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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Oct 16. 2021

봄에서 여름까지.

어떻게 오셨어요?

그 한마디에 후두둑 쏟아진 마음들은 좀처럼 진정되지 못했다. 내가 그때 말했던 말은 창피하게도 ‘살려주세요’였다. 물가를 보면 뛰어들고 싶었어요, 길가의 차들을 보면 차들이 나를 치어주진 않을까 일말의 기대도 했어요. 제일 힘든 건 따로 있구요. 근데 그건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아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세상이 예뻐 보이지 않아요. 이러저러한 이유들은 저를 너무 아프게 한지가 꽤 됐어요. 이곳을 오려는 결심은 3년이 걸렸고요.     


울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왈칵 쏟아버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망했다고 생각했다. 아주, 아주 차분하지는 못해도 똑바로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뭐람. 쿵쾅거리는 심장, 어디로 둬야 할지 모르는 시선과 눈물을 닦아서 울어버린 휴지조각을 만지작대고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기다렸다. 사실 선생님이 말씀할 틈도 없었다.     


너무, 토해내고 말했기 때문에. 빨갛게 올라온 눈, 짠기가 가득한 눈물로 뒤덮은 볼은 마스크마저도 축축하게 적셔놨다. 선생님은 한참을 들어주시더니 더 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 검사실로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창피했다. 병원에서 우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나만 숨이 차도록 울며 나왔다는 게.

     

사실 눈물 하니 떠오르는 추억들은 꽤 있다. 세상에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느꼈을 때가 꽤 많아졌다. 지금은 잘 울지 않지만, 가끔 마음이 울적해지면 떠올리곤 한다. 이렇게 울고 있어도 시선은 회피하고 코를 훌쩍거려도 모른 척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안도감 같은 따뜻한 숨. 술을 먹고 돌아가서 새벽이 되는 시간, 택시에서 잘못 내려 한 시간을 비척비척 걸어가다 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나를 지나치지 않고 따뜻한 음료를 손에 쥐어주고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준 이름 모를 아저씨. 그날, 돌아가는 길이 슬펐지만 감기 걸리지 않고 돌아갈 수 있었다.

눈물은 아플 때가 많았지만, 따뜻함으로 채워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 물론 안는 건 질색팔색 했겠지만, 품에 안기도록 도와줬던 너구리까지. 너는, 내가 죽을때까지 잊지 않을거야….     


아, 감상이 너무 길다. 어쨌든 그 뒤로 나는 검사실에서 다양한 검사를 2시간쯤 한 것 같았다. 그리고 건네받은 약을 2주를 복용 후 보자고 하셨다. 솔직히 믿지 않았다. 약으로 내가 나아질 수 있을까, 이 조그마한 알약들이 나를 변화시킬 수 있을지 의심이 너무 가득했다. 선생님을 불신한 건 아니지만, 내가 먹는 약이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효과는 2주부터 라고 하니 찜찜하지만 일단 먹어보기로 했다.     


처음은 부작용이 좀 셌던 것 같다. 울렁거리고, 두근거리는 것들….

너무 놀랐지만 먼저 ADHD를 겪었던 친구가, 당황하지 말고 병원에 전화해서 약에 대한 증상을 말해주면 좀 더 수월해질 거라고 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울렁거릴 수 있는 약을 반알로 조절해 먹은 뒤 약속한 2주 뒤에 내원을 하라고 하셨다. 그 2주를 겪어가며 느꼈던 첫 일기가, ‘얼마나 아팠을까’였다.    

  

그동안 아파했던 내가 조금씩 분리되며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과 감정은 다른 분야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부터, 화가난다는 것은 감정의 분야, 생각의 분야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꽤나 놀랐다. 그래, 화도 감정의 일환. 그렇지만 그게 꼭 사람을 미워한다는 생각으로 미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지금 지나는 감정에 불과하기 때문에. 미움으로 가는 길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될 때.


크림이는 마음에 여유가 없구나.     


그 말을 했던 어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마음의 여유가 한참이나 없었던 친구였던 거다. 그 뒤로 꽤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늘 어딘가 불안했던 마음들은 사그라들기 시작했고, 차를 바라봐도 나를 치어주길 바라진 않았다. 나무 그늘 아래로 서 있을 때 저 멀리 보이는 햇볕이 따뜻해 보이기 시작했고, 물가를 지나도 물은 더 이상 내게 아무런 유혹을 하지 않았다. 거리를 지나갈 때의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도, 지하철 소리도, 버스 소리도. 지겹지가 않아졌다.   

  

한 달이 됐을 때 생각했다. 건강해지기 위해서 부지런히 노력하고 행복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행복해지지 않으면 사람들은 행복해지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그 생각이 행복했다.

그렇게 쭉 6월까지 때로는 우울의 파도를 거닐다가도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약도 한 몫했지만, 그때는 정신적으로 다들 끊임없이 응원해줘서 금방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아,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노래가 나를 많이 지탱해줬다. 금방, 우울해져도 괜찮아. 그까짓 거 뭐. 우리는 이겨낼 수 있어. 또 보자고 해!    


걱정 마, 괜찮아. 잘하고 있어.

요즘은 좀 기쁘니? 그렇게 보여서 다행이야.

우리 조금만 마음의 울타리를 내려 보는 게 어떨까, 네가 이상하다는 게 아냐.

