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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확진자이지만 가해자는 아닙니다

코로나 완치 후의 차별과 혐오의 벽에 관하여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완치 판정을 받은 후 첫 출근날, 동료들한테 나눠주려고 대추를 가져왔어요. 그런데 동료들이 보균자가 음식을 나눠주면 어떡하냐고 욕을 하더라고요."
서울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던 김명순 씨(가명. 여)에게 코로나 19 감염병보다 무서운 건 주변 동료들의 인격 모독성 발언과 차별이었다. '너 때문에 동일집단(코호트) 격리됐다.',
‘2주 더 있다가 오지 불안하게 왜 벌써 왔냐' 업무에 복귀한 요양보호사 김 씨가 들은 말이다. 9월 초 생활치료시설에 입소해 약 17일간 코로나 19 치료를 받고 완치 후에도 2주가량 집에 머물렀지만 동료들에게 그는 어느새 '기피대상 1호'가 돼 있었다.                                                               (2020.10.24. NEWS 1 기사 발췌)




어느덧 브런치에 서른 번째의 글을 쓰게 되었다. 코로나 확진자가 된 첫날,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면서도 작가 승인을 받을 거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한 첫날밤을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아침에 지친 몸을 일으켰는데 알림 하나에 눈이 번뜩 뜨였다. 브런치 작가가 된 걸 축하한다는 알림에 용기를 얻은 나는 연이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낙인을 받은 그 감정이 조금이라도 퇴색될까 봐 휘몰아치듯이 글을 써 내려갔다. 처음에는 구독자도 없고 댓글을 써 주는 이 하나 없었지만,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기 바라는 마음에 시작했던 일이 아니었기에 그것이 내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오로지 나 하나 살기 위함이었다. 인생이라는 게 내 마음과 계획대로 온전히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지만 내가 코로나 확진자가 될 거라고는 0.00001도 생각하지 못했던 터라 나의 코로나 확진을 믿기가 어려웠다. 워낙 많은 이들의 검사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혹시 내 것과 다른 사람의 것이 혼동되어 내게 잘못된 문자를 보내준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을 만큼 그럴 리 없다고 철썩같이 믿었다. 하지만 곧 사방팔방에서 쏟아지는 전화와 1층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구급차 기사님의 전화에, 난 모든 것을 체념했다. 불안과 우울이 나를 바닥 끝까지 밀어 넣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살기 위한 발버둥으로 내가 사랑하는 글쓰기를 선택했다. 토할 것 같은 감정들을 죽을힘을 다해 글에 쏟아놓고 나면 허탈함과 감사가 동시에 밀려왔다.


그렇게 <코로나 옥중일기>를 매일같이 쓰기 시작한 내게 어느 순간 정말 소수이지만 구독자분들이 생겼고, 내 글에 라이킷과 응원의 메시지를 댓글로 달아주는 분들로 나 또한 새 힘을 받게 되었다. 글 속에서 묻어나는 모습 외에는 내 얼굴과 나라는 사람을 알지도 못하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나의 퇴원을 바라는 분들을 통해서 불안과 우울을 끊어낼 수 있었다. 내 글을 읽고 지나가는 이들 중에 나처럼 코로나 확진자들이 꽤나 많았다. 조용히 내 글을 읽고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내 모습을 보며 동질감과 위로를 얻으며 나름의 안위를 찾지 않았을까. 정말 그들이 내 글을 통해 그랬다면 나는 그걸로 됐다. 그걸로 행복할 뿐이다.




