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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연 May 26. 2023

#6. 아! 이것이 말로만 듣던 MZ?!

#6. <I형 인간의 팀장생활>




제 4화, 막막한 시작


점심시간이 되었다.


나는 표 사원과 신 사원에게 할 일이 있다며 점심을 먹고 오라고 했다.


짐도 풀어야 했고, 당장 눈앞에 쌓여있는 서류를 검토해야했다.


탕비실에서 냉동 식빵을 토스트해 자리로 가져왔다.


입에 빵을 물고 키보드를 치면서 생각했다.


신입 때도 이렇게 열심히 안했던 거 같은데.


누가 나보고 점심 먹지 말고 일하라고 했다면 노동부에 신고하네 마네 했을 텐데 내가 알아서 이러고 있네.


아침에 내려 받은 아메리카노는 벌써 밍밍하게 식어 있었다.


나는 따뜻한 물을 섞어 마실 요량으로 자리에 일어났다.


직원 모두 점심을 먹으러 떠난 10층은 매우 고요했다.


파티션을 사이에 둔 전략팀, 기획팀이 차례로 보였다.


그리고 그 앞의 최 실장 방은 아직도 불이 꺼져있었다.


일부러 소리 내 기침도 해보고 기지개도 펴봤다.


이제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긴 것 같았다.


소비자 분석팀, 여기서 뭐하는 걸까.


팀에 대해 떠올려봤다.


우리 팀은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을 파악하여 최 실장에게 보고하는 것이 주 업무다.


같은 기획실의 전략팀이나 기획팀에서는 우리의 보고서를 토대로 개선 방안을 마련하거나 신제품을 기획하고 전략을 짠다.


중요한 부서임은 확실했다.


하지만 이곳의 업무는 영업팀에서, 마케팅팀에서, 홍보팀에서 보유한 채널로도 충분히 파악 가능한 일들이다.


그런데 왜 따로 팀을 만들어 일을 시키는 걸까.




2019년 12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창궐하자 전 인류가 난리가 났다.


모두가 절망에 빠졌다.


경제계에서는 코스메틱, 즉 화장품 업계의 절망이 가장 컸다.


얼굴의 반 이상을 마스크로 가리는 '마스크 뷰티'는 화장품 기업 실적을 반토막낸 재앙 중의 재앙이었다.


https://www.ajunews.com/view/20200615151728873



립스틱과 파운데이션, 아이새도우와 같은 색조 화장품의 매출이 반 토막 났다.


대표는 일 주일에 서 너번 긴급회의를 열며 부산을 떨었다.


그때 세럼과 에센스 등 기초 화장품 강화를 전략으로 짠 것이 기획실이었다.


피부에 자극이 적은 원료를 선별해 아토피 피부나 민감성 피부, 자극받은 피부를 진정시킬 수 있는 ‘더마 화장품’이 출시됐다.


예측은 통했다.


이후 DM산업은 연매출 2258억원, 영업이익 107억원을 달성해 코로나의 재앙을 비껴갔다.


하지만 빛이 밝으면 밝을수록 그림자는 짙어지는 법. 축제는 매우 짧게 끝났다.


잘 팔리는 제품에 악플이 달렸다.


 ‘색조 회사에서 얼마나 좋은 기초 화장품을 만들었겠냐’는 여론이 만들어졌다.


 거기에 대표 광고 모델이었던 아이돌이 마약 혐의로 입건되는 일까지 터졌다.


DM산업의 전 직원이 부정적인 여론을 바꾸기 위해 매달렸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박힌 인식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좋은 이미지보다 나쁜 이미지의 힘은 매우 강력했다.


이 팀장이 인계한 업무는 그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소비자의 인식이 최하위다.’ ‘여론이 좋지 않다.’ 는 여론을 취합하고 정리해 보고하는 것.


내가 당장할 일은 이 팀장이 모아 둔 시장 조사 결과물들을 요약, 정리하는 것이었다.


 나는  1.현황  2.세부 현황  3.개선 방향 등으로 소제목을 쓰고 기존의 자료들을 분류해 나갔다.







“다녀왔습니다.”


신 사원과 표 사원이 들어왔다.


그들의 옷깃에서 진한 김치찌개 냄새가 훅 하고 뿜어져 왔다.


그 바람에 잊고 있었던 허기가 뭉클하고 올라왔다.


이제 내가 그들에게 일을 줘야할 시간이 왔다.


팀장이라면 일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시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시킬 일은 엑셀 시트별 내용을 한글 표로 만들기가 있었다.


누구를 시켜볼까 신 사원?


서술식으로 나열된 현황을 표로 만드는 것은 고난도의 기술을 요하거나 특별한 지식이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1년차의 표 사원보다는 그보다 더 경험이 적은 신 사원의 수준에 맞다고 판단했다.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뺐다.


삐죽 솟은 신 사원의 머리가 보였다.


그 옆으로 고개를 숙이고 뭔가 열심히 하고 있는 표 사원의 키보드 소리도 들렸다.


나는 목소리를 고르며 팀장으로서의 첫 지시를 내렸다.


“크음크음. 저 신 사원님. 잠깐만 자리로 와보실래요?”


내 목소리에 신 사원과 표 사원 모두 고개를 빼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런데 눈이 마주친 둘은 뭔 소리냐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 내 목소리가 너무 작았구나.


