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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연 May 09. 2023

#1. ‘차장님. 인사 나셨어요. ㅠ 알고 계셨어요?’

#1. <I형 인간의 팀장생활>


제 1화 어쩌다 팀장



하루 종일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나의 두통이 회사 건물 전체에 퍼져있는 올드 스파이스(old spice)향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건 이 디퓨저 향에 대해 사람마다 다르게 느낀다는 거였는데 그것이 참으로 묘했다.


팀장, 실장급들은 ‘시원 달달한 향’이라며 좋아하고,

사원, 과장, 차장급들은 ‘목욕탕 스킨 냄새’ 라며 싫어하니

직원들은 월급에 따른 차이라며 자조했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후자 쪽이었다.



오늘도 출입문 바로 옆 자동 분사기는 ‘췩’하며 소리를 냈다.



“저게 췩하면, 왠지 집중해야할 거 같고 딴 짓하다가도 멈추게 되고 그러지 않냐? 꼭 우리가 파블로프의 개가 된 것 같단 말이야.”



개는 반사 능력으로 밥을 얻어먹고,

우리는 후각 능력으로 밥값을 얻어가는 꼴이라며 서 팀장은 클클 댔다.


나는 그녀의 농담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도 못한 채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봤다.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에 빛을 더하는 코스메틱 브랜드로서 우리 DM산업은 심플하고, 릴렉스한 가치 소비 트렌드에 맞는 제품 개발에 힘쓸....




약속한 마감까지는 10분.

사내보에 실릴 대표의 말을 곱씹은 지 1시간 째였다.  



“진 차장, 그냥 그대로 가자니까. 아무리 사람들이 보그체니

보그 병신체니 욕해도 우리 업계에서는 다 그러려니 해. 그냥 가.”


“너무 촌스러워서요. 용납이 안돼요 용납이. 릴렉스는 편안한으로 바꿨는데 하아..심플하다는 딱 이거다 싶게 대체되는 말이 없네요.”


“어우 저 고집. 그래봤자 알아주는 사람 아무도 없다니까. 저번에는 뭐더라, 고무되다, 고취되다, 고양되다? 그 단어 고른다고 몇 시간을 끙끙대더니 오늘은 또 뭐 심플? 시간 다 됐어. 얼른 넘겨.”




안 돼요, 도저히 그만 둘 수가 없어요.

꼭 고치고 말거예요. 성격 이상하죠.

이게 바로 사이코패스인가요.

간결한? 간단한?

오 우리 세종대왕님은 왜 이렇게 한글을 다채롭게 만드신 거야.



욱지근. 또 다시 두통님이 오셨다.


나는 마지막 한 알 남은 타이레놀을 입에 넣었다.


오전에 먹은 것보다 150mg정도 용량이 많은 약이었다.


부디 아세트아미노펜의 약 기운으로라도 결정 장애가 해결되길 바라며 꿀꺽 삼켰다.



그때였다.



“헉”


옆에 앉은 박 대리가 비명 소리를 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1초가 아쉬운 상황.

그녀의 키보드가 다다닥 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적병이 침입했다고 알리는 북과 뿔피리처럼 울려대는 것이 심상치가 않았다.



‘차장님. 인사 나셨어요. ㅠ 알고 계셨어요?’



박 대리의 메시지가 모니터 구석에 깜박이며 떴다.


이게 뭔 소리야. 허허 얘가 쉰소리를 하고 있네.

하는데 여기서 카톡, 저기서 카톡.

동시에 핸드폰의 알람까지 드르르르륵 쉴 새 없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진짜 뭐야 인사났어?



‘야 너 소분팀 가냐?’

‘서연아.. 윈트라 봤어?’  



동기들의 메시지였다. 황급히 사내 통신을 접속했다.



인사 공고

(前) 홍보팀 진서연 -> (現) 소비자분석팀 진서연



내 이름이었다.


여러 번 눈을 씻어 봐도 할아버지가 일주일 걸려 지으셨다는 내 이름 석 자가 맞다.


어떤 통보도 예고도 없었다.


배신감과 서운함, 억울함이 밀려왔다. 왜 이놈의 회사는 예고도 없이 매번 뒤통수야!



“팀장님. 저 인사 났는데요. 알고 계셨어요?”




이럴 때 가장 쉽게 손을 뻗을 수 있는 건 서 팀장이었다.



