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림 Oct 18. 2021

있잖아.

   

있잖아. 나 발에 걸려 넘어져서 멍이 생겼어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이야. 있지, 엊그제까지만 해도 자신하며 오늘 아침에 눈을 떴는데 일어나기가 싫은 거야. 그래서 또 두 시간을 잤는데 나는 있지. 나만 가진 특별한 무기는 아닌데 꿈인 걸 알아채곤 해. 그래서 가끔은 그 세상 사람들은 마스크를 안 쓰는데 나만 마스크 써야 한다고 발 동동 구를 때도 있고 하늘을 마음껏 날 수도 있어. 실제로 몸이 뜨는 듯한 그 감각은 정말 이상해. 넌 겪어봤니?


우주에 가는 느낌 하곤 다를 거야. 그런 꿈을 꾸곤 해. 오늘은 내가 세상과 단절될 뻔했는데 간신히 세상을 비집고 나왔어. 다시 원래대로 왔어.      


오늘 서점에 갔어. 내가 보고 싶었던 시집이 있었는데 그건 광화문에나 가야 있대. 그래서 고민했는데 갑자기 너무 숨이 막히는 거지. 거기엔 언어의 대한 정의를 나눠주는 책도 있었는데 살까 말까 고민했어. 친구가 내 글이 너무 좋대서 진지하게 탐구하려다 너무 한껏 허세가 젖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도 들더라. 뭔가 너무 창피한 거야. 그래서 내려놓고 서점을 나왔어. 너무 숨도 불편하고 속이 이상해서.  

   

그러다 문득 생각난 거야. 내 키 큰 친구가 자신의 친구가 너무 슬픈 말을 들었는데 마음이 아프더래. 들었는데 세상엔 너무나 자기가 잘난 줄 아는 사람이 너무 많아. 어떻게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깔아뭉갤 수 있지 하며 고민하다가 나는 그 애에게 편지를 써볼까도 했어. 오늘 난 나올 때까지 숨이 쉬는 게 너무 불편했는데 그 애도 그런 날이 있었을 것 같아서.     


숨을 또 뱉고, 뱉어도. 온 마음에 차지 않는 거야.


내 앞에 있는 물건에 어떤 온도도 없어. 그냥 그저 그렇게 있는 거야. 근데 지고 싶지 않은 거야. 그래서 억지로 나왔는데 그것 때문에 탈이 난 건지 무엇 때문에 탈 났는지는 모르겠어. 근데, 있지. 세상에는 시간이 약이 안 되는 일도 있고 숨도 쉬어지지 않는 순간도 찾아와. 지나가는 사람마저도 그냥 부러워지거나. 어제까진 그래도 커다란 내가 있는 것 같았는데 손톱보다 작은 내가 있는 기분을 느끼는 때가 와. 아니 어쩌면 더 작아진 게 맞을지도 몰라.     


있잖아. 나는 여기까지가 한계일까 무서워하고 있어. 나는 어제처럼 예쁘게 보이고 싶었거든. 나는 괜찮아지고 있다가도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에 바닥에 넘어지는 애라고 보여주고 싶진 않았거든. 근데 보여줘야 할 것 같은 거야. 너무 창피해도 보여줘야 할 것 같았어. 그런데 또 기어이 그러고 말 거야. 넘어진 애로 있기는 싫어서 보란 듯이 먼지 털고 일어나는 모습도 보여주고 허세도 부리겠지. 나 괜찮아라며.     


나도 다르지 않아. 시간이 걸려도 좋아. 내 창피한 모습을 보여줘서 네가 나와 다르지 않다고 느껴서 위안이 얻어진다면. 말라붙은 마음에 물기가 조금이라도 생긴다면. 나는 창피해도 어제는 커다랬는데 작아졌다고 실토해 줄 수 있어. 근데 생각해 봐.


너도 갖고 있지 않니? 창피하게 있어도 따뜻하게 웃어주는 친구들. 나는 그래서 창피해도 보이는 거야. 꼭 웃어주는 게 나한테 주는 어떤 안도가 있어. 그러니 넘어져 있다가도 일어날 수 있어.     

그러니 그런 기억에 넘어졌다 해도 네가 작아져 너를 탓하면 안 돼. 그냥 넘어진 거야, 그뿐인 거야. 넘어진 게 창피하면 조금 있다가 일어나면 돼.

그렇다고 얼른 일어나겠다고 무리도 하면 안 돼.

넘어지면 다시 일어날 힘이 필요해. 그러니 조금만 넘어져 있자. 일어날 수 있으니까.    

 

우리 조금만 그러자


# 키가 큰 친구의 친구에게.

# 사진은 못된 너구리가.

이전 03화 봄에서 여름까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