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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연 May 12. 2023

#2. 출근한 지 한 달째, 나는 사직서를 고민했다.

#2. <I형 인간의 팀장생활>



제 2화 나의 슬기로운 신입생활




이 곳, 주식회사 DM산업은

나의 1순위 직장이 아니었다.


내가 가장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는

외국계 기업이자 국내 코스메틱계의 1위,

아틀랜틱 코리아였다.


하지만 그곳은 서류부터 불합격을 통보하며

냉정하게 문을 걸어잠갔다.


이후 삼성, 현대, CJ, LG 등

소위 부모님이 내 자식 다닌다며 자랑할 만한(?) 곳에 지원했지만 번번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나는 내가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고 생각했다.


2009년, 당시 모든 기업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으니까.




‘긴축경영’, ‘채용축소’.



2007년 미국에서 건너온 위기란 놈이

대한민국을 잠식해버린 그 해.

당시 국내 한 경제학자가 ‘20대의 95%가 평균 임금 88만원을 받는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게 된다’며

일명 ‘88만원’세대를 주창했다.


바로 내가 그 88만원 세대였다.


https://star.fnnews.com/article/201710251029260226



그러니 취직한 것만으로도

우울의 88열차에서 탈출한 셈이었다.


DM산업의 합격 문자는

동네 카페에서 2천원 짜리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82번 째 자기 소개서를 막 고치고 있을 때 받았다.


나는 그 날 다짐했다.



더 이상 취준생은 싫다!

커피 마시며 카페에서 죽치던 백수는 그만한다!

라떼에 와플까지 시켜먹는 직장인 될거다!

나를 알아봐 준 이 회사에 뼈를 묻으리라!



하지만 출근 한 달 만에 나는

다시 자기 소개서 폴더를 열었다.


DM산업 건물 전체에 퍼져있는

할아버지 은단 냄새 같은 디퓨저향이 너무 싫었다.



이렇게 고루하고 올드한 회사라니!

나 정도면 우아하고 폼나는

애틀랜틱 코리아 정도는 가야하는 거 아냐?!



그러니 무슨 일을 하든 열정이 따라 붙을 일이 없었다.


나는 시키는 일만했다.

일이 많아지면 인상부터 구겼다.

체계적인 신입 교육 없이

어깨너머 보고 배우라는 선배들을 욕했고,

눈치껏의 눈치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눈치를 주니

반항심만 늘어났다.


부서 외 사람을 만나고 아는 것에 시큰둥했다.

퇴근을 하면 바로 집으로 달려가기 바빴다.


그 때 나의 사수가 바로 나선중 팀장이었다.


나 팀장, 그 당시 나 차장은

첫 인상부터가 머리카락을 빼쭉 서게 했다.


찢어진 눈매와 꾹 다문 입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손에 든 효자손 때문이었다.






그는 은색 스테인리스로 된 된 작은 효자손을 부적처럼 손에 갖고 다녔다.


그 효자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며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녔다.


그의 툭툭 소리가 멀리서 들리면

많은 후배들이 허리를 곧추 세우고 긴장을 했다.


고작 6년차였을 때지만

그의 태도나 거들먹거림은 마치 20년된 부장급 같았다.


하지만 선배들 중 그 어느 누구도

그의 태도를 지적하거나 혼내지 않았다.





그는 일명 ‘골드 라인’ 멤버였다.



골드 라인은 한국의 최고 학벌로 꼽히는

한국대 졸업생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여 회사 경영이나 국가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한다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았다.


그들이 모여 하는 일이란

자신들의 인사고과에 영향을 행사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부탁받은 이의 개인적인 사정이 입에 올랐고,

기브앤 테이크는 철저히 이루어졌다.


때문에 소위 골드 라인 '빽'이 없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부당한 일을 겪어야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골드 라인을 적폐라며 손가락질하다가도

피해를 받지 않으려고 알음알음 줄을 섰다.


그중에서도 나 팀장, 즉 효자손은 신입 시절부터 유명했다.


아버지가 무슨 장관 출신이라느니,

대표와 친분이 있다느니 하는 소문이 돌았다.


선배도, 후배도 모두 그의 눈치를 봤다.


그는 자신의 상사가 있는 자리에서

후배들에게 자주 소리를 질렀다.


