챙길 줄이나 알았지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대충 뭐 이런 이야기. 벌써 십 년이 넘은 일이라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엄마는 분명 1절에서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시어머니의 표정은 해감 덜 된 조개를 먹은 듯 떨떠름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농담반 진담반으로 한 마디 하셨다.

"그래도 우리 아들 너무 부려먹지 말아라~"


나름대로 천진했던 스물여덟 살의 나는 그게 뼈가 있는 말인지도 모르고 호호호 웃어넘겼다. 지금의 남편과는 2년의 연애 기간을 거쳤지만 자기 집안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말하는 성격도 아니었기에 어머님 캐릭터를 잘 몰랐던 상황이기도 했다.

매사 모든 것을 꼼꼼하게 확인하시는 어머님은 세상 물정 모르는 내 얼굴과 일명 게으른 손이라 불리는 길고 마른 손을 보고 지하를 헤매는 내 살림력을 꿰뚫어 보신 것일까. 여러모로 미덥지 못하셨던 모양이다. 남자든 여자든 살림에 능한 사람이 더 하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할 수도 있겠다마는 어머님은 우리 부모님보다 훨씬 연세가 많고 시집살이도 호되게 하신 데다 요리와 살림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한 분이셔서 '살림은 여자가'의 고정관념이 없기 어려운 분이셨다. 당시 "우리 아들 너무 부려먹지 말아라~" 정도는 자리가 자리인지라 굉장히 유하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다.


과연 어머님의 예상은 꼭 들어맞았다. 아들의 신혼생활은 손에 물 마를 일이 없었다. 살림꾼 당신 밑에서 살뜰하게 자라난 살림꾼 아들은 며느리 도시락부터 집들이 음식, 특별 야식까지 척척 내어 놓았다. 심지어 손맛은 수라간 나인의 뺨을 후려치는 것 아닌가. 고맙고 미안했지만 소중한 식재료는 장인이 다루는 게 맞았다.  

이런 나라고 양심 없이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요리 문외한이지만 은혜를 갚고자 저녁식사라도 어떻게든 해보고 싶었다. 회사가 홍제동 신혼집에서 30분도 걸리지 않는 데다 5시 칼퇴근을 했던 나는 각종 레시피를 검색하며 쉽고 간단하며(중요) 그럴싸해 보이는 데다(중요) 맛있어 보이는(결과 미지수) 것들에 도전했다. 내 블로그에는 10년 전 신혼일기가 남아 있는데 읽어보면 메뉴도 살짝 괴상하다. 닭고기살이 아닌 치킨 너겟을 굳이 잘라 맛없는 데리야끼소스를 만들어 치킨마요라고 해 먹거나, 닭가슴살 토마토 비빔밥 따위의 메뉴명도 이상한 식사가 올려져 있다. 한 번은 야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팽이버섯 베이컨말이라는 것을 하다가 기름이 뚝뚝 흐르고 버섯은 까불까불 돌아다니는 말도 안 되는 요리를 만든 적도 있다. 돌아보니 엉뚱한 메뉴가 문제였다는 생각도 든다.

요리는 정성이라지만 정성이 하늘을 뻗쳐도 못하면 망하는 게 요리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아가던 시절이다. 십 년이면 금수강산이 변한다는데 지금은 좀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수라간 나인이 집안에 있으니 간절함이 덜해 성장하질 못했다고 구차한 변명을 대본다. 그때는 몹시 엉망, 지금은 조금 엉망이다.



그렇게 대부분의 남편표 특식과 중간중간 내 괴상망측한 요리로 아슬아슬한 신혼 밥상을 이어갈 때였다. 어느 날 어머님과 통화하는데 갑자기 기습질문이 던져졌다. "오늘 저녁엔 뭐 먹을 거니?" 나는 왠지 건강하고도 담백한 메뉴명을 대야할 것 같아 허둥지둥하다가 대답했다. "야, 양파 볶음이요!!"

양파볶음? 고기도 다른 야채도 없이 양파 볶음이 메인이렷다? 이 에피소드가 가끔씩 생각날 때가 있는데 양파 볶음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메뉴명을 곱씹을 때마다 어이가 없다. 어머님도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전화를 끊고 꽤나 웃지 않으셨을까. 문득 내 며느리라면 너무 귀여웠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드는 나는 역시 구제할 도리가 없다.



결혼 십 년 차. 내 요리는 여전히 십중팔구로 애매한 상황이다. 된장찌개는 한강으로 끓여 찌개인지 국인지 끓인 나만 알 수 있고, 부침개는 여전히 공중분해되며, 심지어 애용하는 레시피로 반복하는 밑반찬마저 맛의 편차가 크다. 그나마 소금 참기름 국간장 참깨만으로 구성되는 각종 나물 무침만 겨우겨우 맛을 낸다. 오늘 아침엔 잔멸치볶음이 너무 짜게 만들어져서 딸에게 부디 밥 한 숟가락에 한 마리의 멸치만 먹어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그나마 요령 좋은 남편과 살면서 배운 점이 있다면 메뉴를 먼저 생각하지 말고, 냉장고 사정을 생각하면서 메뉴를 정하라는 팁과 육수 맛있게 내는 법, 손가락 안 다치는 칼질 요령 따위랄까. 내게 요리는 여전히 먼 산이지만 밑반찬과 국 등 일상 식탁은 근근이 차릴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아빠가 뭐 맛있는 거 해줬어?"

손녀딸과 일주일에 한 번씩 영상통화를 하는 어머님은 상대만 바꿔 여전히 뼈 있는 질문을 이어가신다. 주말은 거의 남편 호성이가 ‘호성세끼’를 찍는 판이라 뭐 나도 할 말은 없다. 탕수육이요! 김치찜이요! 딸이 신나게 대답하는 사이 슬그머니 앵글에서 멀어지는 나란 며느리, 조용히 혼잣말을 한다.

어머님, 저도 이젠 어쩔 수 없어요. 당신 아들이 대장금인데 무수리가 나댈 순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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