나는 자리에 벌떡 일어나 앞에 앉은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마치 나보다 오래 근무했으니 회사와 더 가까운, 한 통속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서 팀장은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빼더니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한다.



이미 그녀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있었다.



“김 팀장님, 예예. 잘 지내시죠? 다름이 아니라 그...”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사무실을 나가는 서 팀장.



그녀가 간 길을 따라 나도 귀를 길게 뺐다.



김 팀장이라 함은 총무국 인사팀장일 것이었다. 제발 사실이 아니라고 해줘.









‘잠깐 나와 봐.’


서 팀장의 카톡을 받자마자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서연아.. 하아..어쩌냐. 지금 소분팀에서 사람이 급하게 필요한가봐.

거기 경험자가 너밖에 없다는데...”

“경험요? 선배, 그 경험이란 거 신입 때 6개월 있었던 거 그거요?”



둘이 있을 때는 서로 이름을 부르고 '님' 대신 '야'나 '선배'를 쓰는 나와 서 팀장은 회사 내 찐친이었다.



“소분팀 이 팀장 있잖아.

이 팀장 사람은 좀 거지같아도 일 하나는 잘하니까

그냥 닥치고 1년만 나 죽었네 하고 일이나 배우자.

그리고 다시 홍보팀으로 와. 내가 너 책임지고 끌어당길게.

너 없으면 안 된다고 인사팀 앞에서 드러눕지 뭐.”




서 팀장은 미안한 듯 어깨를 두드렸다.

허세라도 서 팀장의 말은 괜히 위로가 됐다.



그래, 일 배우면서 조금만 버티면 되겠지. 뭐 죽으라고 하겠어.

하지만 나는 그 날 오후 바로 알았다.



회사가 정말 날 죽이려고 작정을 했다는 것을.




“진 차장님, 못 들었어요? 나 육아휴직 써요.

와이프가 회사에 급하게 복귀해야 해서 1년간 자릴 비우기로 했는데.

인사팀에서 말 없었어요?"


“헉, 그러면 전 누구한테 일을 배우죠..?”


“아, 인사해요. 저기 우리 표 사원과 신 사원.”






발령이 났으니 짐도 옮기고 인사도 할겸 소분팀을 찾았다.


소분팀은 건물 10층에 있었다.


기획팀과 전략팀, 소분팀 이렇게 세 팀은 기획실 소속으로 회사 경영의 핵심 부서였다.


하지만 경험 많고 사람 많은 기획팀, 전략팀에 비해 소분팀은 팀원 둘에 팀장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팀장까지 휴직이라고?




이 팀장의 말에 표 사원과 신 사원이 부스스 일어났다.



표 사원은 프랑스 영화 여주인공처럼 노랗고 긴 파마머리를 한 여자,

신 사원은 전자상가 앞 홍보 인형처럼 길고 까만 남자.


나는 그 둘에게 눈을 맞추며 까딱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여기 업무는 잘 모르거든요. 많이 가르쳐주세요.”



긴 파마머리와 홍보 인형이 아무 말 없이 곤란한 표정을 짓는데

대신 말을 받아주는 이 팀장.


“뭘 가르쳐줘. 표 사원은 입사한 지 1년, 신 사원은 3개월 됐어.”

“네에에?? 그, 그럼 전 팀장도 없이, 저 신입사원 둘만 데리고 일 하나요?”

“진 차장 입사한 지 10년 가까이 되지 않았나?

그럼 뭐든 잘할 줄 알아야지.

이번 기회에 팀원들 잘 끌어가며 리더십 한 번 발휘해 봐요.”

“리..더 십이요?”



리더십? 그건 혼자 있는 거 좋아하고, 공상 좋아하고,

분쟁과 다툼을 싫어하는 극강 내향형인 나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은 단어였다.



“왜 그런 말 있잖아요.

리더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진 차장님 DM산업의 리더가 되어 팀을 잘 이끌어 보세요.”



옆 팀에서 누군가가 폭소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리더 = 진서연’의 공식을 공개적으로 비웃는 듯했다.


전략팀이었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터진 웃음이었기에 삽시간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다.


나는 소리 나는 쪽을 쳐다봤다.


얼굴은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선중 팀장, 나의 첫 사수, 나의 적, 나의 영원한 빌런.


그렇게 난 팀장도, 차장도, 과장도, 대리도 없는 팀에 떨어졌다.



그것도 적진에.




나는 그렇게 팀장이 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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