그렇담 다시 한 번.


신! 사원님! 제 자리로! 좀! 와보세요!”


중요 음절에 힘을 주니 강압적인 명령어가 됐다.


그 소리에 놀란 신사원이 벌떡 일어나 내 자리로 튀어왔다.


"무슨 일 때문에..."


나는 그에게 오해하지 말라며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 보고서 작성 중인데 거기에 들어갈 표를 하나 만들어 주시면 됩니다. 표에 들어갈 내용은 2022년 서버에 동향 보고 폴더에 넣어 놨구요. 내용 참고해서 표로 정리해 주면 됩니다. 어렵진 않을 거예요. 가로면에 장점과 단점으로 나누고 세로면에는 포장재 재질 변경 이전과 이후로 나누시면 됩니다. 아셨죠?"


"아.. 네? 네...."


네 라고 했지만 아닌 거 같은데.


"이해... 한거죠?"


"네."


아냐, 표정은 아니야 너.


“안 적어도 돼요? 다 외웠어요?”


“아뇨. 팀장님. 방금 주신 말씀 카톡으로 보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음?”


이게 무슨 신박한 소리인가!


아! 이게 바로 그 유명한 MZ세대의 모습이구나!


당돌하고, 개인적이며, 자유롭고, 개성이 강한 바로 그 세대!


그래서 90년대 생이 왔네 뭐네 하는 책이 청와대에서도 필독서가 되었다지!


그래, 나도 엄밀히 말하면 MZ세대, 85년생이니까.


이해한다.


난 꼰대는 아니니까.


해달라면 해주면 되지, 힘든 일 아니니까.


기분은 찜찜하지만 뭐, 대든 것도 아니잖아.


나는 그에게 나의 지시사항을 정리해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1시간 후, 그에게서 띠리링 카톡이 왔다.


첨부파일이란다.


아니, 이걸 대면보고를 안 해?


그래 뭐, 재택근무 시대에 꼭 대면 보고를 할 필요가 있나.


하지만 나는 그가 보내온 파일을 열어보고는 꾹 눌러왔던 화가 조금씩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표는 표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표의 가로 세로에는 엉뚱한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그것도 정리되지 않은 문장들이 4개의 네모 칸 안에 흩어져있었다.


표의 제목과 내용은 구분이 되지 않았고 표 안에 있는 글씨체는 크기와 폰트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가 만들어 준 표를 그대로 긁어다 보고서에 쓸 요량이었던 나의 계획은 산산히 부서졌다.


아예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했다.


내용은 이해를 못해서 잘 못 넣어다고 치자.


그래도 표 정도는 표답게 만들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1시간동안 이 수준의 것을 붙들고 뭘 한 건지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틀린 것은 당장 고쳐주는 것이 맞았다.


시간이 없으니 내용에 대한 설명은 나중에 하더도 기본적인 표 작성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알려 줘야겠다 생각했다.


나에게 보고서를 보내놓고 두 근 반 세 근 반 마음을 졸이고 기다리고 있을 그에게 빨리 피드백을 주고 싶었다.






“신 사원! 제 자리로 와볼래요?”


좋은 선배가 되어 웃으면서 처음부터 차근차근 해보자며 어르고 달랠 참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태연하게 나 잘하지 않았냐는 그의 표정을 본 순간 마음이 딱 굳어버렸다.


 지금, 이 수준으로 해놓고 당당한 거야 지금?


“어.. 이게 .. 음.. 혹시 한글에서 표 안 만들어 봤어요?”


“만들어 봤습니다.”


“근데 이게 너무 기본이 안 되어 있어서요. 표 안에 있는 글자들 폰트도 다 다르고 글자체도 다르고, 심지어 중간 정렬도 안 되어 있잖아요.”


“아, 저는 팀장님께서 보고서에 옮겨 쓰신다 길래 내용만 분류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 그래 몰라서가 아니라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안했다는 거지?


잠깐만, 안해도 되는 일이 어디 있어?


그리고 상사한테 보고하는 건데 좀 예쁘게 정렬 못해주나?


나보고 알아서 다듬고 고쳐서 쓰라는 건가, 감히?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형식은 그렇다고 쳐요. 그럼 내용 분류를 했다는 건데. 내가 말한 장점과 단점은 어디에 있어요? 세로축도 내가 말한 기준이 아닌데.”


“아...”


아? 요것 봐라.


“내가 말한 기준대로 다시 분류하고 표도 다시 만들어 주세요. 제가 바로 붙여 쓸 수 있게요. 텍스트를 중간 정렬하고, 우리는 보고서에 대부분 휴면명조를 쓰니까 글씨체도 통일하고요, 그리고 표 안의 자간도 정리하고, 그니까 좀...예쁘게 만들 수는 없나요?”


나는 돌아서는 그의 뒤통수에서 난감함을 읽었다.


그는 내 말의 단 50%도 해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그가 보내 온 보고서는 변한 게 없었다.


나는 밀려드는 답답함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가 만든 표를 보란 듯 지워버렸다.


조금도 쓸모가 없었다.


그가 만든 표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진빼지 말고 그냥 내가 할 걸.


짜증이 났다.


나의 키보드가 거칠고 강하게 사무실 안을 울렸다.


타다타다닥 타다타다다다다다닥.



나는 일부러 내가 화났다는 것을 드러내듯이 더욱더 거칠게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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