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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연 May 15. 2023

#3.선배들 다알아. 사직서 던질 후배, 월급루팡 후배

#3. <I형 인간의 팀장생활>




“너 이거 내가 아까 고치라고 했잖아. 내 말 귓등으로도 안 듣지? 너 업무에 집중 못하지? 너 회사가 우습지? 내가 우습지?”




그가 또 소리를 질렀다.



지적 사항들을 꼼꼼히 체크한다고 했는데도 결국 오타 하나를 놓친 것이었다.



나는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태도가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필이면 그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던 애틀란틱 코리아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은 날이기도 했다.



그의 샤우팅이 탈락의 설움과 맞물리면서 그간 간간이 지탱해 온 감정의 둑이 툭 하고 무너져 버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으어어엉 엉엉엉!!!!!”




예상치 못한 나의 반응에 그도 당황한 듯 보였다.



한참 후, 설움을 토해낸 그 자리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하지만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할지를 몰라 고개를 숙인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진 사원 일어나요. 여기서 이러는 거 아니야. 뭐하는 거야 어른이.”





서 팀장이었다.



그녀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나 어른이야.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고, 집도 살 수 있는 성인이지.



서 팀장은 지인도, 말도 섞어본 적 없는 옆 팀 차장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다가온 것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의지하는 척하면서 휴게실로 도망쳤다.



“진 사원, 아니 진서연. 너 회사 그만두고 싶은 거 다 아는데. 사표 내기 전까진 좀 열심히 하면 안 되니?”



“네?”




“다 티 난다고. 너 모를 거 같아도 선배들 다 알아.


언제라도 사직서 던질 후배,

기회되면 단물만 빼먹고 이직할 후배,

의지도 열의도 없이 가늘고 길게 월급루팡 마음먹은 후배,


다 안다고.


나 차장이 저러는 거 알아서 그러는 거야.

더 갈구는 거라고.


그러니까 티 좀 안 나게 해라 좀.”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기 소개서는 집에서 썼고,


채용 공고는 사무실에 아무도 없을 때,


화장실에서, 폰으로 했다.



그래, 면접을 보기 위해 딱 한 번, 휴가를 낸 적은 있다.


신입이라 연차가 없어 나 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요. 어쩌죠. 흑흑흑. 저를 키워주신 할머니.. 흑흑흑.”




거의 이런 눈으로..




티가 났다면 그게 티가 났을 것이었다.



더 구슬프고 아프게 울었어야 했었을 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늘 밤에 뭐하냐? 나랑 술이나 먹자. 너 땜에 내가 오늘 술이 당긴다.”



그날 난 처음으로, 회사 상사와 술을 마셨다.



대외적으로 나는 ‘술을 마시면 유전적으로 몸에 큰일이 나는’ 사람이었다.



나 차장에게 그렇게 얘기했다.



그래서 팀 내 회식에서도,


그 어떤 술자리에서도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너 내 동생해라. 내가 언니 해줄게. 힘든 거 있음 나한테 얘기하구. 혹시 또 다른 회사 이력서 쓸 일 있으면 이력서도 봐줄게.”



나는 그녀의 말에 의심부터 했다.

저 사람, 나한테 뭐 바라는 거 있나. 왜 저래.



“저한테 왜 그러시는 거예요?”



그러자 그녀가 그런다.




“옛날에 내가 그랬거든. 난 여기가 두 번째 직장이야.

사수가 사이코패스에 진상 중의 개진상이어서 이직했어.

근데 놀라운 건 여기도 똑같은 인간들이 수두룩해! 그 때 깨달았어.


회사는 어딜 가나 거지같구나.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지만 갈 곳 없는 중은 그냥 살아야겠구나!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지.

일 터지고 짜증날 때마다 ‘내 더러워 때려친다!’ 하지않고

‘오~ 또 하늘이 날테스트 하는구나!’ 생각해. 그럼 뭐 견딜 만 하더라고.”


“옛날 생각이 나서 절 도와주신 거라구요?”


“아니, 내가 죽을 거 같아서 말야.

만날 효자손 욕받이 하는 널 보는 게 나는 너무 괴롭다.

떠나지 못할 중생 주제에 그냥 처지 같은 중생이나 구제하자 뭐 그런 거지.”


“풉. 효자손.”



우리 둘은 나 차장을 ‘효자손’이라 부르며 킥킥 댔다.







그 날의 술자리 이후 나의 아침은 변했다.



6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더 이상 지각은 없었다.


직장 내 아군이 있는 것만으로도,


공공의 적이 생긴 것만으로도,


궁금한 게 있으면 부끄러움 없이 물어볼 수 있는 선배가 있는 것만으로도


지옥이 천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너 팀장으로 간 거라며?’



서 차장, 아니 서 팀장의 카톡이 왔다.


나는 그녀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다.



“선배, 나 어째요.”


“어쩌긴 어째. 해볼 수 있을 때까지 해봐.

내가 예전에 한 말 생각 안나? 하늘이 널 테스트하는 거야.

한 번 테스트 받아 봐. 풀다보면 답이 나오겠지.”


“문제가 뭔지도 모르겠는데 어떻게 풀어요.”


“문제가 수학 공식처럼 딱 보이는 줄 아니? 겪어봐야 아는 거지.”


“하아.. 이번엔 선배 말이 전혀 위로가 안 되네요...”


“푸하하하. 너 위로받을 연차 아니거든. 이제 네가 후배들 위로 좀 하고 그래라.”


“저 선배 안하고 후배만 할래요.”


“얼씨구. 얼른 후배 받아서 잡일 다 미루고 일 시키고 싶다고 한 사람이 누군데.”



그러니까요 선배.


후배한테 일이나 미루고 책임은 안지는 그런 선배,


팀원한테 일시키고 노는 팀장, 그런 거 어디 없나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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