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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Oct 16. 2021

계절은 도무지 나아지지 않았다.


지금부터 한 삼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 나는 그때 당시에 일하러 가는 ‘나’를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잘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어렸을 적부터 꿈을 꾸었던 어엿한 직장인. 어른이 된 기분에 항상 즐겁진 않았어도 노력은 했던 것 같다. 프로는 못 돼도 프로페셔널한 자신이라고 착각하며 하루하루 성실히 살고 있었다. 나름대로.   

   

참 귀엽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가 예쁘게 입고 다니라고 사 준 옷가지들을 입고, 신발 신고 가방을 챙긴 후 문을 닫는 그 순간도 좋았다. 어른이니까. 나는 정말 어른이니까.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출근하러 가는 그 시간. 또각또각…뚜벅뚜벅, 다양한 발걸음 소리를 내며 한 손은 주머니를 찔러넣고 걸음을 옮기는 직장인들과 부대끼듯 출근하는 것조차 행복했다. 그땐 힘들었어도 내가 좋았기 때문에 마음에 실금이 가도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의 실금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여기저기로 파편이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서 완전히 바스러져서 조각나기까지 시간은 걸렸지만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다른 조각들이 몇 번이나 여기저기로 튀었지만, 얌전히 그 조각을 쓸어 모아 제자리에 두어 준 친구들이 있었기에, 잃어버린 조각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갔다. 글로 다 풀기엔 어려운 아주 어두운 일들이 나를 좀 먹어 가면서.     

 

이 외로움이 좀 나아지면 좋겠건만, 내가 가지고 있는 배경은 조금 더 따뜻했으면 좋겠건만, 꼭 사랑받을 자격 없는 한 인간이 된 것 같았다. 숨을 끊을 수도, 내뱉는 것조차도 쉽지도 않았다. 그렇게 많이 울었었다. 외롭다고. 너무 외로워서 목이 콱 메여서 차라리 죽었으면 했었다. 사람이 싫었고, 지나가는 사람마다의 숨결도, 입김도, 옷깃 스치는 것 마저도 불쾌했었다. 유일하게도 싫지 않았던 것들은 친구들이었던 것 같다. 조금은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진심으로 사랑하진 못했다. 내가 아팠다는 이유로 그들을 사랑하기보다는 기대기에 바빴던 시간들이 많았고, 힘이 들면 살려달라고 울었다. 그러면 걱정되는 친구들은 내가 옥상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막거나 이야기를 하기를 기다려 주었지만 끝내 하지도 않았다.      


버림 받을까 겁냈던 거냐고 묻냐면 아니다. 이해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고, 어딘가 한구석에서 믿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나를 도와달라고 할 수가 없었던 철부지만 존재했다. 그냥, 생각해보면 막무가내로 응석 부리기 바쁜 응석받이였던 거에 불과하지만.     


그렇게 그런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일하는 즐거움도 서서히 잃어가면서 돌연 퇴사하기를 선언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좋아서 일하고 있었던 곳이었는데 회사의 소위 상사분들은 그저 회사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직원은 안중에도 없구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떤 회사이던 간에 공통적으로 회사는 적은 비용으로 고수익을 바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생각이고, 그 안에서 좀 더 융통성을 보이는 것의 차이라는 것은 전혀 생각이 들지 못했다. 그냥, 적은 비용으로 큰 수익을 내길 바라는 회사가 욕심쟁이 같아 보였다고나 할까. 나라도, 작은 비용으로 좋은 것을 얻는다면 좋아할 거면서. 참, 어린 시각이었다.      


그렇게 이 년이 흘러 올해 2월. 여전히 자리 잡고 있었던. 많이 썩어버린 곰팡이와 유리 조각들은 고쳐지지 못한 채로 소꿉놀이와 같은 짧은 사랑에 완전히 무너져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닫혀있었던 문은 더 단단히 걸어 잠그고 온종일 우는 데에 전념하기 바빴다.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이유, 그 모든 의미를 잃어버린 채로 하루 종일, 나라는 사람의 의미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라는 이유에 머물러 우는 시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영영 오지 않는 봄이라며, 신기루 같은 존재라며, 밤마다 울다 지쳐 잠들었던 안타까운 시간이 시작됐다.


#사진은 악동 너구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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