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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Oct 16. 2021

이상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어.

    

마음 병원에 가기 전까지 나는 생각 회로가 별로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루 종일 같은 생각만 반복하는 게 꽤 잘못됐다는 것은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그때는, 다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밤이면 밤마다 수면 진통제를 먹고 자기도 했었다. 통으로 먹은 건 아니고 잠을 자기 위해서였다. 어쩌다 어른이라는 프로. 그 프로에서 나오는 김경일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별을 하는 사람은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과 비슷한 고통을 겪는다’고. 진통제를 먹으면 효과가 좀 있다고 하는 말에 수면 진통제를 먹었던 거다.    

 

사실 난 다리가 좋지 않아서 머리맡에 진통제 두 통이 있다. 종류가 다른 친구로. 하난 일반 진통제, 하나는 수면 진통제. 어려서부터 이유가 모르게 양쪽 무릎이 아팠다. 그땐 진통제를 먹으면 된다는 생각을 못 하고 성인이 되기까지 쭈욱 앓다가 큰 이모가 건네준 진통제로 버티고 있었다. 마음 병원을 간 뒤론, 아파지는 횟수가 적어져서 그 진통제를 먹는 건 한 달에 한 번이 될까 말까 한다.      


어쨌든, 진짜로 아플 때 먹었어야 했던 것을. 온 정신의 생각을 막고 자겠다는 이유만으로 그 수면 진통제를 먹고 자곤 했다. 오죽했으면 그랬겠냐만은. 너구리 친구는, 늦게 앓는 성장통이 꽤 웃겨 보이기도 했겠지만 이 정도 일 거라곤 생각은 못 했을 거다.

나도 사실은 웃겼다.      


겨우 이런 걸로 수면 진통제나 먹고 빌빌대고 있다니, 숨도 못 쉬어 본다는 게 너무 웃겨.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아픔을 느끼고 일어났다는 건 신기하네. 흑역사는 철저하게, 아주 견고하게 만들어지고 마는구나. 신은 정교하기도 하지. 이런 고통도 다 느끼게 하고…. 근데, 일어날 수나 있을까. 가시밭길 같은데, 영영 가시밭길 같은데…. 이게, 시간이 지나면 낫는 아픔이라면 거짓말 같았다. 본디,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 아픔도 있고, 그대로 시간이 흐르지 않는 아픔도 있는데. 그럴 수 있어?

본래 기존에 가지고 있던 아픔들도 뒤섞인 채로 뭐가 더 아픈지 재지도 못한 채로. 뒤죽박죽 그렇게 더 두 달을 보냈다.


올해 4월이 되었을 쯔음, 또 힘들었던 일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좀 힘들어하셨었다.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에 힘들어하셨던 것도 있지만 일하는 일터에서 만난 귀여운 고양이가 어느 누군가에게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래, 그 아이는 길고양이였다. 집에서 사랑받고 살아가는 고양이가 될 수 없으니 매 계절의 혹독함, 사람의 미움을 받으며 근근이 삶을 이어가야만 하는 길고양이. 그 처지를 어머니는 슬퍼하셨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서로 우울했다. 그 와중에도 안심시켜야 했던 건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그 아이를 다른 곳으로 쫓기듯이 겨우 입양시켰지만, 입양 간 곳에서 스스로 울타리를 찢고 나왔다는 소식을 듣는 건 얼마나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일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꽤나 애착관계가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당신께서도 마음 붙일 곳이 필요했던 거라는 건 알고 있었고 그게 사람이 아닌 동물이라는 점이 완연히 이해되지 않았지만 알 수는 있었다. 그래서 이해를 하려고 노력했을 땐, 사람을 좋아하고 아파하는 걸 동물에게도 느낀다면 조금은 이해가 되었기 때문에.


많이 아플 수밖에 없겠구나 라는. 동물을 너무 사랑하면, 같이 살아왔던 동물이 죽었을 때 많이 우울해한다는 이야기도 얼핏 들었을 때 그런 마음으로 바깥 아이들을 돌보셨을 거라 생각하고 간신히 남아있는 마음으로 어머니를 위로하고 말했다.      


이 년 전, 이미 많이 진척되고 있었던 마음을 이제는 모른 척할 수는 없노라고. 그러니, 병원에 가보겠다고.

그렇게 4월 초에 처음으로 병원을 가기로 했고, 많은 이들의 응원과 지지를 받았다. 가장 가깝게 지냈던 너구리라는 친구에게 ‘나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면 어떡하지?’라는 질문에 ‘그렇게 안 되려고 가는 거잖아’라며 위로했다. 남매 사이에 따듯한 말 오가는 것은 어려운 사이라고 생각했던 오빠에게도 ‘네가 가장 소중해’라며 지지해줬었다.


그렇게 떨리는 마음을 안고 첫 병원을 선정에 성공했다. 지금은 병원을 옮겼지만, 그곳을 갔을 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가서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도, 머릿속이 백지가 된 상태에서 초조하게 기다려야 했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참아야 했다. 대기실에서는 울 수가 없었으니까. 온몸이 덜덜 떨려서, 어쩔 줄 몰랐지만 안 그런 척.


그리고 내 이름이 불렸고, 나는 선생님을 보자마자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사진은 오늘 옷장을 정리한 주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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