그 후배들 중에 하필이면 내가,

그것도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신입이

그의 밑으로 인사 발령이 났을 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었다.



‘불쌍한 것, 쯧쯧.’



그는 나에게 화를 잘냈다.


그가 하도 버럭버럭해서

나는 나에게 그에게만 보이는

‘화를 돋우는 장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안 그래도 원치 않는 회사에 입사한 터였다.


불만족은 불안과 스트레스로 커져갔다.


아침마다 울리는 알람이

지옥문의 오프닝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꿈꾸던 직장인의 아침은 이런 것이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에 저지방 요거트와 그레놀라,

그리고 뉴스를 챙겨보는 여유.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늘 급했고 늘 뛰었다.

회사에 들어서기 전부터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가 오늘은 어떤 것으로 트집을 잡을지

또 어떤 것으로 훈계를 할지 매일매일, 매분매초가 긴장이었다.





그날도 사직서를 내는 상상을 하다가

결국 10분이나 지나서야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샤워를 하면서도,

옷을 입으면서도,

머리를 말리고 지하철을 타러 가면서도

‘회사 가기 싫다’는 생각만 했다.



반복된 고민에 머리가 무거우니 걸음이 느려졌다.


그러다 결국 타야하는 시간의 지하철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지각이 확실해졌다.


나는 늦었다는 사실보다

늦어서 혼이 날 상황이 무섭고 싫어서 숨이 차게 뛰었다.


9시 8분 58초쯤

나는 헉헉대며 ‘늦어서 죄송합니다’라고 큰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았다.



등 뒤로 나 팀장의 아주 길고 진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그 때부터 고통의 시계가 째깍였다.



그는 화를 내는 대신 나를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점심 시간에는 밥을 먹는 내내 눈길 한번 주지 않았고,


한 명 한명 짚어가며 묻는 회의시간에는

 보란 듯 나를 건너뛰었다.



그 날 밤 괴로움과 억울함에

이불킥을 하며 뜬 눈으로 밤을 새다 출근을 했다.



늘도 어제처럼 나를 무시하면 사직서를 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상사가 이렇게까지 나를 벼랑끝에 몰아 세우는 건

알아서 그만 두라는 시그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벼랑 끝이라고 생각한 것은 내 착각이었다.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사수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내가 딛고 있는 이 곳이 죽어서 온 천국인지 지옥인지 헷갈렸다.



홀로 마음을 썩히며 천국과 지옥을 오간 24시간이었다.


그 때부터였다.



나는 타이머가 달린 로봇처럼

출근 시간마다 시계를 초 단위로 세가며 움직였다.



6시에 일어나 15분까지 샤워를 하고,

32분까지 옷을 입고,

42분에 집을 나서는 것.

횡단보도를 두 개 건너고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것까지를


타이머를 재듯 움직였다.


뇌를 들어내고서도 할 수있도록 루틴하게,


몸에 익숙해지도록 매일 매일을 그렇게 만들었다.






출근 시간은 그렇게 익숙해져갔지만

끝까지 익숙해지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의 ‘마이크로 매니징’이었다.



그는 모든 것에서

자신의 매뉴얼에 맞는 ‘맞춤형 후배’를 강요했다.


특히 문서에서의 완벽은

그 기준이 너무나 높고 어려워서 매번 혼이 났다.


스스로는 완벽하지 않으면서 후배에게 강요를 했다면

반감이 들었겠지만


짜증나게도,

그의 보고서는 완벽 그 자체였다.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그의 보고서는 가독성이 매우 뛰어났다.


타이틀부터 소제목, 본문으로 이어지는 글자체는

다양하면서도 통일감이 있었다.



나는 그의 보고서를 샘플 삼아 흉내를 내보려고도 애를 썼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어쩌다 완벽에 가까운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생각하는 그 때에도 그는 지적했다.


30센티 자를 대고 주욱 빨간펜을 긋고서는

글자의 라인이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에게 정렬의 흔들림과 위계의 무너짐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용납이 되지 않는 그 어떤 것이었다.


그의 보고서를 받아본 상사들은

소리 내며 감탄했다.


어떤 임원은

그의 보고서를 인트라넷에 게시하면서

팀장, 수석들이 모두 보고 본받아야 한다고 했다.



안 그래도 불뚝 솟은 그의 어깨가

더 올라갔다.

목소리는 더 커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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