사실 나는 그랬다. 나와 같은 확진자들이 내 글을 꼭 봐주었으면 했다. 코로나 확진을 받지 않은 이들에게는 하나의 소설처럼 보일지 모르는 글이지만, 코로나 확진자들에게 세상을 향해 다시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소망했다. 그리고 나는 또 생각했다. 코로나 확진이 별나라의 일 또는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어쩌다 스치듯 읽게 되는 내 글을 통해, 코로나 확진자들이 누군가를 힘들게 하는 가해자가 아닌 나름의 피해자임을 알아주기를 바랐다. 우리 같은 사람들 또한 국가적 재난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한, 나름의 억울한 피해자임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어제 우연히 인터넷 뉴스를 통해서 본 저 글 하나에 내 마음은 굉장히 쓰라렸다. 날카로운 종이에 베인 칼자국에 물이 닿는 듯한 느낌이었다면 이해가 될까.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코로나 19 감염증을 어렵게 이기고 최종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고 살아 돌아온 나름의 전쟁 용사 같은 우리에게, 여전히 돌아오는 건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닌 차별과 혐오의 눈빛이라니. 믿고 싶지 않지만 그것이 차가운 현실이라는 것을 나 또한 여러 매체를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나는 관내 192번째 확진자이다. 서울시에서는 5239번째 확진자이고, 전국을 통틀어서는 23,685번째 확진자이다. 오늘자(2020년 10월 25일) 0시 기준으로 25,836명인 확진자들 중에 나는 한 사람이다. 대략 5,100만 명 이상이 되는 대한민국 국민들 중에서 약 0.05% 정도의 사람들이 코로나 19에 감염되었는데, 0.1%도 안 되는 희박한 그 확률에 내가 포함되었다는 것이 실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앞서 쓴 많은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워낙에 낯선 사람들을 많이 대하는 직업의 특성을 가진 은행원이다 보니, 올해 초 코로나 19가 미친 듯이 확산될 때부터 내 몸 하나 지키겠다고 갖은 노력을 했었다. 집에서만 두문불출했던 것은 아니지만 마스크를 생명줄처럼 여겼고, 손을 하도 씻어서 손등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지고 말라 아팠던 날들도 있었다. 여행도 자중하며 가족, 특히 다섯 살배기 아들을 지키기 위해 감염병 예방수칙을 철저히 지켰던 사람이다. 소위,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무지해서 또는 예방수칙을 어겨서 코로나 확진이 되었다거나 한 것이 아니라는 거다.


나는 현재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은 했지만, 내 접촉력에는 여전히 '감염경로 조사 중'으로 되어 있다. 다른 확진자들의 접촉력이 '가족 확진자 관련' 또는 '기타 확진자 접촉'인 것과는 달리 여전히 조사가 진행 중인 '깜깜이 환자'인 것이다. 내가 확진자가 되었을 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어머! 웬일이야, OO야~ 내 주위에서 정말 네가 처음이야. 이렇게 가까운 사람이 확진자라니 진짜 믿어지지 않는다...." 이거였다. 생각보다 주위에서 확진자를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0.1%도 안 되는 희박한 확률이니 어쩌면 당연한 거다. 그러하기에 어쩌면 마녀사냥이 더 쉽고 재미있을지 모르겠고, 특별한 감정 없이 안주거리로 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말하고 싶다. 우리 같은 코로나 확진자들은 이미 한 번의 불안과 우울의 벽을 넘었다. 이틀에 한 번꼴로 시행하는 코로나 검사에서 '음성'이라는 그 한 마디를 듣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홀로 있는 외로운 시간들을 견뎌냈다. 어렵게 어렵게 '음성'을 받고 가족과 상봉을 하고 원래의 내 자리인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름대로 집에서 2주간의 시간까지 두어 가면서 몸과 마음을 준비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것이 '코로나 확산의 가해자'라는 오명뿐이라면 그 누가 다시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나 또한 2주 정도의 휴식기를 거친 뒤에 은행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남아 있는 인병휴가 일주일에 내 개인 휴가를 더해서 말이다. 원래부터 11월 둘째 주에 5일 휴가가 잡혀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된 상황에서 딱히 어디를 갈 수도 없다 보니 한 주 더 당겨서 쓰면서 온전한 휴식기를 가질 생각이다. 처음부터 나도 이런 생각을 했었으나 내가 속한 영업점에서도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냐며 조심스레 의견을 물어왔었다. 사실 글 첫머리에 기재한 뉴스 속 이야기의 동료들과 같은 마음으로 내게 이렇게 제안한 것은 아니다. 아니, 아니라고 믿고 싶다. 내가 퇴원을 하던 날, 은행 동료들이 속히 지점에서 다시 만나자며 연락들을 해 왔었기 때문이라며 어쩌면 나 스스로를 위로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코로나 확진을 받았던 우리도 사람이다. 최대한 우리로 하여금 타인이 불편한 마음을 가지기를 원하지 않을뿐더러, 우리 스스로에게 시간적 여유를 두어 면역력을 회복시키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을 한다. 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박하다. 많은 확진자들이 세상의 편견을 이기지 못하고 퇴사를 결정했다는 이야기를 매체들을 통해 나도 많이 접했다. 아직 나 또한 세상으로 완전한 복귀를 한 것이 아니기에 그 말이 전부 맞다, 사실이다 라고 이야기는 못하겠다. 다만, 이후에 써 내려갈 글에서 내가 여전히 따뜻한 세상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소한 바람이 있다.


