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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연 May 18. 2023

#4.팀장하라고? 그럼 주식창만 보고 놀아도 되는거지?

#4. <I형 인간의 팀장생활>




제 3화, 신입(사원), 신입(팀장)을 만나다



이른 아침,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소분팀 팀장으로서의 출근길이 열린 것이다.



동시에 지옥의 문도 열렸다.



신입 때 느꼈던 감정이었다.



저승사자에게 끌려가듯 지하철을 탔다.



영혼이 빠진 사람처럼 손잡이에 매달려 축 쳐져 있는데, 앞에 앉은 여학생이 일어났다.



그래, 하늘도 내가 얼마나 불쌍하면 생전 나지도 않은 지하철 자리를 내줄까.


살면서 법 한 번 어긴 적 없고, 사람한테 상처 준 적 없고, 사고 안치고 늘 효도에 공부만 열심히 한 나다.


그런데 왜 팔자에도 없는 어쩌다 팀장이냐.


나보고 팀장을 하라고?


팀장이면 뭘 해야 하는 건데?


아니다 하긴 뭘 해.


선배 팀장들 보니까 과차장들한테 일 시키고는 주식 창 보고, 부동산 임장 하러 다니던데.





아냐,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인간관계라도 좋아서 허리 굽신, 술 한 잔으로 인사고과 평가는 잘 받지.


우물 안 개구리에 아싸 중에서도 핵아싸인 내가 그랬다가는 바로 잘리기나 할 텐데... 그럼 뭘 해야하는 거지?


내 안에 답이 없음을 직감한 나는 포털 사이트의 검색창을 열었다.




팀장이 하는 일

리더십

초보 팀장



관련 책만 수백 권이 쏟아져 나왔다.

네이버에서 '팀장 리더십'을 검색하면 쏟아져나오는 책들..


이 세계로 입문한 것을 환영해 하듯 온갖 콘텐츠들이 외쳤다.


팀장이 처음이니? 팀장의 리더십이란 게 있단다.


80년대생 팀장이 90년대생 대리와 잘 지내는 법은 아니?


라떼는 말이야 하는 선배하고도 잘 지내야 하고, MZ 후배랑도 잘 어울려야 해.


이게 무슨 모든 창을 막는 방패와 모든 방패를 다 뚫는 창 같은 소리야.



“이번 역은 양재역, 양재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지하철의 문이 열렸다. 지옥철 문을 나서 어두컴컴한 팀장의 문으로 들어섰다.



이제 나는, 팀장이다.



사무실까지는 8시 52분.



어제처럼 나는 핸드폰 시계에서 눈을 떼지 않고 나의 분초를 체크한다.



하지만 마음은 어제와는 달라야 했다.



팀장이니까! 팀원에게 모범이 되어야하니까!




“안녕하세요.”




일부러 목소리에 힘을 줬다.



나의 등장에 이 팀장이 매우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기다렸어요. 나 오전에 인수인계 마치고 바로 퇴근해야 하거든.”


“아... 예.”



이 팀장은 기다렸다는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야속했다.



“내가 다 출력해서 라벨링 해놨어요. 파란색은 완료된 거, 빨간색은 진행 중인 거, 노란 색은 앞으로 해야 할 거. 나머지는 우리 부서 서버에 들어가 설명할 게요.”



이 팀장의 표정은 점차 밝아졌고, 나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드라큘라를 떠올렸다.



나의 목에 이를 꽂고 피를 빨아먹는 드라큘라.



그는 회생하고, 먹잇감이 된 나는 싸늘하게 식어가는 거지.



그러다 픽 쓰러지는 거야.



어디로? 처리해야하는 서류 위로.



이 팀장이 쌓은 A4용지는 얼핏 봐도 두 뼘 높이나 됐다.





“짐도 못 풀었을 텐데 미안하네요.”


“아, 아닙니다. 짐이야 천천히 풀면 되죠.”


“최 실장님께 인사는 드렸어요?”


“아... 인사요. 미처 생각을 못했네요.”


“이따 오후에 인사드리러 가보세요. 지금은 안계실거야. 실장님은 오전엔 항상 외부에 계시거든.”



이 팀장이 건너편에 있는 실장방을 보며 대답했다.



이 팀장의 시선을 따라 최 실장의 방이란 곳을 쳐다봤다.



사방이 유리로 된 그 곳은 깜깜하게 불이 꺼져있었다.




“자, 이제 얼추 다 전달한 거 같으니 저는 이제 가보겠습니다.”



이 팀장이 캐리어를 끌며 나갈 채비를 했다.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 마냥 그의 뒤를 졸졸 따랐다.



마치 그렇게 하면 그가 다시 돌아와 주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그는 냉정하게도 엘리베이터 앞에 다다라서야 뒤를 돌아봤다.



“혼자 끌어안지 말고 적당히 해요. 알죠? 회사는 그런 거 알아주지 않아요.”


“알죠..... 근데 진짜 좀 막막하네요.”


“걱정이 되긴 하네.. 팀원들이 다 신입이라..”


“표 사원인가 하는 친구는 그래도 1년 됐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아..표 사원, 1년 차지만 여기 소분팀에 온 지는 5개월 정도밖에 안 됐어요.


그리고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케이스야. 공채 아니고.”


“(그걸 뭘 그리 속삭이시는 거지?) 아.. 그럼 신 사원은요. 그 친구는 좀 어떤가요?”


“신 사원은...”



이 팀장이 말을 이어가려는데 엘리베이터가 땡하고 소리 내며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신 사원이 있었다.





“앗 안녕하십니까!”




신 사원이 당황한 듯 큰 목소리로 꾸벅 인사했다.


이 팀장은 그 바람에 해야 할 말을 잃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나는 갑자기 벌어지는 상황에 멍하게 그를 바라만 봤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려는 찰나 이 팀장은 입모양으로 나에게 말을 건넸다.


파.이.팅.





그렇게 이 팀장이 떠났다.



그리고 내 옆에는 신 사원이 남았다.



그를 올려다봤다.



순간 본능적으로 핸드폰 시계를 내려다봤다.



9시 23분. 분명한 지각이다.



갑자기 목이 간지러웠다.



지금 헛기침을 해야 할 타이밍이라고 뇌가 명령을 하는 것 같았다.



마치 말이 아닌 눈치로 신 사원에게 지각이란 것을 알려주라는 듯이 말이다.



마치 효자손이 했던 것처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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