그럼 조금만 더 행복해질 거 같아.   

  

사람의 생각을 진심으로 공감해줄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심장이 때론 두근거리기도, 시큰거리기도. 즐겁기도 했다. 조금은 빨리 찾아갈 걸…. 하며 자신을 너무 아프게 놔뒀다는 죄책감도 살짝씩 들어서 슬퍼지곤 했지만. 가끔 그런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그럴 운명이었던 거라고. 다 때가 있다고.


행복해지기 위해 여기까지 온 거라면 좀 억울하지만 괜찮은 것 같았다.

그 후 한참 나아진 나는 인스타에 작은 편지를 올렸다. 생일을 앞두고 있었고, 그때에도 다른 질문들을 찾아서 어떻게 고민해야 하는지 같이 고민해주는 친구들과 고민하고 있었다. 마지막은, 언제나 내 옆을 지켜주던 너구리와 편하게 탁 트인 공원에서 나는 무알콜 맥주, 그 친구는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동안에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 들었었다.     


아마도, 이제 겨울을 지났던 것에 불과한데 봄을 거닐며 바로 여름에 갈 수 있겠다고 생각한 모양인 듯 했다.

그 후 나는 인스타에 첫 편지를 남겼다. 지금 이 글의 시초이자, 내가 글 쓰는 이유이다.    


          




친구와 까페에서 이야기 했을 때,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선물들을 잔뜩 나열하고 자랑하고 싶었는데, 너무 창피한 기분도 들어서. 몇 개만 추려서, 지난 반년을 정리할 겸. 오늘이 너무 행복했기 때문에 간직하고 싶어서, 또 또, 짧은 글을 써 보려 한다. (아, 너무 오글거려)

참고로 여기에 그대 선물이 없다고 슬퍼말라. 나는 다 내 마음 창고에 넣어뒀으니.     


뭐 부터 이야기 할까, 많이 이야기 하고 싶지만. 한껏 압축해서, 다 압축해서 이야기해서. 오늘이 가장 기억하고 싶은 이유는 따뜻함 보다는 조금은 시큰해서인 것 같다. 여러 이유로 너무 너무 아팠다. 이야기를 그렇게 하고도, 그러고도 모두가 잠든 밤에 혼자 울기도 하고, 햇빛이 있어도 행복하지 않았고, 그렇게 나를 위해서 해주던 어떤 말들은 고마웠으나 빈 허공처럼 돌아서 빠져나가 그대로 외로움으로 자리하거나, 있지만 온기로 꽉 차서 따뜻하게 가지고 있고 싶다고 생각은 못 했었던 것 같다. 그래. 그렇게 쭉 안정을 찾아가고 있기 전 까지는 아마 그렇게 잠시 따뜻했다가 허공을 돌다가 그랬다.     


최근까지, 바로 어제까지도 고민하던 것들이 있었다. 중간이라는 울타리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걸까? 라고.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할 지 모르겠으나 그 고민을 풀어주게 만든 건, 친구의 단 한마디 였다. 나의 과소비를 사랑해주어 고맙다 라고.


이 느낌을 표현을 잘 못하겠으나, 내가 너에게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그렇게 느껴져서, 중간을 만든다는건 이런 느낌이면 되지 않을까.


내가 지금도 사랑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 자기 자신의 대한 사랑도 있고, 그 사랑을 나에게든 타인에게든 주는 걸 아까워 하지도, 힘들어 하지도 않았다. 언제 어떤 시간이든, 묵묵히 응원하고, 들어주고. 응,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더 성장할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을 단 한마디에 찾았다.    

 

오늘을 축하해준 친구들이, 마치 네 빈 곳을 알고 있어. 오늘은 그걸 까맣게 잊어 버릴 수 있게 빈틈 없이 구석구석 채워 줄게. 이게 내가 너의 대한 사랑이야. 이 사랑을 너에게 줄 수 있게 해줘서. 내 사랑을 사랑해줘서 고마워. 라고. 그리고 그 말을 내가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주는 마음을 담백하게 전달할 수 있는 작은 어른으로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사실은, 완벽할 것 같아도 다들 한번씩은 그렇게 미완성에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려 하지 않나 하는.     


참 좋았다. 약간은 쓸쓸한데, 어떤 사랑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이 다음의 사랑은, 내가 널 사랑할 수 있는 표현하는 방법은 참 많은데 참 담백하게. 그러나 사랑할 수 있어서 감사할 수 있는 사랑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어느 기억에 그 미완성, 다른 어떤 아픔들도 다 잊어버릴만큼. 사랑은 아마도 그런게 아닐까 하고 여겨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아주 따뜻하고 담백한 사랑이 있는 사람으로. 그게 아마,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준 사랑의 방식이기도 하고.   

  

날씨는 여름인데, 이제야 겨울을 지나 봄 옷을 입고 나가는 기분. 이제 여름으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여름으로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안다.

내가 도전하는 것들이 미약해도 여전히, 또 들어주고. 지켜봐주고 응원해줄 거라는 걸.


여름에 가고 싶다.     

여름에 갈 수 있게 해주는 내 모든 따뜻한 친구들.

오늘 하루 감사했습니다.

이 말을 하고 싶었어.



#사진은 오늘 닭발과 소주를 먹는 벨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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