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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연 Jun 08. 2023

#8. 후배가 날 고소한다면?

#8. <I형 인간의 팀장생활>



제 6화,  MZ세대의 반란



'표 사원, 신 사원 둘 다 회의실로 좀 와볼래요? 노트북 챙겨 오세요.'



나는 그들을 단톡방에 초대해 톡을 남겼다.


그리고 가장 먼저 회의실로 들어가 내 노트북과 빔을 연결했다.


나는 신입과 그나마 덜 신입인 두 명에게 '보고서 작성 시뮬레이션'을 할 생각이었다.


 

"내가 두 분 문서 작성 수준이 어디까지인지 몰라서요. 보고서 샘플을 하나 띄워 줄 거예요. 보고 똑같이 만들어 보세요. 평가하는 게 아니라 무엇이 부족한지 잘못된 건 없는지 보고 가르쳐 주려고 하는 거예요. 보고서를 쓰는 건 결국 기술이거든요. 여기서 나는 여러분들과 보고서 쓰기 수준을 맞출 거예요. 그래서 내가 쓰든 둘 중 누가 쓰든 똑같은 형식의 보고서가 나오도록 할 거란 말입니다. 무엇을 담느냐는 시간이 걸리는 문제지만 형식을 손가락에 익히는 건 금방 하거든요. 내가 바쁠 때, 보고서 틀이라도 여러분들이 만들어 줬으면 좋겠어요. 신입이라고 아무 것도 안하는 거 그거 별로잖아요?"



표 사원과 신 사원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내가 낸 문제를 열심히 풀었다.


비슷한 글씨 스타일을 찾는 데만 5분이 넘게 걸렸다.


신 사원은 인터넷에서 쪽 번호 매기기 같은 걸 검색하기도 했다.


아, 이런. 길 잃은 양에게 어서빨리 바른 길을 안내해줘야했다.



“자,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고 하지 말아요. 답은 서버에 다 있어요. 기존에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해 작성하면 됩니다. 제가 20대 여성 소비자의 신제품 선호도 관련 보고서를 써오라고 지시했다고 가정합시다. 서버에서 선호도를 키워드로 보고서를 검색하면 답이 나와요. 있죠? 엽니다. 다 열었어요? 자, 그리고 지금부터 이 틀을 기본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거예요. 제목부터 수정합니다. 20대 여성 소비자… . 폰트는 17, 가운데 정렬, 스타일은 HY헤드라인M. 스타일은 자신의 눈에 예쁜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써야하는 걸 쓰는 거예요. 형식에 개성이 드러나서는 안됩니다. 평범한 형식이어야 내용이 눈에 들어오는 법이거든요."



나는 글자색부터 줄 간격, 인용자료 표시 방법까지 디테일한 모든 것을 부단히 설명했다.


둘은 열심히 따라왔다.


신 사원은 쩔쩔맸고, 표 사원은 그보다는 훨씬 더 능숙했다.


그들의 업무 역량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나는 속도보다는 내용 이해에 중점을 두고 속도가 느린 신 사원에게 맞췄다.


나에게는 익숙하지만 그들에게는 낯선 업계 용어도 차근차근 설명했다.


중간 중간 업무 관련 전화가 오면 양해를 구했다.


웃고 떠들다 보니 1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앞으로 이틀, 바쁘면 3일에 한 번씩, 오후 4시에 신입사원 교육을 할 겁니다. 물론 업무가 바쁘면 휴강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웬만하면 시간을 내서 교육할 테니까 적극 참여해 주세요. 표 사원과 신 사원은 업무를 하다가 궁금한 거 있으면 적어뒀다가 교육 시간에 물어보시고요. 다음 이 시간에는 액셀 교육하겠습니다.”



그리고 신 사원에게 얘기했다.


“오늘 배운 걸 토대로 지난번 표 만들던 거 수정해서 가져와 볼래요? 복습한다 생각하고 해보세요.”


“네.”


신 사원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


분명 그 보고서와 관련된 말이겠지. 나는 모른 척 하고 싶었다.   









"자, 이제 자리로 돌아갑시다."


"저 팀장님."


"네?"


올 것이 왔구나.




MZ세대답게 상사인 나의 잘못을 꼬치꼬치 지적할 지도 몰라.


아니면 나를 모욕 혐의로 노동부에 고소하겠다며 고소장을 얼굴에 던질 수도 있어!!


그가 종이 한 장을 불쑥 내밀었다.


헉, 진짜 나 고소하는거야!!!!!!!!


"저번에 팀장이 참석해야할 회의가 있거나 알아야 할 사항이 있으면 알려 달라셨잖아요. 그래서 정리를 좀 해보았습니다. 제가 아는 선에서, 동기들한테 물어봐서 적긴 했는데 혹시 빠진 게 있을 수도 있구요."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순간이라면 이럴 때일 것이다.


감동이라는 두 단어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도 무거운 감정이 몰려왔다.


아니 감동보다는 미안함, 그 위에 고마움, 또 그 위에 창피한 감정이 얹어진 느낌이었다.


"아... 고,, 고마워요."


"제가 표를 못 만들어서 그냥 주욱 적기만 했습니다. 보기 좀 불편하실 수도 있는데..."


"어... 아니, 아니에요. 이건 보고서도 아니고 내가 그 사실만 알면 되는 거여서..."


"네. 다행입니다. 표 만드는 거는 오늘 가르쳐주신 대로 다시 해보겠습니다."


빨리 미안하다고 해.


사과 따위 쉽다고 했잖아.


하지만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머쓱하게 돌아서는 신사원이 사라질 때까지 내 입은 접착제가 붙은 것처럼 단단하게 붙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미, 미안해요.


나는 그에게 들릴랑말랑한 크기로 중얼거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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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08화 #7. 결국, 나는 그에게 나쁜 상사가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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