정부가 여러 가지 실태조사를 통해 코로나 확진자가 겪는 차별 정도를 파악하고, 차별과 혐오를 줄일 수 있게 노력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나 또한 이것이 국가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도 위의 기사에서 말하고 있다.

"병에 걸린 사람들은 사회적 지탄이 아닌
배려와 보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오늘로써 나의 <코로나 옥중일기>는 막을 내린다. 거의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부족한 나의 글을 통해 스쳐 지나간 많은 분들과 소중한 구독자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온 마음 다해 전해 본다. 때로는, 글을 써 내려갔던 첫마음과 다르게 ‘소소하기 그지없고 개인의 치부와 맞닿은 글이 사람들에게 읽히기나 할까', '읽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라는 생각에 글 쓰는 것을 접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 옥중일기>는 처음부터 내 영혼을 위한 일이었고, 이를 통해 내 마음의 상처가 어느 정도 치유되었으며, 이 글들을 통해 나를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들이 글에서 느껴지는 내 마음 변화로 걱정의 무게가 줄어들었고, 가끔씩 내 글이 같은 상황에 마주한 확진자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줄 수 있었음에 그걸로 나는 정말 감사한다.


얼마 전에 내가 있었던 병원의 한 간호사 선생님께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내가 썼던 글 하나(19. 코로나, 코로나와 싸우는 사람들)로 우리는 서로를 공감했고 서로를 통해 위로 받았다. 간호사 선생님께 메일을 받은 나는, 글이 주는 힘과 위력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닫고 글이란 것을 칭송하게 되었다. 글에는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글에는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있다. 그러하기에, 이 <코로나 옥중일기>는 마무리되지만 나는 또 새롭게 나만의 글을 담담히 아주 천천히 써 내려갈 것이다. 그동안 저에게 용기와 사랑을 주셨던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저의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모두들, 안녕.


OOO님, 안녕하세요!
퇴원하시고 잘 지내고 계신가요~
OO병원 코로나 19 병동 간호사입니다.
용기 내어 연락드려요.

저희는 올해 초부터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싸우면서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어요.
고립감과 외로움에 사무치기도 하였고,
끝나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사투에
지치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 OOO님의 글에
모두 감동받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다른 환자분들도 격려와 응원을 해 주셨지만
OOO님의 글에 부서원들이 모두 공감하고
생채기 난 마음에 치유가 되었다고 할까요~

올해는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많은 사람들이 격리와 죽음을 경험했어요.
단절, 애도의 상실...
많은 것이 생략되고 그렇게 되어가고 있어
슬프지만, 글은 큰 힘이 있더라고요!

대면하지 않고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는 소속감을 느끼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에요.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시겠지요.
항상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덕분에 따뜻하고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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